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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연말 거리가 한산해졌다, 이웃을 향한 애정의 손길이 줄어들까 염려되는 2021년 세밑.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말 거리가 한산해졌다, 이웃을 향한 애정의 손길이 줄어들까 염려되는 2021년 세밑.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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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끝 무렵이면 매양 사용하게 되는 사자성어이니 다시 입에 올리기가 무엇하지만, 2021년 한 해도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었다. 온갖 일이 많았고, 어려움과 힘겨움도 더불어 많았다.

특히 다난(多難)이라 부를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숱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은 서민들의 한숨을 불렀고,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정치적 상황에 많은 유권자가 실망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어려움과 힘겨움만 해도 숨이 찬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공황과 공포는 올해 내내 지구 전체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다난' 속에서도 어딘가 숨겨진 말간 '희망'을 찾아내야 하는 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의 책무이자 권리 아닐까?

신축년이 시작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눈 한 번 감았다 뜨니 어느새 세밑이다. 걱정과 환멸을 거듭한 것만 같이 느껴진 2021년이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연말이 왔다.

<논어>(論語) '술이 편'(述而 篇)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풀어 쓰면 대략 이런 뜻이다. "군자는 항상 평상심을 유지하지만, 소인배는 늘 걱정만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리를 알려주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21세기 오늘 군자로 사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인이 돼 제 안위와 자신의 경제 상황과 제 자식의 미래만을 걱정하며 전전긍긍 살아가는 게 현실.

매년 연말이면 우리는 습관처럼 불우이웃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건 이제 일종의 통과의례에 가까워져 불행한 이웃에게 물질이 아닌 마음까지 주는 게 쉽지가 않다.
 
차가운 겨울. 푸른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들.
 차가운 겨울. 푸른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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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인 이웃을 돌아볼 땐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올해 세밑엔 진실한 마음을 담아 타자(他者)를 돌아봤으면 한다. 만약 누군가 그런 결심을 했다면 단국대학교 안도현 교수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먼저 읽어보면 어떨지. 짧지만 던지는 메시지의 파동은 긴 노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적지 않은 문학평론가들은 말한다. "좋은 시는 짧다". 이 말은 짧은 시가 좋은 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란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포착해 거기서 체득한 인식 변화를 짤막한 문장 안에 담아내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누구나 알고 있다.

본디 사물의 본질은 복잡한 게 아니다. 간명하고 단일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그걸 찾아내 '짧고 강하게' 전달하는 일종의 샤먼(Shaman)이다.

시인 안도현이 '연탄'이란 사물에서 찾아낸 본질은 '자신을 태워 다른 존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 그런데 인간은? 제가 가진 온기를 타인에게 모두 나눠주고 기꺼이 절멸할 수 있을까?

단 3행의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의 울림이 큰 건 본질적이고 아픈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누구도 감히 "나는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하기 힘든.
 
다난했던 2021년의 분위기는 화려한 불꽃보다 어두운 하늘에 가까웠다.
 다난했던 2021년의 분위기는 화려한 불꽃보다 어두운 하늘에 가까웠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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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웃 사랑과 이타심이 효용 닿을 수 있는 상황과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중략)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하략)


앞서 말한 것처럼 사물의 본질은 간명하다. 인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자신에게 슬픔으로 느껴지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슬픈 일이고, 자신이 환히 웃으며 기뻐할만한 일은 이웃에게도 기쁜 일일 터.

그래서다. 이번 세밑은 최소한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려울지라도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을 찾아 다독여주는, 내 슬픔만큼 이웃의 슬픔을 아파할 줄 아는 사람으로 연말을 맞으면 어떨지.
 
어둠이 다가올 무렵 겨울비 내리는 안동 월영교를 걷는 사람들.
 어둠이 다가올 무렵 겨울비 내리는 안동 월영교를 걷는 사람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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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진심과 체온을 담아 이웃과 타자를 돌아봤다면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자기반성은 발전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성(自省)은 한 해의 끝에 썩 잘 어울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일러공 시인'으로 이름을 알린 이면우란 사람이 있다. 조금 더 싼 밥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 40분을 걸어 다닌 시인. 차가운 12월 겨울밤. 자신은 불기운 하나 없는 냉골에 자면서도, 아내와 아이들의 방에는 밤새 보일러 조절기를 뜨겁게 열어 놓았던 그는 이런 절창(絕唱)을 만들어낸다. '화엄 경배'다.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 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중략)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화엄(華嚴)이란 '자신의 행동으로 큰 덕을 쌓아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화엄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이른바 거룩한 성직자나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성인군자뿐일까?

그렇지 않다. 이면우는 가난한 보일러공이 화엄에 이른 비밀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화엄 경배'는 축적된 자신 삶의 경험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시였을 것이다.

한 해의 끝 세밑이다. 지금 연민으로 이웃을 살피고, 자성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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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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