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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현 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회장
 차용현 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회장
ⓒ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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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겪은 것이 열 두 살 때인데... 내가 산 세월을 어찌 다 말할꼬, 참말로 힘들었지."

경남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희생자 합동묘지 앞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며 70여 년 세월을 떠올려 보는 함양군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차용현(85) 회장. 그의 기억이 어머니와 도북마을 뒷산을 넘어 홍역으로 잃은 막내 동생을 묻고 왔던 그 날에 멈추었다.

"그 난리에 6학년 졸업도 못했지. 이름만 졸업했다고 했지 중학교도 못 갔고. 중학교 모자 쓰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부럽든지."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동생 둘,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래도 공부가 하고 싶어서 중학교 강의록 책 12권을 받아봤다. 사찰에서, 산골서당에서 한자도 배우고 시도 짓고 명심보감, 소학, 대학까지 읽었지만 공부하고 내려와 농사짓고, 일하면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고시 책 한 권까지 받아보고 더는 공부를 못했다.
 
차용현 회장
 차용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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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현 회장은 12살 때부터 85세가 된 지금까지 도북양민학살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쳤다. "평생을, 칠십 이삼년을 물고 흔들었지. 이 일에 다 바쳤어." 차 회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관련서류를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못했다. 평생 미행을 당하고 감시를 받아 온 세월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었다.

며칠 전 그는 후배를 불렀다. "1949년 그 해, 태어난 지 한 달 됐던 그놈에게 갖고 있던 자료를 책으로 만들어줬지." 신문에 실린 기사, 탄원서 낸 기록, 국방부 회신, 협찬 받았던 것, 사망자 명단까지.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한권씩 줬다. 나중에 너희들이 그 일을 하라고."

1949년 음력 7월28일 수동면 도북마을 주민 32명은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인당 당그래산으로 끌려가 집단 학살을 당했다. 그 후, 다 죽고 다 죽어 세세한 역사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차용현 회장뿐이다.

"유족 중에 내 나이가 제일 많아. 나이가 많아도 상세히 기억에 담고 있는 사람은 없지. 나는 이 일에 12살 때부터 가담했어. 유골 파서 옮기고 여기에 관심을 쓰며 70여 년을 계속해왔지."
 
차용현 유족회 회장
 차용현 유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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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회장을 맡은 차용현 회장은 희생자의 유골을 발굴해 구 도북초등학교 뒤 장자골 합동묘소에 유해를 안장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을 받아 낼 때까지 찾아가지 않은 곳이 없고 만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진실규명을 통해 도북양민학살 희생자의 원혼을 위로할 수 있었던 차용현 회장은 함양양민희생자 추모공원을 준공하게 되면서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 추모공원에는 희생자 181명의 이름이 새겨진 양민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졌다. "돌에 이름을 꼭 새기고 싶었지. 변하지 않으니까. 백 년, 이백 년 변하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차용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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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이 있기까지 차용현 회장의 삶은 누구도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당그래산에 아버지를 묻어둔 채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고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 "살아남은 것이 고달팠지. 저기 산 너머에 가서 나무 짐 해 와서 팔고 옥수수 심어서 먹고."

돈벼락도 맞아 봤다는 차용현 회장은 처음 양잠을 시작했다. 닭을 키워 논을 사고 젖소를 키워 우유를 내고 사과 과수원도 했다. 그중에 가장 돈벌이가 잘 됐던 것이 약국이었단다. "가짜로 고등학교졸업장을 만들어 허가를 냈는데 뼈도 자르고 산파노릇까지 했어. 근데 약을 판 돈이 제일 많이 남더라고. 그래서 자식 한 놈은 의사로 만들어야겠다 싶었지. 막내아들이 의사야."

연좌제에 묶여 감시 속에 살아야 했던 차용현씨는 행여 자식들도 힘든 일을 겪을까 하여 도북에서 일찍 내보내 공부를 시켰다고 했다.

13년간 등산을 하며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북한산 등 165개의 봉우리를 점령한 차용현 회장. 산 정상에 서서 그가 빌었을 소원이 쉽게 짐작이 간다. 위령탑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어루만지는 그가 이제야 웃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립니다.


태그:#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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