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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 됩니다.[기자말]
죽 값
오성일

아무리 물가가 올랐어도 그렇지 세상에 뭔 놈의 죽이 구천 원이냐고 사랑니 뽑은 스물한 살 아들 녀석이 푸념을 할 때, 만 원짜리 설렁탕을 먹은 쉰한 살의 나는 별 대꾸를 못 했다 사랑니는 왜 비집고 나와서 아들놈 세상 걱정을 시키는지, 사랑니 뽑을 그 무렵엔 나도 세상에 의아한 게 많았는데 사랑은 시들고 사랑니 자리는 흔적도 없고 물가 오르는데도 어지간히 길이 들어 나는 왜 식은 죽처럼 미지근히만 살고 있는지, 오늘은 새삼 물가가 걱정되고 요즘의 나도 좀 걱정이 되었다

- <미풍해장국>, 솔, 2021, 28쪽


요즘은 장보기가 무섭습니다. 5인 가족인 탓에 한번 장을 보면, 십만 원을 넘는 것은 우습습니다. 그렇다고 장을 보러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비현실적인 좀비나 귀신보다 장보기가 더 무섭다고 해야 할까요.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장을 보러 가는데요, 무엇인가를 산 것 같지도 않은데, 지갑은 눈에 띄게 홀쭉해집니다. 장거리로 냉장고를 채워 넣으면, 든든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요, 다음 날 저녁 반찬거리가 걱정됩니다. 저 혼자만이 느끼는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야채며 고기며 값이 오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오르지 않은 것이 하나 있는데요, 월급이라고 하네요. 수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여러분들의 소득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상황에서 내 월급이 제자리걸음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성일 시인의 시집 '미풍해장국'
 오성일 시인의 시집 "미풍해장국"
ⓒ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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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는 미친 듯 오른다고 합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탓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금리도 올리고, 덩달아 대출금리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 풀린 돈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하늘로 솟구친 것입니까. 땅으로 꺼진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엉덩이 밑에 깔린 것입니까.

시인의 아들은 죽 한 그릇에 무슨 9000원이나 하냐면서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죽 한 그릇에 무슨 9000원입니까. 찹쌀에 물 넣고 약간의 재료(재료비)를 넣고 끓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조금만 더 면밀히 살펴볼까요, 인건비와 프렌차이즈 수수료도 얼마 더 들어갈 것뿐입니다. 임대료가 포함될 것이고요, 전기료, 난방비, 관리비도 들어가겠죠. 카드로 계산할 테니 카드 수수료도 들어갈 것이고요, 10%의 부가세도 붙겠습니다. 어… 9000원 하겠는데요.

우리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거미줄처럼 복잡해서 인드라의 구슬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겠습니다. 빼곡한 그물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죽값이 저렇게 비쌀 수 있어'라고 투덜거릴 수 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에 맞게 운영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요,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정한 소득'이 필요합니다. 해고가 곧 벼락 거지로 이어지는 까닭, 소득이 멈추는 순간 지금까지 지켜왔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끌 족'의 경우 더욱 심각한 까닭은 소득의 대부분을 아파트 대출금으로 상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직장을 다니는 유일한 까닭이 아파트 대출금 상환 때문이라고요. 만약, 대출금 상환 도중 집값이 내려가고, 해고까지 당한다면, 이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느냐의 노력과 상관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바라보려는 세상은 무엇입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이 따뜻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까. 아픈 사람들이 조건 없이 치료받을 수 있고, 배고픈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민주*', 그 바탕은 왜 그리 어려운 것입니까. 제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가요?

*민주(民主) :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의 의미이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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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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