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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16일 방송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 내용.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16일 방송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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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 세계에 대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관심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MBC '스트레이트'에 보도된 통화 녹취 내용에는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라 그런 시간에 난 차라리 책 읽고, 차라리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삶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라는 대목이 있다.

그가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시절에 발표한 논문 네 편 중에 세 편이 운세와 사주에 관한 것이라는 <오마이뉴스> 보도도 있었다. 이 논문들이 표절이냐 아니냐는 주술적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도와 큰 관계가 없다. 표절 논란은 학술적 능력의 유무와 관련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주술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과학이나 여타 종교의 공백을 샤머니즘이 메워주고 있다는 점 역시 한국 사회에서 부정할 순 없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방 의료의 대부분이 무당들에 의해 해결됐고, 대규모 역병이 발생하면 국가권력이 의녀·의원뿐 아니라 무녀들에게도 환자 치료를 의뢰하지 않았나. 무속의 순기능이 아예 없다고 단언할 건 아니다. 

그런데 주술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 '정치'로 옮겨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권력투쟁이 수반될 수 있는 정치 영역과 결합하게 되면, 이것이 부정적인 결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건희씨의 경우엔 그런 조짐들이 이미 드러났다. 그가 남편 선거운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통화 내용에서도 드러났다. 단순히 남편을 응원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우리 캠프에 오면 1억 원을 줄게'라는 언급에서도 나타나듯이 선거운동에 관여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와 관심사가 비슷한 인물들이 윤석열 캠프에서 발견되고 있다. 천공스승과 건진법사가 바로 그들이다. 또 그의 남편 역시 선거운동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주술적인 행동을 해 논란이 됐다. 손바닥의 왕(王) 자가 대표적 사례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한민국은 국민주권국가다. 국민의 뜻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나라다. 반면, 샤머니즘 세계에서는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존재의 뜻이 숭상된다. 그래서 대선후보를 비롯한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나 그 조력자들이 호기심이나 관심의 차원을 벗어나 샤머니즘에 매료되면,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위험성은 커진다.

장희빈 이야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중 14권 숙종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중 14권 숙종실록.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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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은 어느 정도는 무속에 의존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무속을 경계했다. 그렇게 한 것은 사회를 이끄는 유학자들을 의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타의 이유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주술이 대궐로 진입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권력 암투가 심한 대궐이었다. 그런 곳으로 주술의 세계가 침투하면 이것이 권력투쟁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주 발생한 사건들이 이른바 무고(巫蠱)다. 무당 '무'에 독 혹은 벌레를 뜻하는 '고'가 들어간 이 단어는 인형 같은 것을 만들어 누군가를 저주하는 일을 뜻했다.

이런 무고를 대궐에서 범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은 인물 중 하나가 장희빈(희빈 장씨)이다. 그는 1년 전 폐위된 인현왕후에 뒤이어 1690년에 왕후로 책봉됐다가 4년 뒤 후궁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복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 뒤 그가 처소인 창경궁 취선당 근처에 신당을 차려놓고 인현왕후를 무고했으며 그런 와중에 왕후가 세상을 떠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궁중에서 벌어지는 이런 류의 고발은 정치적 조작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다. 그래서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정말로 저주했는지는 확정적으로 단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장희빈이 처소 부근에 신당을 차려놓지 않았거나 평소에 주술을 멀리했다면 그런 의혹이 제기되기 힘들었을 터. 의혹이 제기된 데는 어느 정도는 장희빈 자신의 책임도 있다.

'무고'를 경계한 사회

음력으로 숙종 27년 9월 23일자(양력 1701년 10월 8일자) <숙종실록>에 따르면, 숙종 임금은 승지에게 보내는 명령문인 비망기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이 비망기가 작성된 시점은 음력으로 동년 8월 14일(양력 9월 16일) 사망한 인현왕후가 '이미 죽었지만 아직 시호를 받지 못한 왕비'라 해 대행(大行)왕비로 불릴 때였다.

"대행왕비가 질병을 만난 지 2년이 되는데도 희빈 장씨는 단 한 번도 문안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궁전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민씨라고 불렀다. 또 '민씨는 진짜 요사스러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몰래 차려놓고 항상 두세 명의 비복과 함께 사람들을 물리친 채 기도를 하며 매우 빈틈없이 준비했다."

신당을 차려놓고 무언가를 비는 장희빈의 모습은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행위로 해석됐고, 이는 그가 음력으로 동년 10월 8일(양력 11월 7일) 숙종으로부터 '자진 명령'을 받는 원인이 됐다.

신당을 차려놓고 빌거나 대궐 땅 속에 무언가를 묻어두는 방법으로 무고가 일어났다는 장희빈 사례와 달리, 동물 사체를 이용해 겁을 주는 식으로 일어난 무고도 있다. 중종 때의 '작서의 변'이 그것이다. 중종 22년 3월 22일자(1527년 4월 22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이때의 무고는 죽은 쥐의 사지를 찢어 불에 지진 다음에 세자의 침실 창문 밖에 달아두는 방법으로 일어났다. 쥐를 불태웠다고 해 '작서(灼鼠)의 변'으로 불렸다.

이 사건은 후궁 박경빈(경빈 박씨)이 세자를 저주하려고 벌인 일로 정리됐지만, 제3의 인물이 진범이었음이 5년 뒤 밝혀졌다. 진범이 누구든 간에 주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궐내에서 협조했기 때문에, 세자 침실 창문에 흉측한 것을 걸어두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주술의 세계가 대궐로 침투한 결과다.

이런 행위들이 얼마나 위험하게 인식됐는지는 형법전인 <대명률직해>에서도 증명된다. <대명률직해>는 무고에 사용할 물건을 제작하거나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참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범죄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자나 아들 또는 동거인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해 유배형을 내리도록 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무고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고를 얼마나 위험시됐는지를 알 수 있다.

주술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에 가까워지면, 위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주술을 권력투쟁에 악용할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왕실은 무속에 어느 정도 의존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무속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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