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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재 작은 외식회사에서 근무하며 주말에 대형 외식 브랜드에서 시급제로 일하는 투잡인이며 자영업 단체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기자말]
2021년 7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공식 진입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한국의 지위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기준에 따라 선진국에 진입했을까? 물론 경제력이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UN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이 내린 '선진국에 대한 정의'가 가장 합리적으로 다가올 듯하다. 

'모든 국민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한 생활을 허용하는 국가'

이 문장으로 현재의 우리나라를 보면 선진국 진입이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안전한 환경'이란 부분을 읽을 때 의문이 들었다. 이 '안전한 환경' 안에는 자연, 주거, 교통, 치안 등 여러 가지가 포함돼 있겠지만 '산업환경' 또한 그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를 거치며 근 30년 동안 사회생활을 한 내가 느낀 점 하나는, 업종을 막론하고 산업 전반에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의욕'으로 포장되는 암묵적 '강요'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건설노조 기자회견’이 10일 오전 청와대앞에서 유족대표와 노동자들이 참석해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앞에 놓인 안전화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고 김다운씨는 2021년 11월 5월 경기도 여주시에서 오피스텔 전기공급을 위한 전봇대 작업 도중 감전사고로 사망했다.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건설노조 기자회견’이 10일 오전 청와대앞에서 유족대표와 노동자들이 참석해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앞에 놓인 안전화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고 김다운씨는 2021년 11월 5월 경기도 여주시에서 오피스텔 전기공급을 위한 전봇대 작업 도중 감전사고로 사망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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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전력 하도급 업체에 소속된 전기기사 김다운씨가 지난해 11월 고압전선의 활선 작업 중 끔찍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난 "도대체 언제쯤 달라질까? 십수 년이 지나도 왜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의 기억 하나가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특히 보도된 기사 중 업체 관계자의 "(김씨가) 업무를 잘 처리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것 같아요"라는 변명을 듣고는 헛웃음까지 나왔다. 난 그 '의욕'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경험자로서 정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산업용 전기설비를 제조하던 업체였지만 난 코딩 전공자로 컴퓨터를 활용하여 전기설비를 제어하는 코딩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떨어진 출장 명령은 당혹스러웠다. 수만 볼트 고전압 몰드 변압기가 설치된 외함(일종의 큰 철제 케비넷) 지붕에 설치되어 변압기의 뜨거운 열기를 빼내는 '배기 팬'이 고장 났으니 교체 설치하라는 지시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전기 담당자가 가야 했지만, 일손이 부족해 나에게 일이 주어졌다. 

물론 '팬 교체'는 전기에 대한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문제는 작업 환경이었다. 고압 변압기가 작동하는 상태에서 2m가 넘는 철재 외함 지붕에 올라가야 했지만, 2인 1조는 언감생심이었고 사다리 같은 기본 장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일명 '현장 박치기' 지시였다. 그러니까 간단한 작업이니 현장에 있는 관계자에게 잘 부탁해서 사다리도 얻고 손이 부족하다 싶으면 도움도 받아 비용을 최소화하란 뜻이었다.

그렇게 '현장 박치기', 즉 임기응변 능력은 기술직 직원의 유-무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니 어찌 되었을까? 이런 상황에 부딪힌 직원들은 의욕이 앞서서가 아니라 무능한 직원이란 비난을 피하고자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선 이런 분위기가 당연시되고 있었다.

본인의 전공과 관계없는 생뚱맞은 작업에 투입되는 건 물론, 안전 확보에 필요한 장비나 설비를 요구했을 때 '배부른 소리, 명필이 붓 가리나?'라는 핀잔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과거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 정도로 취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영세 가게의 슬픈 운명
    
지난 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인도 위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올해부터 플랫폼 업체와 1개월 이상의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해 월 보수액이 80만원 이상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기사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된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인도 위에 오토바이들이 세워져 있다. 올해부터 플랫폼 업체와 1개월 이상의 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해 월 보수액이 80만원 이상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기사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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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8일, 오토바이는 미처 내 몸이 의식할 사이도 없이 넘어졌다. 회사를 떠나 배달 외식 업계 종사자가 된 지도 어언 10년. 기술자라면 '베테랑' 소리를 들을 연륜이지만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얼어붙은 눈길은 두 바퀴의 만용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발목이 오토바이에 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 운전자는 조건 반사적으로 발을 내리고 버티다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배달 기사들에게는 묵시적 지침이 하나 있다.

"오토바이가 넘어질 때 절대 다리 내리면 안 돼, 넘어질 것 같으면 그냥 오토바이를 버려, 오토바이 살리겠다고, 음식 살리겠다고 버티면 발목 박살 나, 내 몸이 오토바이보다, 음식보다 더 소중해."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재빨리 엔진부터 끄고 서둘러 오토바이를 일으켜 길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런 빙판길에서는 뒤따르는 차량에 의한 2차 사고도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수도권에 폭설이 내렸던 몇 주 전 그 날, 난 블랙 아이스에 미끄러져 다친 이후 2년여 만에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당일 '배달의 민족'과 '쿠팡'과 같은 배달 플랫폼들과 동네 배달 대행사들은 이미 이륜차 배달을 모두 중지시킨 상태였다. 그렇지만 배달 기사를 고용한 가게들은 악천후 상황이라고 해서 쉽게 영업 포기를 결정하지 못한다. 그게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가게들의 슬픈 운명이다.

그래서 이런 날 배달 외식업 사장들은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다. 두 눈 딱 감고 악천후의 특수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직원의 안전을 위해 영업을 중지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다. 자영업자 상당수는 직원을 들여보내고 문을 닫거나, 아니면 오늘 고정 경비라도 벌기 위해 본인이 직접 배달을 한다. 그런데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문제가 다르다. 본사의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점주 마음대로 영업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재는 무지한 기업주와 타성 젖은 관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도로에서 이륜차가 넘어지지 않는건 요행일뿐이다.
 이런 도로에서 이륜차가 넘어지지 않는건 요행일뿐이다.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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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처럼 눈이 많이 왔던 예전 어느 날 늦은 밤,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방문한 동네는 고갯길이 꽤 많았다. 나는 바퀴 네 개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있었지만, 이런 눈에 언덕을 오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옆 차선에서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고 있었다. 옆 좌석의 아내는 '이런 날씨에 배달을 보내다니' 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난 오토바이 배달통에 붙어 있는 브랜드를 보고 느낌이 왔다. 아내에게 "저기는 본사 승인을 받아야 할 거야, 사장이 미치지 않고서야…"라고 말했다. 

글머리에 밝혔지만 난 투잡으로 대형 브랜드에서 배달일도 병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12월 18일 사고 당일 밤, 이미 넘어진 데다 도로 상황은 더욱 나빠져 온몸의 진이 다 빠졌다. 그런데 새로운 목적지는 후미진 지역에 있는 공단이었다. '그 지역은 제설이 안 됐을 텐데 배달을 막았어야지'라는 내 타박에 점장은 '플랫폼 주문은 제 맘대로 할 수가 없어서요…'라며 미안해 했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이 나이면 '나잇값'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살얼음판을 기어가듯 도착한 공장 앞에서 손님을 마주했을 때 난 이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손님, 지금 이 길을 보세요. 차량 통행이 전혀 없습니다.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날 배달을 시키는 건 경우가 아닌 듯합니다. 책임 때문에 가지고 오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중간에 돌아가고 싶었네요."

물론 최대한 부드럽게 읍소하듯 말했다. 이에 손님은 무척이나 미안해 했다. 누군가는 감히(?) 손님을 타박할 일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산업재해'는 이런 부족한 이해와 배려에서 출발한다. '산재'는 무지한 기업주나 타성에 젖은 관리 책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제어할 수 없는 악천후,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속도, 힘, 날카로움을 가진 모든 장비와 설비에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그런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질 때 비로소 진짜 '안전의식'이 확보된다고 본다.

이런 노력 없이는 "돈 벌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냐"라는 천박한 의식을 극복할 수도 없고, 따라서 '산재를 줄이자'라는 주장은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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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에서 자영업자 그리고 시급제 노동자와 법인대표로 일하며 느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같은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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