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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준 무를 씻어 놓았다.
 지인이 준 무를 씻어 놓았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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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무 좀 줄게 무 말랭이 만들어 물 끓여 드세요. 당뇨에 좋다고 하네요"라는 전화가 지인에게 왔다.

내 오랜 지인은 텃밭을 몇 년째 하고 있다. 나는 텃밭에서 나오는 상추며 호박 등 싱싱한 야채를 가끔 얻어먹고 산다. 얻어먹을 때마다 미안하면서 고맙고 마음이 따뜻하다. 사람이 누군가를 챙기고 사는 일은 신경을 써야 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사랑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날 아파트 길 건너 서점 앞에서 7시 40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감동이 오면서 외롭지 않고 좋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처럼 사랑을 주어 본 적 있는가? 혼자 생각해 본다. 

다음 날 아침이다. 아침저녁으로는 날이 쌀쌀하다. 나는 추위를 잘 탄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주섬 주섬 입고 머플러를 찾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한 지인은 출근 시간이 늦을세라 무는 길 옆 전봇대 옆에 내려놓고 갈 테니 가져가라고 한다.  

바쁘게 서둘러 무를 가지러 나가보니 커다란 비닐봉지에 무와 동그란 그릇이 하나 있다. 그걸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그릇을 열어보니 굴 넣고 만든 생채가 들어있었다. "어머나 어쩜 생채를 이리 곱게 썰어 담았을까?" 마음이 금세 환해진다.

무는 작지만 탱글탱글 맛있어 보인다. 무 김치 잘 먹는 사람이면 무를 쪼개 김치를 담가도 맛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김치도 별로 먹지를 않는다. 흙이 많이 묻어있는 무를 씻으면서도 마음은 내내 따뜻하다. 무 값은 돈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마음이다. 사람의 관계는 마음으로부터 온다. 

씻은 무는 물기를 뺀 다음 도마에 올려놓는다. 편한 자세로 무를 손가락 굵기로 썬다. 혼자 무를 써는 일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남편과 같이 무를 썰면서 예전에 살아왔던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일이든 혼자보다는 둘이 하면 힘겨운 일도 금방 해 낸다. 원래 꼼꼼한 성격인 남편은 일을 하면 마음에 들게 잘해 준다. 
     
별일 아닌 듯한 무 썰기를 놀이 삼아하는 게 즐겁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삶이 생기가 있다. 일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무말랭이는 효능이 많다. 무를 말리면 칼슘이 10배 철분은 20배 이상 많아진다고 한다. 항암효과와 항산화 기능으로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며 기관지 질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특히 나처럼 당뇨가 있는 사람에게도 효능이 많다는 말을 티브이에서 보았다.

요즈음 가을 무 가격이 매우 싸다. 5000원이면 커다란 무 한 다발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을 떨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무말랭이를 만들어 차도 만들어 먹고 말린 반찬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날씨가 춥고 코로나로 외출을 자주 할 수 없지만 일거리를 찾아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좋다. 내게 주어진 하루 시간이 소중하다.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게 건강이다. 건강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을지 매번 생각이 많다. 지인이 전해준 무를 가지고 무말랭이를 만드는 이 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다가 만드는 무와 달리 기쁨이 배가 된다. 나이가 들면 건강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일을 가장 소망하게 된다. 마음 건강 몸 건강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일이다.
 
무를 썰어 채반에다 놓고 말린다
▲ 배란다에 말리는 무 말랭이 무를 썰어 채반에다 놓고 말린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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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아닌 일 같지만 썰어 말린 무를 보니, 옛 어른들 사는 모습이 생각나고 마음이 푸근하다. 작은 일에 마음이 행복해진다. 오늘 아무 일 없이 내게 선물처럼 찾아온 하루가 있어 감사하다.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 몫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법정스님 말을 새겨본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 행복하려고 내 마음속에 다짐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태그:#무 말랭이, #스스로 행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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