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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국제평화센터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동물의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로 열고 있는 특별전 팸플릿.
 오사카국제평화센터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동물의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로 열고 있는 특별전 팸플릿.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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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남기는 상처는 실로 지대하다. 극단의 폭력이 일상화된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다. 살아남은 이들 역시, 회복할 수 없는 아픔을 내면에 품고서 여생을 보낸다.

특히 근현대에 수립된 총력전 체제는 전쟁의 파괴력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전국민이 동원의 대상으로 설정됨에 따라 전투원과 비전투원, 전방과 후방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은 총력전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패전한 1945년도에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23.9세, 여성 37.5세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수치는, 전쟁에 희생되는 것에 있어 계층과 남녀노소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 위에 인간의 존엄성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어떤 형태로든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사회구성원의 범주 밖에 놓여진 동물들 역시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사카국제평화센터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동물의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로 열고 있는 특별전(9월 1일부터 12월 26일까지)은, 전쟁의 참상을 동물의 입장에서 조명하는 새로운 시도다. 오사카국제평화센터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확전된 경위를 설명하며 오사카 공습을 중심으로 당시 시민들이 겪었던 참상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 시설이다.

부끄러운 인간의 역사
 
오사카 덴노지동물원의 침팬지 '로이드'와 '리타'는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선전당국은 이들을 국민전의 고양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다.
▲ 무장한 모습으로 연출된 침팬지 오사카 덴노지동물원의 침팬지 "로이드"와 "리타"는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선전당국은 이들을 국민전의 고양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다.
ⓒ 오사카 덴노지동물원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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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동물의 생명과 평화'는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동물들에게까지 전쟁의 참화가 들이닥쳤던 시대상을 전한다. 기자는 12일 현장에 다녀왔다.

시민들의 주요한 볼거리였던 동물원은 총력전 체제 하에서 이용가치가 높은 선전도구였다. '동식물의 명칭에 적성외국어(敵性外国語,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문부성의 권고에 따라 동물원에서는 때 아닌 국어순화운동이 벌어졌다.

펠리컨를 가람조(伽藍鳥), 캥거루를 주머니쥐(袋鼠)로 개칭하려는 계획이 추진되기도 했고, 실제로 오사카 덴노지 동물원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침팬지 로이드는 '카츠타'로 개명됐다. 선전 당국은 주목도가 높은 침팬지나 코끼리 등을 '방공연습'에 동원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국민의 전의를 끌어올리고자 했다.

시간이 흐르고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동물원의 환경 역시 극단적으로 열악해졌다. 사육사들과 수의사들까지 징병되면서 동물원의 관리 인력은 턱없이 모자랐다. 사람이 먹을 식량조차 부족하던 때에 동물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물들은 영양실조로 고통받았다. 서서 생활하는 것이 기본인 코끼리조차도, 굶주림에 지쳐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동물원의 존재는, 극한의 전쟁 속에서 처치곤란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살처분
 
인기가 높았던 코끼리는 국민전의 고양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전황이 악화되자 코끼리 역시 '공습으로 동물원을 탈출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살처분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 "방공연습"에 동원된 코끼리 인기가 높았던 코끼리는 국민전의 고양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전황이 악화되자 코끼리 역시 "공습으로 동물원을 탈출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살처분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 오사카 덴노지동물원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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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전쟁을 위한 선전도구로 동물들을 이용해왔다. 하지만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자 그들의 생명을 외면했다. 이미 1939년부터 검토되던 '맹수살처분' 조치는, 1943년 8월 11일 도쿄 우에노 동물원을 시작으로 현실이 됐다. 공습으로 인해 동물들이 동물원을 탈출하게 되면 시민들이 위험해진다는 것이 살처분의 이유였다.

이에 따라 전국의 동물원에서 코끼리, 사자,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 맹수로 지목된 동물들이 차례차례 독극물 주입, 사살, 교살, 먹이제공 중지 등의 방식으로 죽음을 강요 당했다. 우에노 동물원의 고가 타다미치(古賀忠道) 원장은 훗날 1989년 '테레비 도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살처분 조치가 '맹수 탈출로 인한 피해예방보다는 국민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10종 26마리의 동물들이 죽임을 당한 오사카 덴노지 동물원에서는 살처분에 관한 비화가 전해진다. 살처분 지시를 받은 사육사들은 먹이에 독극물을 섞어 동물들에게 지급했다. 그동안 굶주렸던 동물들은, 뜻밖의 먹이를 허겁지겁 먹다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중독사하게 됐다. 그런데 유독, 표범 한 마리만은 한사코 독이 든 먹이를 먹지 않았다. 그 표범은 태어난 직후 어미에게 버림받은 뒤, 하라(原) 사육사에 의해 인공포육으로 자라난 개체였다.

사육사를 신뢰한 표범의 마지막
 
하라 사육사의 손에 자라난 표범은 그를 신뢰했다.
▲ 하라 사육사와 표범 하라 사육사의 손에 자라난 표범은 그를 신뢰했다.
ⓒ 오사카 덴노지동물원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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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사육사는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자신의 손으로 보내겠다'며 표범의 목에 밧줄을 걸었으나, 어릴 때부터 하라 사육사에게 자라났던 탓에 그를 신뢰했던 표범은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하라 사육사는 자리를 이탈했고, 표범은 다른 사육사들에 의해 교살됐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동물원 동물들에게 닥쳤던 수난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은 인간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제국 일본은 필요에 따라 동물들을 이용하거나 희생시켰다. 이는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 속 전쟁을 치렀던 국가들 중, 동물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킨 적이 없는 예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상흔은 동물을 비껴가지 않는다. 그 점을 짚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오사카국제평화센터의 '동물의 생명과 평화' 특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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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전쟁체험에 관한 연구에 정진하고 있는 오사카 거주 유학생입니다. 한일친선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편견과 혐오 너머로 새로운 지면을 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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