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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대화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하는 유희지만,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더하고 빼기의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 나는 그의 말에서 접속사는 소거하고 핵심만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의 말을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이 주임이 갑자기 아팠어. 그런데 병가를 냈어. 그래서 독감이었거든."

약간의 과장이 있긴 하지만, 이런 형태임을 그 자신도 부인하지 못한다. 연애 초, 나는 그의 접속사에서 자주 헤매곤 했다. 왜 저기에 역접이 들어가지? 혹시 연차를 쓸 수 없는 회사인가? 왜 그 다음엔 인과가 나오는 거지? 내가 놓친 이전의 레퍼토리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십수 년째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덕분에, 이제 알게 되었다. 그에게 접속사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 주임이 독감으로 병가를 냈다'는 것만 들으면 된다. 물론 여전히 혼란을 느낄 때가 있어서 "여보! 접속사 좀!"하고 외치는 경우도 있지만, 별 오해 없이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접속사를 무시하는 남편이지만, 때때로 그 누구 못지않은 달변가가 될 때가 있다. 바로 업무를 볼 때다. 일에 있어서 빈틈없는 남편은 누가 들어도 상황을 재깍 파악할 수 있도록 핵심을 짚는다. 간혹 그의 업무상 통화를 곁에서 듣게 되면 과연 이 사람이 내 남편이 맞나 깜짝 놀랄 정도다. 

뿐인가. 내가 호기심을 보이면,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할 때도 친절한 과외 선생님이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들은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어떤 난제가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는 게 나을지 자신의 의견까지 즉각 덧붙인다. 마치 사전에 준비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남편의 말이 순식간에 유창해지는 것은 그만큼 그 사안들에 대해 오래 고민했고 공부했고 또 집중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많은 이들이 해봤을 터. 나 역시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편인데도, 준비가 철저할 수록 말이 더 편안하게 나온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아는 것이 없는데도 언변이 화려한 사람도 있지만, 바닥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달변이든, 눌변이든 상관 없이, 말은 그 사람을 어떤 형태로든 드러낸다고 믿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방문을 마치고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방문을 마치고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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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장애인본부 전국 릴레이정책투어 출정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장애인본부 전국 릴레이정책투어 출정식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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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챙겨보는 것이 성가시게 느껴질 정도로 잦은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고 싶다. 그 이상 후보들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다른 이들의 손을 거치는 SNS나 편집된 영상이 아니라, 후보자들의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 싶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선후보 TV 토론회는 선거 운동 기간 중 최소한 3회 이상 진행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므로 후보자들의 합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많은 토론이 열릴 수 있다. 이로써 국민들이 대선 후보들의 역량과 자질을 더 심도 깊게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은 토론을 하겠다면서도 진행 관련 사항에 대해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침대 축구 그만하고 토론장에 나오시라"는 말까지 한 바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다소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아무리 준비하고 연습한다 해도 누구나 토론의 달인이 될 순 없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고자 하는 것도 현란한 말솜씨는 아닐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철학, 자세일 뿐. 이 나라의 국민들이 허와 실을 구분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그래서 기꺼이 토론장에 나서는 후보들을 만나고 싶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를,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사람으로서 뽑아야 하는 날이 다가온다. 소문이나, 다른 권위자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직접 판단하기 위해서, 나는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의 토론회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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