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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인심과 성실함으로 오랜 시간 죽도시장을 지켜온 박수현 대표.
 넉넉한 인심과 성실함으로 오랜 시간 죽도시장을 지켜온 박수현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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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본주의국가다.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는 잉여가치의 창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원칙을 숭배하며 산다. 시장의 장사꾼들도 다를 수 없다. 남는 게 없는 장사란 할 이유가 없는 법.

그러나, 언제나 자본이 인간에 우선해야 할까? 우리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관한 의미 있는 답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멀쩡하게 잘 자라주던 열일곱 살 아들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사고 이후 눈물 마를 날 없던 어머니는 혼자서는 거동이 힘든 아들 옆을 24시간 지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아직 먹어본 적 없는 대게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라고 했다. 어머니 역시 그때까지 대게를 먹어보지 못했다. 아들을 부축하고 죽도시장에 온 엄마가 대게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대게는 가격이 얼마나 하고, 어떻게 먹는 건가요?"

대충의 사연을 들은 가게 주인이 한 마리에 3만 원은 받을 수 있는 대게 3마리를 쪄서 5만 원을 받고 모자(母子)가 마주 앉은 식탁에 올렸다. 두 사람이 먹기 좋게 손질을 해 접시에 담은 것은 물론, 대게 내장과 참기름을 섞어 볶은 밥은 서비스로 내놓았다.

단지 대게를 맛본 것이 이유만은 아니었겠지만, 사고 이후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던 아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 엄마도 함께 웃었다. 대게 가게 주인 역시 더불어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사람보다 중요할까?

죽도시장 '영포 회·대게타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수현(52) 대표에게 "장사를 하며 기억에 남은 사람이 누군가요? 한꺼번에 100만 원어치쯤 팔아준 손님이 가장 고마운 기억 아닌가요"라고 물었을 때다.

박 대표는 "많이 사주는 손님요? 물론 고맙죠. 하지만, 잊지 못할 손님은 따로 있어요"라며 위에 언급한 일화를 들려줬다.

한국의 모든 전통·재래시장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장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에겐 때로 높은 이윤보다 따스한 인정이 훨씬 높은 가치로 다가올 때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차가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지만, 더운 피가 흐르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이데올로기도 인간에 우선할 수 없으니.

조그만 몸피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박수현 대표는 외형만으로 보자면 겁이 많고 연약해 보인다. 하지만, 강단(剛斷)이 만만찮다.

젊은 시절 포항 오거리에서 소머리국밥집으로 시작해, 북부해수욕장(현 영일대해수욕장) 포장마차를 거쳐 죽도시장에서 대게를 팔기 시작한 게 2012년. 서른 살 들어서자마자 시작한 장사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겼다.
 
대게철을 맞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죽도시장 대게 가게 박수현 대표.
 대게철을 맞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죽도시장 대게 가게 박수현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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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울어본 적도 있고, 당장이라도 설거지하던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가게를 집어치우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 땅 서민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팍팍한 가시밭길의 명제.

박 대표는 그 길을 정 많은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묵묵히 걸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 누구에게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코로나19 시대'다. 장사가 예전만 못하지 싶다.
"내가 알기로 죽도시장에만 대게를 판매하는 가게가 200~300개는 된다. 경쟁은 심하고 손님은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겨울 성수기에 대게 200kg 이상을 팔았다. 하지만, 지금은 딱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우리 가게만이 아니라 죽도시장 대부분 대게 가게의 매출 곡선이 크게 꺾였을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게 어려움인가.
"대게는 사놓은 걸 팔지 못하면 버려야 하는 생물 장사다. 모여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를 극소수로 정해놓고, 먹을 수 있는 시간까지 한정해놓으니 손님이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원책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해마다 겨울이면 가게 앞에 줄지어 섰던 관광버스가 3년째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 실물 경기도 얼어붙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첫해엔 잘 몰랐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시간을 시장이란 좁은 공간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먹을 걸 안 먹을 순 없고, 예전엔 외식비로 10만 원을 썼다면 이젠 5만 원으로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고. 단골들이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대게를 고르는 기술과 대게 맛있게 찌는 방법

호떡 가게에 가서는 호떡 이야기를 해야 하고, 찐빵 가게에선 찐빵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기자가 대게를 판매하는 상점에 가서 인플레이션을 논하는 경제학자나 서민들 가계를 걱정하는 정치인 흉내를 내는 건 자칫 우국충정(憂國衷情)이 아니라 오버액션이 될 터.

그래서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단도직입으로 '우리가 대게에 관해 궁금한 모든 것'을 박 대표에게 물었다.

- 겨울철 대게가 맛있는 이유는 뭔가.
"여름을 보낸 대게의 살이 오르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몸이 단단해지고 그 안에 달짝지근한 살이 가득 차오른다. 바닷물의 온도가 차가워져야 대게가 맛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대게를 잡을 수 없는 금어기다. 그 시기엔 러시아에서 수입한 대게, 킹크랩 등을 판다. 러시아 대게는 한국 대게보다 크지만, 감칠맛은 아무래도 동해에서 잡힌 것만 못하다."

- 한국산 대게와 외국산 대게의 차이점은 뭐고 어떻게 구별이 가능한가.
"러시아 대게는 작아도 1kg이 넘는다. 한국 것보다 큼직하다. 하지만, 다리는 짧다. 인근 동해에서 잡히는 대게는 다리가 가늘고 길며 배가 투명하다. 살점의 색깔 역시 맑은 하얀색이다."

- 집에서 대게를 요리하게 된다면 어떤 걸 주의해야 할까.
"솥에 담을 때 대게가 물에 닿지 않게 해야 한다. 끓는 물과 대게가 직접 닿으면 물기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대게의 내장이 흘러버린다. 고구마를 찔 때처럼 대게를 올린 채반과 물 사이에 거리를 두고 쪄야 맛있다. 1kg짜리 대게를 찌는 시간은 25분이 적당하다. 대게의 배가 위로 향하게 해서 쪄야 하는 것도 잊지 말고."
 
찜통 앞에 서서 대게찜을 만들고 있는 박수현 대표.
 찜통 앞에 서서 대게찜을 만들고 있는 박수현 대표.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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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살고픈 '대구 언니'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다. 시장에서 같은 품목을 파는 상인들끼리는 경쟁심 탓에 서로 친하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한다.

죽도시장에서 대게를 포함해 해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서로의 경사보다는 애사(哀事)를 더 꼼꼼하게 챙긴다. 기쁨과 더불어 고통과 슬픔까지 나누는 성숙한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박 대표는 말한다. "웃음과 눈물의 시간을 함께 하는 이웃 상인들은 가족 이상의 존재"라고. 여기에 진짜 식구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았다.

"올해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요? 남편은 새벽부터 울진 후포항과 죽변항으로 대게를 실으러 다녀요. 미끄러운 길을 사고 없이 안전하게 오갔으면 더 바랄 게 없겠죠."

죽도시장엔 주문하는 이들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먹기 좋게 손질한 대게를 손님 식탁으로 내오는 인심 넉넉한 사람이 있다. 태어난 지역을 딴 별명 '대구 언니'로 불리고 싶은 박수현 대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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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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