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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보령(혹은 대천)에는 5일마다 한 번씩 장이 선다. 보령은 가까운 광천이나 웅천, 서천장과 함께 오일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천장은 끝자리가 3이나 8로 끝나는 날, 장이 들어선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장이 금지된 적도 있고 해서 예전에 비해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번 장은 설이 가까운 대목장이고 일요일에 장이 섰다. 그래서 그런지 장터는 오랜 만에 마스크 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집을 떠나 대도시에서 돈 벌며 살아가는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준비하러 나온 나이 든 어머님들, 반찬 거리를 마련하러 나온 주부들, 아빠 손 잡고 따라 나온 어린아이 등 장터는 오랜 만에 흥성거림을 맞이한다. 나도 그 장터의 흥성거림 속으로 딸과 남편과 함께 끼어든다. 

보령에는 상설시장으로 중앙시장과 한내시장, 동부시장 등이 있는데, 오일장은 중앙시장에서 가까운 김전 주변에 펼쳐진다. 시장에는 공영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멀리서 차를 가지고 나온 이들에게도 접근성이 편리해졌다.
 
장터에서 과자 만들어 파는 노점
▲ 오일장 장터에서 과자 만들어 파는 노점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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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은 특산품으로 조미 김이 유명한데 김전은 직접 조미 김을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김전인데, 장날이 되면 그 주변 길거리에 과일이며 채소, 생선들을 좌판에 펼쳐 놓거나 손수레에 실은 채로 혹은 그릇에 담아 놓고 장꾼들이 손님을 불러 모은다.

반대편 주택가 쪽에서 시작하는 장터 어귀에는 가축전이 열린다. 전에는 염소며 오리, 닭이며 강아지, 고양이까지 나와서 거래가 되었는데 코로나와 조류 독감 여파로 가축 시장이 많이 축소되었다. 그래선지 이번 장에는 토끼들만 보인다. 하얀 토끼 한 마리는 적극적이어서 남편이 손가락을 내밀자 먹이를 주는 줄 알았는지 두 발로 서서 뭐라도 받아 먹을 기세다. 

토끼들 곁을 지나면 이제 길 양편으로 천막이 쳐 있는 본격적인 먹거리의 세계로 접어든다. 생닭을 상자 가득 쌓아 놓고 파는 닭장수, 직접 기름에 튀겨 파는 어묵 장수, 강정이나 유과, 전병을 역시 직접 만들어 파는 과자 장수, 당근, 브로콜리, 시금치, 고구마 등을 파는 야채 장수, 사과, 감, 배, 귤, 체리 등을 파는 과일 장수, 냄새 나지 않는 고등어 자반이라고 소리 치며 파는 고등어 장수, 천 원어치 콩나물이 한 무더기인 콩나물과 두부 장수.

이 골목은 트럭으로 물건을 싣고 다니는 규모가 제법 되는 장꾼들이 많아 물건들도 많고 싼 가격에 채소나 과일, 생선을 무더기로 살 수 있는 골목이다. 장터 골목 중에서 제일 복잡한 골목이요 메인이라 할 만하다. 

옆 골목은 할머니들이 집에 있는 농산물을 끌개에 싣고 나와 파는 규모는 작지만 운이 좋으면 제대로 된 반찬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직접 농사지어서 짜 온 들기름, 집에서 담아 가지고 나왔다는 된장, 주황빛으로 때깔 좋은 늙은 호박고지, 무말랭이, 메주까지. 할머니들의 노동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은 견고하지도 않고 깔끔하지도 않게 플라스틱 그릇에 대충 담겨 있다. 하지만 잘만 고르면  음식 맛은 제대로 된 진짜이다.

보령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싱싱한 해산물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데 장날에는 더 많은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요즘은 겨울철이라서 아주머니들은 시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굴을 까서 한 대접씩 팔고 있다. 껍데기에서 금방 벗겨진 굴은 씻어서 그냥 먹기만 해도 바다 향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고춧가루와 쪽파를 썰어 넣고 굴무침을 해 먹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 할 정도로 싱싱하고 알차고 영양가가 높다. 

보령은 갯벌을 끼고 있어서 사시사철 바지락이 나오는데 역시 굴처럼 손으로 직접 까서 한 종지씩 팔기도 한다. 반건조 된 우럭이나 가자미, 조기 새끼나 갈치 등도 싸면서 질 좋은 것들로 고를 수 있다.

오일장의 묘미는 대형 마트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나 물건을 마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만둣집 앞에는 쌀을 까부를 때 쓰는 키를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요에 오줌을 싸면 키를 쓰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받아 오게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날에만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이 곳에는 자연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채반도 보인다. 마트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채반이 있지만 싸릿개비나 버들가지로 만든 채반에 음식을 말려야 통풍이 잘 되어 자연 건조의 효과가 더 크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사용했던 부엌 가재들이 산업화에 밀려 우리 생활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음을 장날마다 느낀다. 

장날의 하이라이트는 간식거리라 해도 과장이 아닐 텐데, 현장에서 직접 만드는 어묵이나 국화빵, 강정이나 전병, 순대나 꽈배기 들은 장날 시장에서 사 먹어야 제맛이다.거기다 직접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보는 재미까지 있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오일장터에서 뻥튀기
▲ 뻥튀기  오일장터에서 뻥튀기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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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백미는 뻥튀기라 할 수 있다. 쌀 한 줌이 뻥튀기 기계에 들어가서 뱅글뱅글 돌다가 어느 순간, 호루라기 소리가 호루루, 불어지면 뻥, 하고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뻥튀기 기계 속에서 쌀은 자기 몸의 10배 이상이 부풀어 오른 채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금방 튀겨진 튀밥은 달콤함과 바삭거림이 입 안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튀밥으로 그리고 옥수수는 고소한 강냉이로 대변신을 하는 뻥튀기는 장날의 불꽃놀이 같다. 

우리 가족은 반찬 거리와 과일 그리고 튀밥을 사 들고 집으로 왔다. 세 사람의 두 손아귀가 무겁도록 장을 봐 와서 식량 창고가 그득해지니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뻥튀기에서 금방 튀겨진 튀밥은 고소하고 달콤하다.

요즈음 오일장은 대형마트에 밀리고 편리성에 밀리어 옛날에 비해 점점 작아져 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오일장에는 여전히 옛 가재도구들이나 흥정을 통해 정을 나누는 풍속이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를 쓴 채 장날마다 장터로 향한다.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사라져 가는 풍속을 생활 속으로 가져오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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