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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혼도 인천에서 했다. 당연히 인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작 인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애관극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정확히 말하자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사실을 불과 5년 전에 알 정도였다.

몇몇 분들에게 이를 여쭤보니 알고 계신 분들이 적었고 애관극장과 함께 자주 갔던 현대극장, 미림극장, 오성극장, 인천극장, 자유극장 등등 사라진 옛 극장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본 칼럼을 통해 사라진 인천의 옛 극장들이 인천시민 개인에게는 추억이었으며, 인천에는 평생 친구였고 우리나라에는 역사였다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 기자 말

 
1920년대 초 부평 산곡동 일대에 부평연습장이 설치됐다. 일본군이 포격 연습을 하던 곳이었다. 사진은 부평연습장.
 1920년대 초 부평 산곡동 일대에 부평연습장이 설치됐다. 일본군이 포격 연습을 하던 곳이었다. 사진은 부평연습장.
ⓒ 부평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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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부평 산곡동 일대에 부평연습장이 설치됐다. 일본군이 포격 연습을 하던 곳이다. 이후 1939년 이곳에 일본 육군의 병기 제조소인 조병창이 설치됐다.​
 
부평 애스컴시티, 1948년. 출처 norb-faye.
 부평 애스컴시티, 1948년. 출처 norb-faye.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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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부평이 항구와 가깝고 서울과 중국을 연계하는 요충지이며 물자 조달이 쉬워 병참기지로 삼은 것이다. 1945년 해방 후 미국 제24군단이 이 부지를 애스컴시티로 이름 짓고 운영했다. ASCOM은 군수지원사령부라는 뜻인데 Army Service Command의 약자이다.​​
 
1949년 2월 4일 경향신문
 1949년 2월 4일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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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애스컴 요원채용 광고다. 당시 면사무소 서기 월급이 4000원이었다. 쌀 2가마 가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애스컴 요원 월급이 2만2000원 이상이었다. ​​

한국전쟁 후 애스컴은 캠프 마켓, 캠프 테일러, 캠프 그란트 등 7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부대 안에는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을 위한 클럽, PX, 도서관, 병원, 체육관, 교회, 야구장, 극장 등이 생겼다. 그런데 1973년 한국 국방부로 그 기능이 이전되면서 많은 미군병력들이 경북 왜관 등지로 이전해 애스컴시티가 해체됐다. 이곳에는 미군을 위한 빵과 과자를 만드는 캠프 마켓만이 남게 됐다.​
 
미군극단 공개공연을 알리는 신문기사. 1961년 7월 22일 조선일보.
 미군극단 공개공연을 알리는 신문기사. 1961년 7월 22일 조선일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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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극단 공개공연. 대한적십자사 마련으로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주한미군과의 친선교류를 위하여 미군극단 '애스컴'의 공연을... (중략) 상연할 연극은 미들마스와 홀의 합작인 '용감한 사형인'과 카워드 작인 희극 '레드펩퍼'다."

이 기사를 통해 애스컴에 미군극단 애스컴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겸 가수인 대니케이 공연소식을 알리는 신문기사. 1961년 12월 21일 경향신문.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겸 가수인 대니케이 공연소식을 알리는 신문기사. 1961년 12월 21일 경향신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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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겸 가수인 대니 케이가 크리스마스를 기해 미국사병들을 위문차 내한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했는데 부평 애스컴 '이즈 서비스 클럽'에서는 23일에 공연했다.​​
 
부평 애스컴 노천무대에 봅 호프와 라나 타나가 주한 유엔군 위문공연을 했다. 1962년 12월 25일 조선일보.
 부평 애스컴 노천무대에 봅 호프와 라나 타나가 주한 유엔군 위문공연을 했다. 1962년 12월 25일 조선일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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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 호프와 라나 타나가 주한 유엔군 위문공연을 위해 내한했다. 부평 애스컴 노천무대에서 막을 올렸는데 영하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미군들이 열광했다는 기사다.​​
 
1960년대 애스컴 모습.
 1960년대 애스컴 모습.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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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스낵 바이고 오른쪽이 극장이다.​​
 
애스컴 내부에 있던 극장(US ARMY ASCOM THEATER).
 애스컴 내부에 있던 극장(US ARMY ASCOM THEATER).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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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상영됐던 영화필름은 인근 백마극장 등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80년이 흐른 2020년에야 캠프 마켓 일부 구역이 일반 시민에게 개방됐다. 
 
부평 캠프마켓 정문
 부평 캠프마켓 정문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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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마켓 B구역 안내도
 캠프 마켓 B구역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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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극장이었던 곳
 당시 극장이었던 곳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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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 분의 설명에 따르면 11번 건물이 극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란다. 사무실로 표기된 것은 최종 용도가 사무실이었다는 것이다.​
 
애스컴에서 극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애스컴에서 극장과 연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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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뒷면
 건물 뒷면
ⓒ 아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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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물 앞 설명 표지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조병창 본부 혹은 조병창 병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극장, 연회장, 사무공간 등으로 이용했다. 얼마 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선정한 꼭 지켜야 할 문화유산에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미림극장과 함께 조병창 병원이 선정됐다.

글· 사진 윤기형 영화감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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