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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님, 이 처리는 우리가 하는 게 아닌 거 아시죠."

간호사는 누워있는 옆 침대 환자에게 정중하게 말했지만 그 속에 나무람이 묻어있다고 느꼈다. 조금 전까지, 화장실 앞에 오물이 묻은 환자복이 구겨져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안되겠다 싶어서 간호사를 찾아 알렸다. 정황을 살펴보니 옆 환자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민원이 들어왔고 이를 해결해 주는 눈치였다. 즉 간호사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남편의 무릎수술을 위해 이틀 전 입원수속을 밟았다. 2인 병실에는 이미 한 분이 있었다. 웃으며 인사할 준비를 하고 들어서는데 환자는 웅크린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게 먼저 보였다. 이미 안녕하지 못한 걸 확인하는 순간 눈인사는 고사하고 한방을 쓰게 되는 불편함이 예상됐다.

"안녕하세요."

말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살짝 겁도 났다. 비어있는 침대 옆에 짐을 내려놓으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다가가 큰소리로 인사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나를 의식했는지 마지못해 얼굴을 들었다. "네"가 전부였다.

축농증 수술을 했다는 그는 기침과 가래, 설사로 힘든 상태였다. 몸은 바싹 야위어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되었다. 간병인도 없이 툭하면 간호사를 불렀다. 설사로 인해 옷은 물론 침대, 화장실이 불결해서 속으로 오늘만 견디자고 마음먹었다. 축농증 환자라는 사실을 몰랐을 땐 전염을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래도 심했다.

자정 무렵, 환자 체크를 위해 들어온 간호사가 물었다.

"간병인을 쓰셔야 되지 않을까요?"
"돈이 없어요."


간호사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보행은 자유로웠지만 하나하나 간호사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게 무리라는 걸 알 법도 한데. 그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나와 남편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수술 후 어느 정도 회복되면 나부터 내려오고, 식판 내놓는 일이나 간단한 도움은 옆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겠냐고. 덤으로 다양한 정보도 얻고 심심치 않고. 6인실 입원은 우리의 합리적인 의견을 모은 결정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도움을 미리 정해 놓은 격이었다. 첫 날이야 입원실 사정으로 2인실에 왔지만 내일 병실이 나오면 옮기자고 재차 다짐했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가래 뱉는 소리, 앓는 소리, 남편의 거침없는 코고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는 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간호사의 시간별 체크와 소음 속에서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이 되었다. 남편은 언제 물어봤는지 간호사를 통해 알게 된 정보를 전했다. 옆 사람은 축농증 환자이고 며칠 지나면 좋아질 거니 좀 참아달라고 했단다.

마침내 입을 연 그의 한 마디

하루를 지내면서 2인실의 장점이 보였다. 아프다는 통증 외엔 조용했고 수납도 넉넉한데다가 창가에 있을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6인실의 형편도 궁금해서 지나는 척 둘러보았다. 창가 두 병상을 빼고는 기댈 곳 없는 보호자 간이침대가 불편해 보였다. 여유시간을 활용해 글도 쓰고 드로잉하기에는 지금 병실이 낫겠다 싶어 다시 남편과 의논했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문제는 옆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한 병실에서 일주일 이상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낸다는 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남자 분이어서 말 붙이기도 어려웠지만 환자의 입장에선 자잘한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을 것 같은데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퇴원한다면 후회될 것 같아 기회를 엿보았다.

화장실에 구겨져있는 척척한 환자복이 또 눈에 띄었다. 새벽녘에 들렸던 간호사의 말이 이걸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간호사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다 간병인의 몫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가? 오물이 잔뜩 묻은 옷이 선뜻 집어지지 않았다. 오며가며 눈에 자꾸 밟혔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와 한 병실을 쓰면 내가 보호자인데. 일단 이 옷가지는 내가 처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하 편의점에서 일회용 장갑을 사서 올라왔다. 비닐봉투에 옷가지를 담고 또 다른 게 없을까 둘러보며 그분에게 물었더니 웃옷을 가리켰다. 옷을 갈아 입기 위해 단추를 풀고 있었다. 어깨부터 팔목까지 터져있는 환자복의 단추들. 옷 벗는 걸 도왔다. 뼈만 앙상한 몸이 드러나는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이 들고 아프면 누구나 비슷해지는 이 모습.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그가 입을 열었다.

봉투에 담아 오물실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건강한 사람에겐 너무도 쉬운 일상생활이 아픈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들 투성이다. 밥 먹는 일부터 용변까지. 그러니 병원에 오면 일상을 사는 삶이 기적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건강할 때 조금씩 내 손과 발을 빌려주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기적을 선물할 수 있는 기회가 보인다.

덕 좀 보려고 6인실을 계획했다가 주저앉길 잘했다. 병실에서 보내는 특별한 크리스마스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트리
▲ 병원의 크리스마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트리
ⓒ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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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블로그 및 브런치 게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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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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