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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온 이야포 미군폭격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이춘혁 어르신이다.
 부산에서 온 이야포 미군폭격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이춘혁 어르신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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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 초청 토론회가 여수시 남면사무소와 이야포 현장에서 열렸다.

24일 개최된 토론회에서는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 여수시의회 전창곤 시의장, 박성미 특위 위원장,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사업 엄길수 추진위원장,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부소장과 토론자 유가족인 이춘혁 어르신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야포 미군폭격 희생자 유가족 이춘혁 어르신의 생생한 증언
 
1950년 8월 3일 미군폭격사건이 발생했던 여수시 남면 이야포 해변이다.
 1950년 8월 3일 미군폭격사건이 발생했던 여수시 남면 이야포 해변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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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에서 온 이야포 미군폭격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 이춘혁 어르신(87)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자. 녹취 내용 중 중요 부분만 발췌했다.

"본 나이는 87살인데 호적 나이는 93살로 돼 있습니다. 너무너무 억울하니까 진화위에서 좀 밝혀줬으면 좋겠습니다.

마포구 염리동 살았습니다. 살다가 전쟁이 6월 25일 날 났거든요. 아버지 엄마 우리 5형제 그래서 일곱 식구가... 옛날에 여수 뱃머리가 있었습니다. 중앙동에... 거기서 다들 하나씩 이고 지고, 아마 천여 명 될 겁니다. 그러니까 또 아군이 자꾸 후퇴하니까 또 배를 태워서 거제도 욕지, 욕지국민학교에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 만은 쌀 배급 주면서 또 배 타라 했어요. 배 탔는데 어디 갔냐 하면 전라남도 여수시 안도, 안도 이야포섬에 거기에 도착해서 거기서 밤을 넘어 잤습니다.

8월 2일에 도착했습니다. 2일에 도착해서 배에서 봐도... 우리 중 한 분이 누가 밥을 했는지 모르게 주먹밥을 갖고 왔어요. 주먹밥 해서 밥 나눠주는 중간에 미국 제트기가 네 대가 왔어요. 네 대 중 한 대가 우리가 제일 앞에 선장 바로 밑에 우리가 있었어요.

일곱 식구가 타고 있었는데, 이제 제트기가 이렇게 날아오더니 선발대가 이런 거 보고 저하고도 눈도 마주쳤습니다. 우리가 선박 바로 앞에 있었으니까... 제트기가 우릴 보더니 같이 빙 돌더니 그냥 총을 쏘더라고요, 배에다가 기관총을요. 쏘고 돌아와서 또 쏘고 그 다음엔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자, 밑에 내려와서 제가 나이 열여섯(당시 나이)이지만은 마포구 염리동 살아서 수영을 좀 했어요, 한강에 가서... 그래서 저는 헤엄치고 나왔습니다. 그 당시에 그 바닷가에 주막이 한 채 있었어요. 숨어 있는데 누나하고 동생하고도 배 타고 나왔어예. 그 셋이 만났는데 그럼 조금 이따가 누가 하는 말이 느그 엄마 저기 물에 빠져 죽었다 하더라고.

가보니까 엄마하고 동생하고 물에 빠져 돌아가셨고, 뗏목배 타고 오다가 해서 또 밑에 육지로 나오다가... 안도 나오다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물에 빠져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총 맞아 돌아가셨고 또 동생이 물에 빠져 죽었고 엄마도 그렇게 죽어 그러니까 일곱에서 셋이, 그러니까 네 사람 돌아가시고 세 사람만 남았어요. 누나가 열여덟, 제가 열여섯, 여동생이 열세 살이었어요. 그 삼형제만 살았어요. 그래서 안도 이야포에 그 산에 가 숨으라해서 산에 가 숨었습니다.

숨었다가 한 5일 있다가 밤에 피난민도 다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나와 가지고 작은 뗏목배 그걸 타고 소리도로 갔습니다. 소리도 섬에 가서 오르고 있었는데 해군 배가 와가지고 피난민 다 타라고 하더라고요 피난민 다 탔습니다. 다 타고 죽은 사람 다 내려 놓고.. 그전에 우리가 배 타고 나오는데 배 타고 배에서 또 들여다보니까 이야포 그 섬 안에서 산불이, 바닥에 불이 막 타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옆에 아저씨보고 '아저씨 저게 무슨 불입니까' 제가 여쭤봤어요. 그러니까 '죽은 송장들 배 다 실어가지고 불 붙였다'하더라고... 그래 가지고 저의 엄마 동생도 거기서 다 돌아가셨어... 죽은 것(사람)도 다 불로 태웠지."


어르신은 "이거 우리가 너무너무 억울하니까, 명예회복과 보상도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울컥했다. 현재 부산에서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춘혁 어르신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

박성미 여수시 특위 위원장 "내년에는 더 많은 분이 이 아픔 치유"
 
24일 여수시 남면 면사무소에서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24일 여수시 남면 면사무소에서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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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미 여수시 특위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오랜 시간 지역사회에서 노력해 주신 우리 엄길수 추진위원장님과 김경호 이사장님, 향토 관련된 일들을 다 잘 알고 계시는 박종길 부소장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오늘 계신 분들하고 많은 소통을 통해서 우리가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거라든가 잘못된 그런 부분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에는 더 많은 분이 이 아픔을 치유 받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정근식 위원장 "말씀 잘 듣고 진화위 운영에 반영할 수 있었으면"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은 "오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2002년도에 '동아시아평화인권국제학술회의'를 여수에서 개최한 바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 아주 의미 있는 행사 이후 19년 만에 여순특별법이 만들어지는 성과가 있었고요. 그 과정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포 사건이 알려지게 되어서 저는 뜻깊은 그런 자리가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23일 이춘혁 어르신과 저녁 함께 하면서 사연을 좀 들었고요. 오늘 오면서 다시 또 두룩여에 관한 얘기도 좀 들었는데 좀 더 말씀을 듣고 또 공부를 하고 그런 기회를 시작했습니다"라며 "몇 년 전인지 모르겠지만 이 비렁길을 처음 개발한 이후에 한 1년쯤 지난 다음에 한 번 그 길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주 인상 깊어서 다시 한번 가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마침 두 번째로 방문할 수 있게 돼서 또 개인적으로는 참 기쁘고 좋습니다"라고 여수 남면과의 특별한 인연을 이야기했다.

또한 "오늘 의미 있는 말씀 잘 듣고 진실화해위원회 운영에 반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했다.

전창곤 여수시의회 의장 "정근식 위원장, 크리스마스를 맞아 큰 선물"
 
여수시의회 전창곤 시의장,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 박성미 특위 위원장이 토론자의 발표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여수시의회 전창곤 시의장,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 박성미 특위 위원장이 토론자의 발표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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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곤 여수시의회 의장은 "여러분 대단히 반갑습니다. 오늘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인데요. 뜻깊은 날에 이곳 멀리 여수까지 와주신 우리 진실화해위원회 정근식 위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큰 선물을 주시려고 오시지 않았나 그런 마음을 갖게 됩니다"라며 정 위원장의 방문을 기뻐했다.

이어 전 의장은 "여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아픈 비극, 이야포, 두룩여의 아픈 역사를 널리 드러내는데 이렇게 애를 써주신 우리 엄길수 여수넷통 전 이사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올 8월에, 또 작년에 추모제를 지낼 수 있게 노력하고 헌신해주신 점에 대해서" 감사하다며 "여수시의회 박성미 위원장님께서 토론회, 간담회 또 조례까지 제정을 하면서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해주신 데 대해서"도 이 또한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어서 "이춘혁 어르신, 형제 부모를 잃고 그 오랜 세월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살아오셨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다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제라도 조금이나마 역사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어떤 시기가 온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가 "이야포 두룩여의 아픈 역사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또 미군, 미국에 공식적인 사과가 있을 때까지, 또 정부를 대표해서 우리 정근식 위원장님께서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 만큼 정부가 또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조만간에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좀 뜻깊은 시간들이 됐으면"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엄길수 추진위원장,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서 언론 역할 강조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과 여수시 박성미 시의원, 그리고 토론 참가자들이 여수시 남면 이야포 평화공원에 모여 함께 협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과 여수시 박성미 시의원, 그리고 토론 참가자들이 여수시 남면 이야포 평화공원에 모여 함께 협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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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미군폭격 위령사업 추진위원회 엄길수 위원장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언론의 역할'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올해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발발한 지 71주년이 되는 해"라며 "1950년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해상에서 미국 공군기의 발포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으로 아직 종결 되지 않은 대표적인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여수 시민 언론사인 <여수넷통뉴스>가 지역의 아픈 역사를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여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포 사건을 집중 탐사 보도해 왔다"며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팩트는 주한 미군 전투기의 발포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젠 정부가 나설 때"라며 "미국의 역할, 특히 주한미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는 현대사에서 반복되는 미국의 책임론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은 진정한 우방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진화위의 진실규명 범위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권위주의 통치시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 그밖에 역사적 중요 사건으로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이다.

2022년 12월 9일(공휴일 제외)까지 진실규명을 위한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누리집에 가면 내려받을 수 있다. 또한,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접수할 수 있으며 진실화해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시·도 및 시·군·구)에서 신청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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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해보다 먼저 떠서 캄캄한 신새벽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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