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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30일, 스위스 취리히의 대중교통의 모습. 탑승객들이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2021년 11월 30일, 스위스 취리히의 대중교통의 모습. 탑승객들이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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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전세계 코로나 확진자 2억 8914만 명 중에 1인이 됐다(2022년 1월 1일 기준). 괴로운 경험이지만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될 듯해 공유한다. 

프랑스 23만 명, 이탈리아 14만 명, 영국 18만 명, 스페인 16만 명... 일주일치 누적 확진자 숫자가 아니다. 2021년 12월 30일과 31일 각각 집계된 하루 확진자 숫자다. 내가 사는 스위스라고 상황이 좋을 리 없다. 남한 인구의 1/6 수준인 스위스에서 하루 확진자 수는 2021년 12월 27일 3만 6193명을 기록하더니 29일부터 31일까지 매일 1만 7000명 이상을 기록했다(검사를 안 받고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

인구의 0.5%가 매일 탈락(?)하는 '전국 오징어게임'을 찍는 것 같다. 한국에서 하루 확진자가 7000명을 기록했다면서 방역 참패라는 뉴스도 나오던데, 유럽의 한인들은 입을 모아 "참패는 무슨..."이라며 씁쓸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한국도 상황이 엄중하긴 하다. 그러나 유럽에 비해서는 여전히 선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CNN을 타고 전세계에 퍼진 우리 동네 소식

내가 처음 코로나 증상을 느낀 날을 편의상 '0일'이라고 쓰겠다. 증상이 나타나기 3일 전, 즉 –3일째 남편과 아이가 콧물을 훌쩍거리길래, 혹시 몰라 나라도 감염을 피하려고 집안에서도 생활공간을 분리했다. 잠도 따로 자고 밥도 따로 먹고 수건도 따로 썼다.

-2일째. 남편과 아이가 코로나 자가테스트를 해본 결과, 다행히 둘 다 음성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생활공간 분리를 유지했다. -1일째. 친구 한 명과 만났고, 0일째도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만났다. 이 두 명을 빼고는 밀접접촉자는 없었다.

0일째. 대형사건이 터졌다! 아이가 평소처럼 하교하고 집에 온 목요일이었는데 응급 연락이 왔다. 아이 학교에 두 명의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와서 다음날부터 열흘간 학교를 폐쇄하고 전교생과 전 교직원이 열흘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스위스는 학교에 확진자가 나와도 그냥 그 학생만 등교를 안 하고 나머지 학생은 학교에 나오는 식으로 (말하자면 이미 '위드 코로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전체가 락다운에 들어가는 것은 스위스 기준으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오미크론 변이가 생긴 초기라 아무런 정보가 없어 위험성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긴급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아이 학교가 속한 보(Vaud) 주 보건당국에서 명령을 내린 것이라 학교는 무조건 따르게 돼 있다. 오미크론으로 2000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자가격리에 들어간다는 뉴스는 CNN을 타고 전세계에 퍼졌다. 재빠르게도 그새 취재를 했는지 학교 교정이 CNN 화면에 나오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때까지도 내가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이날 밤에 목이 살짝 칼칼하다고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이게 첫 증상이었다.

1일째. 나도 코감기 증상이 생겼다. 콧물과 재채기만 있었고, 발열·오한·근육통·피로·식욕 감소 등의 전신 증상이나 두통·미각상실·후각상실·기침·가래 등의 증상도 없었다. 그래서 가벼운 코감기라고만 여겼다. 남편과 아이는 감기 증상이 소실됐다. 이젠 나로부터 다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생활 공간을 분리했다.

2~3일째. 여전히 코감기 증상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아무도 안 만났다. 4일째, 기침이 조금 시작됐다.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이날은 아이 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 및 그 가족들도 전부 코로나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미리 예약해둔 센터에 자동차로 이동해 검사를 받았다. 예약 시간에는 우리 가족뿐이라 센터 직원 둘 말고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보 주에서 의무 검사 명령을 내린 것이라서 그 명령 문서를 보여 주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검사받을 때보다 비강을 훨씬 더 얕게 찌르고 몇 번 돌리지도 않고 뺀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허술한 것 아닌가? PCR 검사라서 24시간 안에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학부모 게시판에는 검사 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명령 문서를 보여줬는데도 검사비를 22프랑(약 3만 원) 받더라, 검사비 110프랑(약 15만 원) 내라고 해서 싸우다가 검사 안 하고 돌아왔다, 검사 직원들이 너무 프로답지 않아서 도무지 신뢰가 안 갔다, 어떤 검사 직원은 마스크도 안 쓰고 있더라, 검사를 너무 엉성하게 해서 다른 사람 샘플과 바뀌어서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이래서야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있겠냐 등등.

양성
 
검사 담당 직원들은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들기 전후에 소독도 하지 않고, 수십 명의 테스트기를 책상에 죽 늘어놓고 면봉을 그대로 갖다 댄다.
▲ 스위스의 한 코로나 검사센터의 모습 검사 담당 직원들은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들기 전후에 소독도 하지 않고, 수십 명의 테스트기를 책상에 죽 늘어놓고 면봉을 그대로 갖다 댄다.
ⓒ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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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새벽 3시. 문자 메시지로 연락이 왔다. 우리 가족 중에 나만 양성이었다. 환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 내게도 언젠가는 닥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연락을 받으니 패배감이 엄습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싶어 죄책감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무증상 기간인 –1일, 0일에 만난 2명의 친구에게 미안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다만 증상이 시작된 뒤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아서 수퍼전파자가 되는 것은 막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검사를 해보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기침이 좀 더 심해졌고 피로감이 생겼다. 후각과 미각은 있었지만 식욕은 떨어졌다. 무엇보다 너무 우울했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멍한 증상(brain fog)은 이제 보니 코로나 때문이었나 보다.

쓰고 있던 논문(마침 논문 주제는 '모유의 코비드19에 대한 보호효과')을 겨우겨우 완성해서 보내고 "나 코로나 걸려서 더 이상은 못 들여다보니 교정은 알아서 봐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단기적 인생 목표가 '코로나에서 빨리 회복되기'로 급변했다. 무조건 쉬기로 했다. 한의사협회에서 해외체류자들에게도 무료로 처방해줘 받아뒀던 코로나 치료 한약 청폐배독탕이 마침 몇 포 남아 있어서 복용했다. 복용할 때마다 조금씩 증상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은 약은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격리기간을 다시 산정해야 했다. 나는 증상이 있던 날부터 10일, 다른 가족은 나와 마지막으로 접촉한 날부터 10일이었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이는 자가격리기간이 4일 더 늘어나게 됐다.

6일째. 다행히 밀접접촉한 친구들과 그 가족들은 모두 음성이었다. 하지만 –1일째 만난 친구네는 부랴부랴 파리 학회 일정을 다 취소했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자꾸 꿈에 나왔다. 콧물은 아직 있는 채로 새벽 기침이 심해졌다. 자다 말고 물주머니 형태의 핫팩을 목과 어깨, 가슴에 두르고 자니까 기침이 많이 줄었다. 기침에 잘 듣는 한약 삼소음 네 포가 남아 있어서 자기 전마다 아껴서 복용했다.

부모님과 영상통화할 때는 애써 멀쩡한 척 했다. 남은 체력을 모두 모아 제네바 시민대학의 한국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지금 나 코로나 걸렸다고 하니 놀란다.

7일째. 애시당초 오미크론 때문에 학교 락다운이 되면서 8000명이 검사를 하게 된 것이라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오미크론의 역학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감염자 2명에게서 몇 명이 걸리고 또 그들로부터는 몇 명이 걸렸으며 잠복기는 며칠인지 파악하게 될 것이고 특징적인 증상들은 무엇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우리가 원치는 않았지만 열흘 락다운이 전세계에 오미크론 역학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겠구나 싶었다.

'자발적'으로 검사 결과를 입력하라고?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보건당국은 우리의 검사결과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과 교직원 및 그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검사결과를 학교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학교에서 그 결과를 모아서 보건당국에 보내준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입력이라, 안 하면 그만이고, 거짓으로 입력해도 그만이었다. 학교도 보건당국을 돕는 차원에서 자료를 수집한다고 했다. 보건당국의 검사 명령서를 가지고 검사센터에 가면, 검사센터에서 착착 알아서 결과를 보건당국에 자동 전송해서 자동 집계돼야 정상 아닌가? 대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싶었다.

8~9일째. 기침이 있지만 심하지 않다. 2차 백신까지 접종을 마쳐서인지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는 것 같다. 머리가 멍한 증상은 누워만 있어서 생긴 것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모르겠다. 가족들과 거리를 많이 두면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9일째. 증상이 없으면 10일째인 다음날 나는 완치로 분류돼 자가격리에서 풀린다. 아직 피로감이 있고 감기 뒤끝같은 마른기침이 있는데 증상이 남았다고 해야 할까, 다 나았다고 해야 할까. 무증상이면 자동 해제인데, 증상이 남아 있으면 보 주 보건당국으로 전화를 해서 신고하란다. 양심적으로 살자는 생각에, 미진하게 남은 증상이 있다고 신고하려 전화를 걸었다. 모든 회선이 통화 중이다. 다시 걸었다. 역시 통화 중이다. 계속 시도해도 통화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신고를 못했다.

하도 누워 있었더니 허리가 아팠다. 그리고 식사량이 대폭 줄어들고 운동을 전혀 못한 상태로 살았더니 정말 허약해진 기분이었다. 어지럽고 머리가 핑 돌았다. 감염 상태에서는 우리 몸이 혈중 철분 농도를 낮추기 때문에 빈혈 증상도 생긴 것 같았다.

아. 이래서 고령자들이 아프면 줄줄이 문제가 생기는구나. 아파서 운동을 못 하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면 또 운동을 못 하고 운동을 못하면 균형감각이 떨어져서 넘어져 다치기 쉽고 넘어져서 골절 생기면 또... 악순환이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10일째. 드디어 나는 자가격리에서 풀렸다. 남편과 아이는 아직 격리 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약국에 가서 자가테스트기를 샀다. 너무 오랜만에 움직여서인지 코로나 후유증인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그래도 한 줄로 음성 결과가 뜨는 걸 보는 순간, 기분이 확 좋아졌다. 2주만에 장도 봤다. 집에 와서 남편과 아이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다행히 둘 다 음성이었다.

11일째. 어이없는 일을 또 겪었다. 확진자의 가족도 재검 결과 음성이 나오면 일찍 격리에서 해제될 수 있는데, 12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설명이 애매했다. 프랑스어 버전에는 '12세 미만은 검사 없이 무조건 10일을 채워야 한다'고 돼 있고, 영어 버전에는 '12세 미만은 아무 검사나 해도 된다'고 돼 있었다. 같은 공식 문서가 이렇게 달라도 되는 건가? 고민 끝에 우리는 영어 버전에 맞춰 검사를 하러 갔다.

재검은 신속항원검사였는데, 센터 직원이 실수로 PCR검사를 해 버렸다. 물론 PCR을 해도 되지만 결과가 늦게 나온다. 이때 신속항원검사로 다시 해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내일 아침이면 결과를 받을 테니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떠났다. 이게 작은 패착이었다.

12일째. 늦어도 아침에 검사결과를 받을 줄 알았는데 안 온다. 오전 내내 혹시나 아이가 학교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까지 아무 데도 못 가고 기다렸는데, 결국 포기했다. 오후 늦게야 음성 결과가 도착했다. 결과를 받자마자 아이와 2주만에 감격의 포옹과 뽀뽀를 했다. 아이는 자가격리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데다가 거의 2주째 엄마와 포옹도 하지 못하고 가까이 가지 못해 힘들어했다.

완치 3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호흡이... 

이제 완치 3주째인 나는 남은 감염 증상은 없는데 여전히 숨이 차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가쁘다. 확실히 기분 탓은 아니다. 코로나 걸렸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않다가도 몇 계단 오르면 숨이 차서 '아, 맞다. 나 코로나 걸렸었지'라는 생각에 다시 덜미를 잡히기 때문이다.

숨이 차서 운동을 할 수가 없으니 몸이 너무 찌뿌둥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머리도 맑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이후 운동은 단계적으로 체력에 맞춰서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불굴의 의지를 내어 억지로 운동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조금씩 개선되는 만큼 활동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감기 수준'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감기 걸리고 나서 이렇게 숨이 찼던 적이 없다. 백신을 접종했고 충분히 쉬고 한약도 복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증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감기보다는 훨씬 독하다.

면역이 떨어진 사람들이나 고령자에게는 정말 무서운 질환일 수 있다. 한의학에는 직중장부(直中臟腑)라는 개념이 있다. 콧물, 재채기, 두통, 뒷목 뻣뻣함 등 겉부터 증상이 시작되지 않고 심층의 장부에 바로 타격을 주는 질환을 말한다. 2020년 초에 논문을 읽으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코로나는 폐의 수용체에 바로 결합해 코나 인후 증상 없이 바로 폐 증상이 시작되고, 심근염, 급성 콩팥 손상, 뇌 손상도 가져올 수 있는 '직중장부'의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코로나 검사를 더 받을 일이 있었는데, 스위스의 검사 센터 수준은 정말 충격적인 수준이다. 센터 직원은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들고 이름을 적고 돌려주고 소독 없이 다음 피검자의 신분증을 받아든다. 책상 위에 쿠키를 두고 먹고 있고 심지어 마스크를 내리고 일하는 직원도 있다. 바코드도 찍지 않고 사람들이 온 순서대로 테스터를 그냥 책상 위에 줄줄이 늘어놓고 면봉을 갖다 댄다. 센터 문 바로 밖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담배 연기가 검사 센터로 들어온다.

검사 센터가 이런 수준이니 일반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차역 플랫폼에서는 흡연자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담배를 피운다. 철도 직원들도 턱스크를 하고 있으니 누가 제지를 하겠는가.
  
검사 담당 직원이 '턱스크'를 하고 있고 책상 위에는 음식을 두고 먹고 있다.
▲ 스위스의 한 코로나 검사센터의 모습 검사 담당 직원이 "턱스크"를 하고 있고 책상 위에는 음식을 두고 먹고 있다.
ⓒ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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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가 한국과 서로 다른 점

그렇다고 '유럽이 최악이고 한국이 최고'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스위스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영업 손실,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은 한국보다 잘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부문이 모두 락다운을 해도 초·중·고교는 끝까지 열어두려 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배울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한국은 감염되지 않을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라면, 스위스는 '병 걸려 죽을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회인 듯하다. 한편 한국은 '일하다 죽을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스위스는 '누구도 일하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사회로 보인다. 나는? 전염돼 죽고 싶지도 않고, 일을 하다가 산재사망이나 과로사 하고 싶지도 않다. 한국과 스위스의 장점을 조화시킨 사회에서 살고 싶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

코로나 사태로 드러났듯, 모든 부문에서 우월한 선진국은 없다. 어떤 사회는 이런 장점이 있고 또 다른 사회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다른 사회의 후진적인 면을 비웃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서로 비판하고 격려하면서 최선의 시스템을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왜? 코로나로 드러났듯, 지구는 하나이고 모두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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