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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며 “하트, 하트”를 요청 드리자, 박춘숙(97)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면서 아들 선재식씨와 함께 빙그레 웃으셨다.
 사진을 찍으며 “하트, 하트”를 요청 드리자, 박춘숙(97)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면서 아들 선재식씨와 함께 빙그레 웃으셨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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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1926년생 호랑이띠 97세 박춘숙 어르신을 찾아뵀다.

"어머님이 눈도 좋으시고 귀도 밝으시고 다 괜찮아."

3남3녀 자녀 중 다섯째 선재식씨가 반갑게 맞이하며 귀띔했다. 지난 22일 오후 2시 찾아간 전북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막골길) 야트막한 산 중턱의 자택은 그림 같은 풍경을 정원으로 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은 '우와~' 하는 탄성을 자아냈다. 순창읍내가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왔다. 날씨 좋은 날엔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까지 훤히 보인단다.

집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올리자 어르신은 "기자 양반이 뭐 하러 왔어?"라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또렷하게 물었다. 나는 "호랑이띠 해라서 새해 소망 들으러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맞제. 내가 호랑이띠제. 하하하."

어르신의 유쾌한 웃음으로 시작된 대화는 1시간 가량 이어졌다.

'순창군 할머니경로당 1호' 만드신 여성 운동가

순창군 유등면 창신마을이 고향인 어르신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순창에서 나고 자라 결혼한 당신 또한 6남매를 순창에서 낳으셨다. 어르신의 언니오빠들은 일찍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97세인 당신만 남으셨단다.

내가 "남매들 몫까지 대신해서 오래 사시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어르신은 97년을 사시는 동안 가족을 돌보느라 한두 차례 잠시잠깐 순창을 떠났다 왔을 뿐 줄곧 순창을 지키고 계신다. 평소 일상을 여쭸다.

"주말에는 집에 있고 평소엔 노인복지센터에 가제. 서예도 배우고. 옛날에 함께 할머니 경로당 만드셨던 분들은 거의 돌아가셨어. 인자 거그 가면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아들 선재식씨는 '할머니 경로당'과 관련해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순창에 순창읍노인회가 처음 생겼는데, 어머니가 '순창군 할머니경로당 1호'를 만드셨어. 순창군 최초의 여성 운동가였다고 할까, 젊으셨을 때 열정이 정말 대단하셨거든."

단답형으로 주고받던 대화는 순창군에서 처음 할머니경로당을 만들던 이야기에서 실타래 풀리듯 술술 이어졌다. 어르신에게 "할머니 경로당을 어떻게 만들게 됐느냐"고 여쭸다.

"할아버지들이 가부장적이셨잖아. 할머니들이 계속 방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완전히 그래야 되는 걸로 으레 일을 시켰어. 할아버지들이랑 있으면 할머니들한테 맨 일만 시키니까 순창읍사무소에 가서 말을 했제. 할머니경로당을 따로 해도라고(만들어달라고). 근데 안 줄라고 혀. 그때는 내가 젊었제. 쉰 일곱여덟 먹었을 땐 게 몇날 며칠이고 쫓아다니면서 내가 뺐었제(성사시켰지)."

어르신은 당신 나이를 기준으로 40여 년 전인 1982년 전후의 일로 기억하셨다. 그렇게 처음 만들었던 할머니경로당은 10여 년이 흐른 뒤 '순창부녀회관'으로 확장된다. 어르신 앨범 속 '대한노인회 순창부녀회관 개관' 사진에 '1992년 12월 3일' 축하현수막이 남아 있다.
 
1992년 12월 3일 ‘대한노인회 순창부녀회관 개관’식 때 분홍색 한복을 입고 계신 박춘숙 어르신
 1992년 12월 3일 ‘대한노인회 순창부녀회관 개관’식 때 분홍색 한복을 입고 계신 박춘숙 어르신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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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 명절이나 방학 때면 찾아뵀던, 2남 8녀를 두신 친할머니는 내가 조금이나마 일을 도우려고 부엌에 들어가면 혼을 내곤 하셨다. "남자는 부엌 일 하는 거 아니다"고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친할머니께서는 식사도 아들들과 손자들이 먼저 끝낸 후에야 딸들과 손녀들이 하도록 철저하게 구분하셨다. 남녀 겸상은 감히 말도 못 꺼냈다. 내가 기억하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1926년생 박춘숙 어르신은 남성 중심의 시골 농촌에 사시면서 어떻게 '할머니 인권'을 위해 앞장설 생각을 하셨을까. 어르신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대접받아야되는데, 경로당에서 할머니들만 부려먹으니까 화가 났다"면서 "그때 할머니경로당 세운다고 돈 만들려고 이렇게 추운 날 풍물 치고 가게마다 돌아다니면 할머니들이 응원하시면서 기부를 정말 많이 해 주셨다"고 웃었다.

순창군 게이트볼 1호 선수이기도
 
어르신이 68세 때인 1993년 4월 14일 게이크볼 치는 모습.
 어르신이 68세 때인 1993년 4월 14일 게이크볼 치는 모습.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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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숙 어르신은 보물창고 같은 여닫이 함에서 사진첩을 꺼내 보면서 추억에 빠지셨다.
 박춘숙 어르신은 보물창고 같은 여닫이 함에서 사진첩을 꺼내 보면서 추억에 빠지셨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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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이 펼친 앨범을 보면서 대화는 자연스레 흘러갔다. 앨범에는 '1993년 4월 14일' 게이트볼 치는 사진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르신이 68세 때였다.

"내가 몸은 쬐깐해도 운동을 잘했어. 학급 릴레이 선수도 했제. 글고 내가 우리 순창군 게이트볼 1호 선수야. 게이트볼은 한 팀이 다섯인데 내가 항상 1번을 쳤어, 지면 2번을 쳤고. 이긴 팀이 1번, 진 팀이 2번이거든. 내가 (게이트볼) 신식 심판 자격증도 땄응게."

어깨띠 메고 거리에서 무언가 홍보하는 사진도 있었고, 서로 다른 관광지로 보이는 곳에서 말을 타며 찍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빛바랜 사진들에서 어르신이 오랜 세월을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르신은 1977년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45년간을 살아오셨다. 아들막둥이인 다섯째 선재식씨는 "내가 고3, 18살 때 아버지가 작고하셔서 내가 고교 졸업하며 어머니 모시고 막내 동생 고등학교도 보냈다"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새해 소망? 별 거 있깐? 건강하게 살아야제"

어르신 방의 조그만 탁자 위에는 작은 사진 액자 몇 개가 옹기종이 놓여 있었다. 선재식씨 부부가 4남매 자녀와 함께 2012년에 찍은 사진에는 10년 전 어르신의 젊은 모습도 보였다. 어르신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집안 곳곳에 사진으로 남아 있다.

어르신에게 호랑이띠 새해 소망을 여쭸다.

"새해 소망? 별 거 있깐? 그냥 건강하게 살아야제."

어르신은 하루 세끼를 소식한단다. 어르신은 자그마한 왼손바닥을 보여주면서 오른손으로 왼손 네 손가락의 네 마디 정도를 움켜쥐고 "내가 식사를 요만큼밖에 안 한다"면서 "언젠가 식사할 때 옆에 있던 할머니가 '어떻게 그걸 먹고 살 수 있느냐'고 타박했다"고 웃었다.

어르신 방을 나오는 길, 텔레비전과 벽 사이에 '단팥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빵을 좋아하시느냐"고 여쭈니, 선재식씨가 "어머니가 빵 같은 단 것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다음에 맛있는 순창빵 사가지고 올게요."

어르신에게 약속드리며 인사를 올리자, "그랴, 그냥 와도 되니께 언제든 와"라고 하시며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셨다.

풍광 좋은 순창읍을 배경으로 어르신에게 사진촬영을 요청 드렸다. "하트, 하트"를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내보이며 빙그레 웃으셨다.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비결은 항상 웃는 생활에 있지 않을까. 호랑이띠 97세 어르신의 웃음 기운을 듬뿍 전해 드린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1월 26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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