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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이끌어가고 있는 예술가, 기획자, 지역 리더, 문화 시민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기자말]
"Hello(헬로, 여보세요)?"

지난달 경남 김해시 동상동 E9pay(이나인페이)에서 만난, 인두닐 대표 손에 쥐어진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린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연락이다. 오전 1시, 2시 늦은 시간도 어김없이 그의 휴대폰 벨 소리를 시끄럽다.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는 전화에 지칠 법도 하지만, 인두닐 대표는 친절히 전화를 받는다. 그 역시 한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9pay(이나인페이) 인두닐 대표가 부인 송윤화 씨와 함께 미소 짓고 있다.
 E9pay(이나인페이) 인두닐 대표가 부인 송윤화 씨와 함께 미소 짓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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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면 돈 잘 벌 수 있대!"

인두닐 대표는 귀가 솔깃했다. 최저임금이 낮은 스리랑카에서는 학력이 높아도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없었다. 친구의 입으로 처음 들어 본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 '부모님을 위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인두닐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나라라는 한국의 삶은 생각과 달랐다. 인두닐 대표는 평생 몸 쓰는 일을 해보지 않았던 스물여섯의 청년이었다. 처음 그가 일했던 곳은 문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라인더에 날리는 쇳가루를 맞으며 문을 만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온몸은 까만 쇳가루투성이였다. 한국에 온 지 이틀, 그는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스리랑카 행 비행기 표까지 끊었지만, 자국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떠올라 결국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2008년에는 한국에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며 한국 사람에게 욕도 많이 듣고 그랬죠. 차별도 많았죠. 힘들었어요. 말도 안 통하지 참 답답했죠. 그때 먼저 온 스리랑카분들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무시하더군요. 참 서운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난 절대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인두닐 대표는 5년간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하며, 도움이 필요한 스리랑카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뻗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언젠가는 내 가게를 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제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다니며, 틈틈이 동상동 구제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영업 꿈을 키워갔다.

그러다가 중고 가전제품을 팔며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이나인페이에서 대리점 제안이 왔다. 스리랑카 사람들과 수시로 교류하는 그를 눈여겨본 것이다. 외국인노동자가 많은 김해 동상동에서 대리점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E9pay(이나인페이)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노동자가 자국에 돈을 쉽고 빠르게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소액해외송금업체'다. 현재 인두닐 대표는 2018년 김해대리점 1호를 시작해, 지금은 2호점까지 운영 중이다.

"한국어를 잘 못 하는 친구들이 필요한 도움은 아주 사소한 거죠. 병원에 갔는데 의사랑 말이 안 통한다든지, 사고가 나서 경찰이랑 대화가 잘 되지 않아 애를 먹는 거요. 사실 일상에서 모든 활동이 언어에서 막혀요. 외국인지원센터가 있지만, 그곳은 업무 시간이 종료되면 도움을 못 받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인두닐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됐던 자국 내 스리랑카 외국인노동자들의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인두닐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됐던 자국 내 스리랑카 외국인노동자들의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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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비행기 길이 막히면서, 한국에 일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자국에 자주 오다닐 수도 없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향수가 겹친 데다, 코로나로 이동까지 제한되면서 스리랑카 외국인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 끊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타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친구들을 보며 인두닐 대표는 직접 노래하는 밴드를 지원해가며, 한 달에 한 번씩 유튜브, 페이스북 등 라이브 방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인두닐 대표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흥이 많아요. 모여서 노래 부르고 악기를 두드리며 한 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죠. 근데 코로나로 많은 부분이 단절돼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제 돈 들여서 밴드에 숙식 제공을 하고, 밴드 공연을 할 자리도 제공하고 있어요. 제 페이스북 팔로우가 6만 8천여 명입니다. 정말 많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행복하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보람 있죠"라며 웃었다.

이외에도 인두닐 대표는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는 아카데미, 한국 생활에 대해 무엇이든 물어보는 라이브 방송도 운영한다. 라이브 방송 출연자는 한국어를 오랜 기간 가르쳤던 한국어 강사. 외사계 경찰관 등 다양하다. 게다가 지난해는 김해문화도시센터 '가치가게' 사업에 참여해 밤마다 가게 조명을 밝히며, 어두운 동상동 골목을 환히 비추기도 했다. 그가 한국과 스리랑카를 잇는 민간 외교관, 동네 보안관 역할을 홀로 톡톡히 하는 셈이다.

아내 송윤희씨는 "어두운 밤 가게에 조명을 켜 놓는 것만으로도 덜 무섭더라고요. 가치가게에 참여하면서 저나 신랑이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돼서 참 기뻤어요. 신혼 때는 저희 신랑이 밤마다 전화기가 울리면 사람 도우러 가는 모습이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요즘은 누군가 도와주고 보람찬 신랑 표정을 보면 저도 기뻐요"라고 말했다.
  
인두닐 대표가 스리랑카 차 문화를 김해에 소개하기 위해 조성 중인 스리랑카 차 문화방 입구.
 인두닐 대표가 스리랑카 차 문화를 김해에 소개하기 위해 조성 중인 스리랑카 차 문화방 입구.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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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닐 대표는 E9pay(이나인페이) 2호점 가게 앞에 스리랑카 차 문화를 공유하며, 차를 판매하는 차 문화방을 하나 만들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스리랑카의 음식, 차, 종교 등 문화를 알릴 계획이다.

"서로를 아는 만큼 서로에 대한 거리도 가까워져요. 동상동이 무서운 동네라는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여기도 다른 동네처럼 사람 사는 동네에요. 이곳이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다양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요. 제가 그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애쓸 겁니다."

덧붙이는 글 | 본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남도, 김해시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김해문화도시센터 블로그에 중복 게재 됩니다. https://blog.naver.com/ghcc_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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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시골기자이자 두 아이 엄마. 막연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시간이 쌓여 글짓는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닌 '김예린' 이름 석자로 숨쉬기 위해, 아이들이 잠들 때 짬짬이 글을 짓고,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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