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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이번에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다룹니다. [편집자말]
언젠가부터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의 어린이날이었다. 화창하게 맑고 더워서 살짝 어지럼증이 나는 날씨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떠보니 아빠는 집 채 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훌쩍 떠난 뒤였고 집에는 엄마와 두 살 차이 나는 동생만 남아 있었다.

어린이날, 어린 두 딸보다 더 신나하며 집을 비운 남편의 빈 자리를 엄마는 묵묵히 채웠다. 집에 있는 재료로 김밥을 말아 조촐한 도시락을 싼 후, 집 앞 슈퍼에서 좋아하는 과자와 빵 하나씩을 쥐어주고 걸어서 20분 거리의 사적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광장에 도착해 연못 주위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빠 없이 온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아빠는 부재중
 
아빠는 내 유년 시절의 수많은 나날 속에서 자주 부재중이었다.
 아빠는 내 유년 시절의 수많은 나날 속에서 자주 부재중이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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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바깥에 나왔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엄마 눈치를 살폈다.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 비친 엄마의 표정이 쓸쓸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다. 지금의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렸을 엄마가 지치고 외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건 내 마음이 비쳤기 때문일까?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들이는 지루했다. 이미 여러 차례 가 본 사적공원의 풍경도, 연못 속의 비단잉어들도 그랬다. 동생과 나는 말없이 손에 든 과자를 부숴 연못 속의 잉어들에게 던져줬다. 호기심에 다가온 잉어가 뻐끔뻐끔 입을 벌리며 과자부스러기 주위를 맴돌다 다시 어디론가 헤엄쳐갔다. 마치 잉어도 우리를 두고 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의 일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내 유년 시절의 수많은 나날 속에서 자주 부재중이었다. 하지만 아빠 없는 명절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이 특별한 날들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서글픔으로 남았다. 아빠가 가는 곳은 분명 엄청 재미있는 일이 가득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자 아빠가 미웠고 부러웠다.

한편 아빠가 그 재미있고 신나는 세계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잠들지 못한 채 아빠를 기다렸다. 엄마의 한숨에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러다가 우리의 마음도 모른 채 거나하게 술이 된 모습으로 해맑게 돌아온 아빠를 보는 순간 미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불 속에서 몰래 울곤 했다.

여전히 아빠는 한결같은 열정으로 취미 생활을 누리며 퇴직 후의 삶을 보내고 계신다. 한 주 일정이 빡빡해서 약속을 잡으려면 미리 말해야 할 정도다. 이런 아빠를 우리 가족 외의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몸도 마음도 나이에 비해 젊게 살면서 자기만의 멋을 갖춘 노년의 아빠는 확실히 멋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빠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남편 때문에 힘겨웠을 엄마에게 유난히 감정이입을 하던 감수성 예민한 첫째 딸인 나는 아빠를 꼭 빼닮은 성향으로 세상을 열렬히 탐하면서도 그런 모습에 죄책감을 가지는 모순적인 상태로 10대와 20대를 보냈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의 낯선 모습

삼십 몇 년이 흘렀다. 나는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세월과 함께 아픔은 서서히 옅어졌고 상처는 아물었지만 상처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남아버린 흉터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에는 존재한다. 상처를 남기지 않는 삶이 더 좋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남은 상처 덕분에 뒤늦게 배우기도 한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후자였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야 돌이켜보면 아빠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휴일이 끝나면 착실히 일상으로 복귀했고 가족을 부양했다. 취미에 빠져서 자주 집을 비웠지만 주말 퇴근길, 동네 빵집에서 커다란 봉지 한 가득 빵을 사오는 다정함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당시엔 당연하게 여겨졌던 체벌 한 번 받아본 기억이 없고, 내 의견을 먼저 들어주셨다. 

아빠는 함부로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편안하게 대화를 하는 부녀 사이는 아니었지만 꼭 필요할 때는 마주앉아 의견을 나누었고, 내 생각을 확인한 후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던 취업과 결혼 문제에서도 기다리는 믿음을 보여주셨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로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원한 것과 달랐지만 아빠는 나름의 방식대로 나와 동생을 사랑했던 것이었다.

어린 시절 보이지 않았던 아빠는 지금, 내 아이에게 최고 인기 있는 외할아버지가 되었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유일한 어른, 있는 그대로 자신을 대하며 함께 노는 할아버지에게 아이는 본능적으로 기댄다.

엄마가 되고서야 아이를 통해 아빠의 새로운 면을 보았고, 부모의 입장에서 힘겨움과 어려움을 느낄 때면 과거의 아빠를 돌아본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관심과 나를 돌보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부모가 되어간다. 

내 아이를 대하는 아빠를 보며 왜 어린 시절 나에게는 이렇게 해 주지 않았을까 서운함이 불쑥 올라올 때도 있다. 감사함과 뒤섞인 양가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예전의 서운한 감정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하지만 아빠의 다른 모습을 뒤늦게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아이를 대하는 아빠를 보면서 어린 날 상처 받은 나도 천천히 치유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직장인으로 생활하면서 비로소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 아빠는 직속 상사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직종 특성상 한 자리에 오래 근무하는 곳이었고 상사의 입김이 인사고과에 크게 작용했다. 그는 오랜 기간 아빠를 승진에서 누락시켰다. 당시 아빠의 심정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 내가 직장에서 갖는 열패감을 느끼듯 고뇌했을 아빠를 생각했다.

직장 내 아빠의 힘겨운 역사는 훗날 통쾌하고 유쾌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상사가 대체된 후 아빠는 곧장 승진했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현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도 탔다. 이듬해, 직급 권한으로 승진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한번 만에 시험을 통과한 아빠는 연속 승진으로 그간의 설움을 다 씻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이제는 나도 짐작할 수 있었다.

특별히 가진 것 없는 외벌이로 아이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참고 버텼을 아빠를 생각했다. 때려 치우고 싶어도 차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버티기 위해 숨구멍을 찾아야 했을 한 사람,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뎠을 아빠가 그려졌다.

지금 내 앞의 아빠를 본다. 가운데 머리카락이 빠지고 양옆에 남은 머리도 희끗하다. 등도 많이 굽었다. 세월이 아빠에게 앗아간 것들이 하나 둘 보인다. 그때는 없었던 것도 있다. 요즘 이야기가 봇물 터지는 아빠를 보면서 어쩌면 젊은 시절의 아빠는 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게 아닌지 짐작해 보기도 한다.

상처만 남은 줄 알았더니... 나에게 남은 아빠의 유산 
 
아빠는 지금도 계절과 무관하게 주 3회 이상 근처 산에 올라 바위를 타고 계신다. 같이 활동하는 분들은 주로 30~50대로 아빠가 가장 고령이다.
 아빠는 지금도 계절과 무관하게 주 3회 이상 근처 산에 올라 바위를 타고 계신다. 같이 활동하는 분들은 주로 30~50대로 아빠가 가장 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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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부재와 결핍의 시간 동안 원망이 깊게 쌓이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아빠 덕분에 나도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아빠를 보면서 자연스레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찾고 키워가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내 삶을 보다 주체적이고 풍요롭게 만든다. 일상의 힘겨움 속에서 난 작은 숨구멍이 되어 삶을 더욱 활기차게 해 준다.

그리고 아빠는 나이와 상관없이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퇴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하던 운동을 허리 문제로 못하게 되었을 때 허리에 좋다는 암벽 등반을 새로 배우셨다. 아무리 인생 60부터라고 하는 요즘이지만 주위에서 우려가 많았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도 계절과 무관하게 주 3회 이상 근처 산에 올라 바위를 타고 계신다. 같이 활동하는 분들은 주로 30~50대로 아빠가 가장 고령이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아빠를 보면 걱정스럽다가도 한결같은 꾸준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새로운 도전에 앞서 남들의 시선, 두려움에 망설이다가도 아빠를 떠올리며 용기를 낸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부정적인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해묵은 감정을 정리하면서 아빠도 서툴렀을 뿐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나도 늘 무뚝뚝한 딸이었다. 올 겨울 가장 추운 날, 바위를 타러 가신다는 아빠에게 핫팩을 챙겨드리며 소망했다. 이제는 좀 더 솔직하게 서로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오래 오래 건강하고 활기차게 지내시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group낀40대 http://omn.kr/group/forty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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