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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희한한 일이다. 아이가 어릴 땐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어 빨리 커라, 빨리 커라, 하는데 아이가 크고 나면 그 시절이 그리워지니 말이다. 한참 뛰어다니는 아이를 쫓다 넋이 나가 있으면 동네 언니들이 "그때가 좋을 때야" 하고 말하던 게 생각난다. 사춘기가 되면 학교 다녀와서 고개만 끄떡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고. 내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웃으면 "자기 애는 안 그럴 것 같지?" 하는 말도 세트처럼 뒤따라 온다. 사춘기는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시기라 어느 정도 부모와 거리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가 쌩하니 고개를 돌리고 말도 안 하려 든다면 많이 서운할 것 같다.

그즈음 <어바웃타임>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에 나오는 가족이 참 행복해 보였다. 계절마다 함께 하는 이벤트가 있고 가족끼리 자연스럽게 바닷가에서 차를 마신다. 그걸 보니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가족이 뭔가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드는 거야. 가족 모두가 재미있고 즐거운 이벤트. 그러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계속 이어지겠지. 어쩌면 사춘기라는 장벽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몰라.'

거창하지 않은, 우리 가족만의 것 
 
우리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우리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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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아이가 4살 때부터 가을이 되면 춘천 근처에서 하는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 텐트를 치고 음식을 먹으며 낮부터 밤늦게까지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지만 이 행사가 유명해지고 나니 아기자기한 맛이 사라지고 티켓 가격도 비싸져 점점 가지 않게 됐다. 가끔 가던 스쿠버 여행도 어느 순간 흐지부지되고 종종 참여했던 마라톤 대회도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된 지 2년이 다 되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전업주부인 자신은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만 기다리는데 아이가 주말에 친구와 약속을 잡으면 그게 그렇게 서운하다고. 이제 더 친구랑만 놀려고 할텐데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쓸쓸하다고 했다. 친구의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부모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을 나이다.

"그래서 가족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이건 가족과 함께 하는 거, 라는 생각이 들게 말이야."

내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물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거?"
"뭐 여름엔 같이 스쿠버를 한다거나."


친구는 그런 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며 코웃음을 쳤다. 난 단지 예일 뿐이라고 덧붙였지만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실 말한 나도 가족 문화라고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가족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는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내려놓는다. 거창하지 않고 소소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우리 가족만의 이벤트가 생각났다.

연초가 되면 그해 이루고 싶은 계획을 7가지씩 비밀 노트에 쓴다. 다른 사람이 쓴 내용은 보지 않는 게 원칙이다. 다 쓴 노트는 테이프를 칭칭 감아 옷장의 깊은 구석에 박아 놓는다. 다음 해 1월 1일이 되면 그 노트를 꺼내 정산한다.

자신이 쓴 내용을 읽고 번호 앞에 동그라미나 엑스표를 친다. 이룬 것은 함께 손뼉 치며 축하해주고 이루지 못한 내용은 깔깔 웃으며 넘어간다. 생각보다 허무맹랑한 목표가 많다. 일 년 중 1월 1일은 자기 자신을 가장 과대평가하게 되는 날인가 보다.
 
비밀노트
 비밀노트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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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쓴 일기를 보니 작년에 적은 7개 목표 중에 동그라미 친 건 2개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동화 습작을 쓰고 있어서 '공모전 당선'이라는 목표도 있었고 '책 세 권 내기'라는 목표도 있었다. 그 목표를 읽자 딸과 남편이 와하하 웃었다. 한 권도 아니고 세 권이라니,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소소한 이벤트는 또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하는 '마트 습격'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휴일도 아닌데 왠지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나가서 분위기를 내려고 하면 차가 무지하게 막히고 음식값도 비싸다. 그래서 우린 크리스마스이브에 마트에 가서 평소에 주저주저하며 사지 못했던 음식들을 마음껏 산다.

그날 하루는 "초콜릿이라 안 돼. 과자는 한 봉지만 사" 이런 말은 할 수 없다. 난 훈제 오징어와 견과류를, 아이는 젤리나 초콜릿을, 남편은 주류를 신나게 담는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큰 상을 펴고 애니메이션을 보며 맛있게 먹는다. 평소에는 큰 상에 오르지 못할 간식거리들이 메인 음식과 함께 큰 상을 점령하고 있는 걸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지금 남편과 나와 아이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자. 충만한 시간은 어디로 가지 않고 각자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저, 지금이 즐겁다면 

<어바웃타임>에서 아버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간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바로 어린 아들과 함께 집 주변의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이었다. 거창한 것이 아닌 함께한 소소한 일상이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다른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 시간이 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분주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연연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저 지금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함께 즐거운 일을 많이 하자고 생각한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엄만, 아무것도 몰라!"라고 하면 뭐 어쩔 수 없지. 그 시기가 잘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 엄마가 날 기다렸듯. 그냥 그렇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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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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