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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 모퉁이가 빅토르 위고의 집이다.
▲ 보쥬 광장에서 바라본 빅토르 위고의 집 사각형 모퉁이가 빅토르 위고의 집이다.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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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4구, 보쥬 광장(Place des Vosges)에서 2분 거리에는 빅토르 위고의 집(Maison de Victor Hugo)이 있다. 파리시에서 관리하는 뮤지엄(Les Musées de la Ville de Paris)으로 지정되어 2층 아파트 관람은 상설 전시로 무료다. 1층에서는 유료 기획전시가 열린다.  

필자는 12월 21일(현지시각) 빅토르 위고의 집을 방문했다. 보건 증명서(Pass Sanitaire)를 확인하고, 가방 검사를 한 후, 2층 계단으로 한 걸음씩 올랐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들려오는 닳고 닳은 나무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조차도 1832년에서 1848년까지 이 곳을 걸어다녔을 빅토르 위고의 실제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 같아 내 귀에는 즐겁게 들렸다.   

2층 아파트 입구에는 빅토르 위고의 조각상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16년간 살았다. 그는 망명을 포함하여 거처를 자주 옮겨다녔는데, 16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곳에서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1851년 망명을 떠나기 전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Marie Hugo)는 1802년 2월 26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나서 1885년 5월 22일 파리에서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현재 파리 판테온(Panthéon)에 안치되어 있다. 판테온은 파리 5구, 라탱 지구에 있으며 프랑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필자는 이전에 판테온에 방문해서 빅토르 위고의 관이 들어있는 방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 모두 숙연했다. 

그는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극작가 등 낭만주의를 선도하는 작가였다. 그는 살아생전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1831), 세기의 전설(La Légende des siècles, 1859),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1862), 웃는 남자(L'homme qui rit, 1869) 등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뮤지컬, 영화 및 애니메이션 등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공간에 들어서자 마자 노트르담 드 파리와 관련된 그림과 콰지모도(Quasimodo)의 조각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의 작품은 당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여러 예술가들이 그림과 조각품을 만들었다. 

그 옆으로 이어진 방은 일본 식기 및 그림과 중국풍 가구가 많았다. 그 당시에 빅토르 위고의 집에서 사용하던 식기와 가구들로 꾸며놓았다. 2층 창문 밖에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에워싸인 보쥬 광장이 펼쳐졌다. 

보쥬 광장의 풍경은 사계절 중 겨울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사각형으로 심어진 나뭇의 앙상한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있고, 겨울 한낮의 햇살에 비친 나뭇가지는 마치 빨간색 나뭇가지 인양 붉게 물들었다. 

그 옆 방으로 걸음을 옮기니, 빅토르 위고의 친필 편지 및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200여 년 전 그가 쓴 글은 많이 닳아 있었지만 글씨에서 느껴지는 필체의 힘은 2021년 현재까지 강하게 전해지는 듯 했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Gwynplaine)이 내려다 보며 활짝 웃고 있다. 마치 빅토르 위고가 이 방을 찾은 사람들에게 웃으며 환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문학 외에도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집에는 실제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사회 정의, 도덕, 법, 인간 존엄성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하고 성찰한 그는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권력층의 독재와 부패를 풍자하는 글을 썼다.
 
빅토르 위고의 침실에 걸려있는 액자. 그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져있다.
 빅토르 위고의 침실에 걸려있는 액자. 그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져있다.
ⓒ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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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그가 생을 떠나는 순간 누워 있던 빨간 침대가 나왔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그림도 함께 걸려있었다. 그림에는 '레옹 보나(Léon Bonnat)가 조르주 위고(Georges Hugo)에게'라고 씌여 있었다. 

레옹 보나는 프랑스 화가이며, 조르쥬 위고는 빅토르 위고의 손자이다. 흰색 옷을 입고서 눈을 감고 있는 빅토르 위고는 편안해보였다. 그는 마지막에 "검은빛이 보인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치 사상가, 화가, 문학가 등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문학 작품도 많이 남겼다. 또한, 아들과 딸을 사고로 잃는 슬픔으로 인해 십 년간 창작 활동을 멈추는가 하면, 영국에서의 망명 생활, 반세기 동안 이어진 쥘리에트 드루에(Juliette Drouet)와의 불륜 등다사다난했던 그의 삶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며, 보쥬 광장을 한 바퀴 걸었다. 사각형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빅토르 위고의 집을 보쥬 광장에서 올려다 보았다. 그가 집으로 들어가며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시대를 고민하고, 식사를 하고, 침대에서 잠을 자는 그런 모습들을 하나하나 상상해본다.

시대를 통찰하며 펜으로 사람들에게 사회 문제를 고발하고, 사상을 전파하고자 했던 그가 만약 2021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썼을까?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를 능가하는 또 한편의 대작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빅토르위고, #빅토르위고의집, #프랑스, #파리,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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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살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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