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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용인은 용곡현과 천대받던 처인부곡으로 나눠져 있었다. 몽골군이 고려를 침입할 당시 처인부곡의 백성들은 처인성에서 처절한 전투를 펼친 끝에 승리 했다.
▲ 몽골군과의 치열한 전투현장, 처인성 예로부터 용인은 용곡현과 천대받던 처인부곡으로 나눠져 있었다. 몽골군이 고려를 침입할 당시 처인부곡의 백성들은 처인성에서 처절한 전투를 펼친 끝에 승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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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편을 시작으로 파주, 연천, 고양을 거쳤던 경기도의 도시 이야기가 어느덧 용인 편만 남겨두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28개의 시와 3개의 군 이야기를 진행했지만 용인의 정체성이 가장 복잡하고, 그만큼 할 이야기가 가장 풍부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용인의 이미지는 정말 다채롭다. 우선 에버랜드, 한국민속촌 등 대한민국 유수의 관광지가 모여있는 고장이기도 하고,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신갈분기점이 있어 많은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용인을 지나간다.

최근 20년 사이 용인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인구 39만이었던 용인시는 분당, 수원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수지, 기흥의 급격한 개발을 통해 어느덧 인구 11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가 되었다.      
 
용인은 이제 인구 11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아직 도시의 정체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 수지외식타운의 전경 용인은 이제 인구 11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아직 도시의 정체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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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용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야 산자락까지 빼곡하게 아파트로 들어찬 수지구 정도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경기도 중부에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용인은 그 넓이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먼저 용인의 역사를 살펴보며 그 이야기의 막을 열어보도록 하자. 용인은 크게 처인구로 대표되는 동부지역과 기흥구, 수지구의 서부지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동쪽으로 갈수록 산지가 넓게 발달하지만 경안천, 탄천 등 여러 물줄기가 도시를 두루 지나가며 평야가 어느 정도 발달해 사람들이 예로부터 거주하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동백동의 택지지구를 개발하면서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용인은 다른 경기도의 도시처럼 한강유역과 멀지 않았기에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소속이 계속 바뀌곤 했다. 그만큼 멸오, 구성, 거서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던 용인은 고려 건국 이후 용구현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용인지역에는 천대받던 사람들이 살아 특수 행정구역으로 구분되었던 향, 소, 부곡 중 하나인 처인 부곡이 함께 있었다.

이 처인 부곡은 훗날 몽골의 침입 때 김윤후의 활약으로 처인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처인현으로 승격되었다. 이처럼 따로 존재하던 용구와 처인은 조선시대에 비로소 각각 앞글자와 뒷글자를 따서 하나로 합쳐지니 지금의 용인이 된 것이다.
     
용인의 다른 별칭중 하나가 박물관의 도시다. 경기도박물관, 호암미술관을 비롯해 수많은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특히 동백지구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용인시 박물관에서 용인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관람 할 수 있다.
▲ 용인시박물관 용인의 다른 별칭중 하나가 박물관의 도시다. 경기도박물관, 호암미술관을 비롯해 수많은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특히 동백지구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용인시 박물관에서 용인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관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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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좀처럼 용인에 대해 역사적인 유적이 더러 남아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지만 사실 용인은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가 존재하는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신라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6세기 중반에서 9세기 사이에 조성된 대규모 고분군인 보정동 고분군이 있으며, 군사적 요충지인 할미산성을 수축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국보로 지정된 현오국사탑비가 있는 서봉사 지를 비롯해 공세리 오층 석탑, 어비리 삼층석탑, 문수산 마애보살상 등 다양한 불교 유적이 용인 전역에 고루 분포한다.
      
용인은 사대부들의 묘지가 많기로 유명하다. 고려말 대학자 정몽주의 묘를 비롯해 조광조, 채제공에 이르기까지 산골짜기 마다 그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 채제공의 묘 용인은 사대부들의 묘지가 많기로 유명하다. 고려말 대학자 정몽주의 묘를 비롯해 조광조, 채제공에 이르기까지 산골짜기 마다 그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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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용인을 가리키는 말 중에 생거진천 사후 용인이라는 말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모가 용인으로 이장한 이후 대권을 잡았다는 풍문이 돌면서 더욱 유명해지긴 했지만 용인은 사실 사대부의 안식처로 선호된 고장이기도 하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용인은 삼남지방으로 올라오는 교통의 요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많은 사대부 가문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으며 그들이 남긴 묘역이 용인에 다수 남아있다. 산과 하천이 풍부한 용인땅은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난 곳이 많았고, 서울과 가까운 점도 어느 정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고려 말 마지막 충신이자 성리학의 거두였던 정몽주를 필두로 조선 중기의 개혁가 조광조, 영정조 시대를 풍미한 채제공까지 200여 기에 이르는 사대부 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단순히 무덤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덤 중 39기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피장자가 안치된 무덤을 중심으로 묘비, 망주석, 석인상 등 다양한 석물들이 남아있다. 묘비를 통해 그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엿볼 수 있어 역사를 되새기는 여행으로 제격인 곳이다.
     
수도권의 급속한 확장으로 인해 용인은 급속도로 발전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기흥호수공원이 있는 기흥구와 수지구는 난개발 논란이 있을 정도다.
▲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흥호수공원 수도권의 급속한 확장으로 인해 용인은 급속도로 발전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기흥호수공원이 있는 기흥구와 수지구는 난개발 논란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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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통틀어 보면 그 당시 사회에서 사대부들의 역할이나 지위, 그들이 가진 정신세계가 막대했기에 사대부들이 남긴 무덤, 저택, 별서들을 살펴보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용인의 면적은 경기도 내에서 8위, 군을 제외한 시중에서는 5위로 꽤 넓은 크기를 자랑한다.

하지만 처인, 수지, 기흥 3개의 구 중 인구 80프로 이상이 수지, 기흥구에 몰려있고 반대로 면적 80프로 이상 처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 동네를 넘을 때마다 도시의 풍경이 극적으로 달라진다.

분당, 광교신도시의 연장선상으로 보이는 수지구와 경기도박물관, 백남준 아트센터, 한국민속촌 등 문화시설이 있지만 난개발로 인해 도시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는 기흥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용인에서 가장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처인구가 아닐까 싶다. 사실 처인구는 용인시청 주위의 도회지뿐만 아니라 순대로 유명한 백암, 처인성이 있는 남사, 양지, 포곡, 모현 등 다양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방으로 다양한 볼거리가 분포되어 있어 테마와 주제를 잡고 둘러봐야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용인의 매력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경기도는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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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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