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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수도권의 모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어느 교수는 연구년을 3번이나 가졌다. 교수 경력이 40년에 달했기 때문이다. 교수 정년이 65세이니 40년 가까이 교수로 재직하려면, 20대 후반에 임용되어야 한다. 그 교수는 자신이 박사학위 과정 때 교수에 임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임 뒤 몇 년은 재직 중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재학 중인 학교로 수업을 받으러 다니는 다소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로 인해 대학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배출되는 학자들은 적어 석사학위만 있어도 수월하게 교수로 임용되고는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석사학위만으로 교수에 임용되는 것은 꿈같은 소리에 가깝다. 국내 박사만이 아닌 소위 '외국물을 먹었다'는 외국 박사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청춘을 온전히 바쳐 박사학위를 받은 늦깎이 청춘들은 언젠가 임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경력을 쌓느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간강사로 활동하고는 한다. 이렇게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십여 년씩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다 보면, 운이 좋다면 교수로 임용되고는 한다.

하지만 교수의 꿈을 품고 시간강사 활동을 한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시간강사가 직업이 된 청년들

오늘날 대부분은 젊은 박사들은 교수 임용의 꿈은 접은 채 시간강사를 직업으로 살아가고는 한다. 젊은 박사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나마 시간강사 자리도 나이가 들면 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시간강사 생활의 끝엔 고학력 실업자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불과 20여 년 만에 석사학위만으로도 임용되던 교수가 이젠 박사학위에 수많은 연구 및 강의 실적을 가지고도 꿈도 못 꿀 자리가 되었다.

시간강사를 지칭해 흔히 '보따리장수'라고 한다. 연구실이 없고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 다니며 강의를 해야 하다 보니 보따리 수준의 커다른 가방에 온갖 책과 수업 자료를 넣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기말고사 철이 되면 그 보따리는 더욱 커진다.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을 대비해 학생들의 시험지를 일일이 챙겨 다니고는 하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는 매년 재계약을 하는데, 이 재계약에 학생들의 수업평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수업평가에는 성적이 매우 민감하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의 시험지를 모조리 가지고 다니며 이의제기가 있으면 그때마다 즉석에서 시험지를 꺼내 설명을 해줘야 한다. 결국, 보따리만 커지는 것이다.

2007년 김건희씨는 수원여자대학교에 초빙 교수로 지원했다. 당시 전국에는 교수 임용이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전국 대학을 떠돌며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젊은 박사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그들 중 태반은 14년이 지난 2021년 현재, 나이든 박사가 되어 더는 시간강사 자리도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 중 극히 일부만 교수로 임용되어 여전히 대학에서 학문을 하고 있을 것이다.

14년 전 김건희의 행위와 14년 후 윤석열의 반응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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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젊은 박사들에게 수원여자대학교 초빙 교수 자리는 그야말로 절박함의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초빙 교수라고 하더라도 "교수"라는 두 글자가 들어간 이력은 추후 교수로 임용되는 데 큰 경력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박했을 그 자리는, 허위 이력을 기재한 의혹이 있는 김건희에게로 돌아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신의 부인이 허위 이력 의혹이 있는 지원서 자리와 관련해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라며 "무슨 교수 채용이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시간강사라는 거는 전공 이런 걸 봐서 공개 채용하는 게 아니다"며 깎아내렸다. 시간강사 자리 하나에 목숨을 걸고 수십, 수백 통의 이력서를 뿌려야 했던 젊은 박사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결코 내뱉을 수 없는 발언이다.

[관련 기사] 
김건희 허위 이력 묻자 윤석열 "채용비리? 현실을 잘 보라" http://omn.kr/1wfhx
현직 시간 강사입니다, 현실 모르는 건 윤석열 후보입니다 http://omn.kr/1wfie
김건희, 안양대에 허위 수상이력 제출... "실수 아니라 상습" http://omn.kr/1wfgk

그까짓 시간강사 자리, 대학에서 아는 사람들끼리 소개받아 나눠 갖는 것이라는 식의 윤석열의 발언은, 그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가능한지 몰라도 2007년 대한민국을 살아갔던 수많은 평범한 젊은 박사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2007년 김건희에게 시간강사는 잠시 거쳐 가는 자리였을지 몰라도, 당시 시대를 함께 살아갔던 평범한 청년들에게는 절박하고 소중한 자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14년 전 자신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긴 청년들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고, 시간강사를 대학에서 '지인들끼리 나누는 하찮은 자리' 정도로 깎아내린 윤석열 후보 역시 2007년 김건희와 공범일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들의 권력 놀음에 고통받은 청년들의 상처를 다시 한번 후벼팔 수도 있는 후안무치의 범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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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미안함
 
"겸임교수라는 건 시간 강사에요. 채용 비리 이러는데, (시간 강사는) 이런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닙니다. 그 현실을 좀 잘 보시라고요."

"여러분 가까운 사람 중에 대학 관계자가 있으면 시간 강사를 어떻게 채용하는지 한번 물어보라."

"무슨 교수 채용, 이렇게 (얘기)하는데, 시간 강사라는 건 전공 이런 걸 봐서 공개채용하는 게 아니다. 어디 석사과정에 있다, 박사과정에 있다, 이러면 얘기하는 것." 

"대학에 아는 분들 있으면 시간 강사 어떻게 뽑는지 한번 물어보라."
 
15일 윤 후보의 말이다. 석사학위만으로 교수가 되었다던 그 교수와 비슷한 또래인 윤석열은, 그들이 누렸던 풍요로움은커녕 보따리장수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 결국은 고학력 실업자가 되어야 하는 오늘날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미안함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공채하지 않는다"라는 윤석열에게 이러한 마음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고 청년을 외치는 국민의힘 윤 후보가, 과연 이 땅의 청년들이 오늘날 겪고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국민의힘 측은 이날 관련해 "2006년 당시 시간강사는 대학교수 등 믿을 만한 학계 인사 추천에 의해 먼저 위촉이 결정되고 경력자료는 그 후 제출된 것이지 사전 '공개경쟁'을 통한 정식교수 채용과는 다르다", "겸임교수는 시간강사와 같은 것으로, 계속적 근로관계를 맺는 '채용'이 아니라 특정 과목 시간을 강의해달라고 '위촉'하는 것이므로 '채용 비리' 운운은 어불성설"이라고 해명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은 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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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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