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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뭐 아무거나 신으면 어때, 생각할 수 있지만 새로운 일터에 갈 때는 꼭 개인용 슬리퍼를 챙겨간다. 외출용 신발 그대로 신고 일을 하면 발이 나를 욕하는 것 같다. 너 아직도 밖에 있는 거냐고.

오후가 되면서 발에 부종이 심해지면 더 그렇다. '갑갑해 죽겠다, 나 좀 꺼내다오' 허나 아무리 급해도 손님용 슬리퍼는 절대 신지 않는다. 이 발, 저 발, 온갖 발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 내 발까지 보태긴 싫었다.
슬리퍼를 들고 출근합니다.
 슬리퍼를 들고 출근합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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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나의 이런 습성을 알게 된 엄마는 내가 슬리퍼를 챙겨오거나 챙겨가는 걸 보며 입퇴사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한 군데서 정착을 잘 못하는 내 성격상 그런 일이 수 년에 한 번씩은 꼭 있었는데 최근엔 그런 일이 없었다.

예전에는 슬리퍼를 챙겨오면 퇴사, 들고 가면 입사가 그대로 드러날 만큼 명확했으나 이젠 입퇴사 유무와 상관없이 슬리퍼를 갖고 오기도 한다. 엄마는 항상 "회사에 짐 많이 갖다놓지 마라, 집에 있는 살림살이 회사 책상에 다 늘어놓는 사람 치고 오래 다니는 사람 못 봤다"라고 말한다. 언젠가 그리 말한 게 가슴에 콕 박혀서, '아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그 뒤부턴 회사에 슬리퍼만 갖고 가서 일한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는 그냥 거기 있는 거 좀 쓰다가 버리고 개인 짐은 갖다놓지 않는다. 사실 나에겐 꽤 어려운 일이다. 책상에 이런저런 개인 소지품 늘어놓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달력도 그냥 달력 말고 예쁜 달력, 이를테면 민음사 일력도 좋고, 볼펜도 여러가지 얇은 거 두꺼운 거 등등 색색별로, 다이어리에 핸드크림에 펜슬케이스에 마우스 패드도 그렇고 쓰잘데기없는 것들을 정리해 놓곤 혼자 만족해 한다.

일 할 때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물건 욕심을 다 버리고 오로지 슬리퍼 하나만 갖고 출퇴근을 한다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 요즘 또다시 출퇴근할 때 슬리퍼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온갖 귀찮음을 감수하고 쇼핑백에 슬리퍼를 갖고 다닌다는 건, 내가 이 회사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 당장 퇴사 통보를 해도, 슬리퍼를 가지러 또 사무실에 갈 필요는 없으니까(한때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한 적도 있었는데). 

엄마에게 슬리퍼 가방을 들키는 순간 또다시 잔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이런 대화를 나누겠지. 

"너 또 왜 슬리퍼 갖고 다니냐?"
"응 그냥.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왜 그러냐고 묻지마. 아무일도 없어."


구질구질 뒷굽 다 낡은 검정색 슬리퍼가 요동을 친다. '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꼬질꼬질 밑창 다 낡은 내 운동화가 묻는다. '또 무슨 사무실로 가는 거야?' 매년 하는 고민이지만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문제는 영원히 풀지 못할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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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그릉그릉 소리에 행복을 느낍니다. 사진, 글, 일상에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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