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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 광역 교통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 광역 교통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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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곧이어 캠프 관계자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이전의 공약은 변경되었고 상세한 내용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라는 내용 또한 보도되었다.

남녀 갈라치기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 후보는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답했으며, 페이스북에는 "더 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관련기사 : '여가부 폐지' 추가 설명 요구에 윤석열 "더는 생각을 좀" http://omn.kr/1wt1l).

윤 후보의 말에서 차별이나 폭력 등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그가 도처에 널린 성차별과 폭력을 인지하고 있는지, 여성혐오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구시대적인 성별고정관념

고백하자면, 나는 여성임에도 내 안의 여성혐오를 자주 마주한다. 얼마 전, 친구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여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 분, 결혼은 했어?"

평소 무심하리 만큼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는 나다. 하물며 잘 알지도 못하고 영 만날 일도 없는 이의 사생활을 대체 왜 물었을까. 답은 자명하다. 그가 남성이었다면,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내게 더이상의 질문이 요구되지 않는 당연한 일로 인식되어 있었으니까.

더 이어진 대화도 나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이혼을 했다는 말에, 자녀의 유무를 물었다. 있다는 답을 듣자, 한 발 더 나아가는 오지랖까지 부렸다.

"사회생활하면서 혼자 아이까지 키우려면 정말 힘들겠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생각도, 의무를 부여할 마음도 없었음을 맹세한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간 내 말에서, 아이는 여성이 키우는 게 당연하다는 구태의연한 인식을 보았다.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이 고장 난 싱크대 문을 고쳤을 때도, 내 세치 혀가 나를 놀라게 했다.

"역시 남자가 하니까 다르네."

이토록 구시대적인 성별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니. 그간 울분을 토하며 읽었던 수많은 페미니즘 책들은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 자신이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익숙한 것들을 '옳은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
 
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글을 올렸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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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을 들어주자면 이렇다.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니던 때, 여학생은 '가정'을, 남학생은 '기술'을 배웠다. 종종 투덜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예외는 허락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여성 동료는 있었지만, 여성 상사는 없었다. 회사의 열악한 처우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불가능하게 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편견을 박살 낸 멋진 여성들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운동장에는 남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여학생들은 구석에서 고무줄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여성혐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이런 나와 달리, '살아오는 내내 단 한순간도 성차별적 인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이들을 이따금 만나게 된다. 그의 성별이 무엇이든, 정신이 아득해진다. 과연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던지는 메시지를 조금도 흡수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혹시 가능하다면, 그는 과연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일까.

여성혐오가 널려 있으니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조금은 삐딱한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성의 털이, 남성의 핫팬츠가 어색한 우리는 모두 여성혐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여성혐오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칫하면 익숙한 것을 '옳은 것'으로 착각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의 행보를 지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윤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면 청년을 성별로 갈라치고,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후보에게 지도자로서 자각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 윤 후보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여성혐오로부터 얼마나 자유롭냐고 말이다. 남녀 성별 임금 격차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성들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도처에 널린 성차별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지, 들을 생각이 없는지도 묻고 싶다.

차별을 조장하는 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궁금하다.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일진대, 벌써부터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이 느껴지니 어찌하면 좋은가. 그의 행보를 지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태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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