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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평민당의 김대중은 보라매공원에서 수십만이 참석하는 시국대강연회를 개최하여 노태우정권의 공안통치에 맞섰다.
▲ <공안통치 저지 및 민주정치 회복을 위한 시국대강연회> 소식을 알리는 한겨레신문 1989년 평민당의 김대중은 보라매공원에서 수십만이 참석하는 시국대강연회를 개최하여 노태우정권의 공안통치에 맞섰다.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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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제와 독재정치가 밀실의 산물이라면 민주주의는 광장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은 광장이 없었다. 그 대신 공원에서 민중의 집회가 이루어졌다.

평민당은 노태우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길을 찾았다. 검경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수구족벌 언론이 적대시하면서 믿을 것은 국민이고 호소할 장소는 공원이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그 후에 확장되었고 촛불혁명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평민당은 1987년 12월 13일 보라매공원에서 국민에게 창당보고를 한 이후,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에 맞서 1989년 8월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 내 새마을운동장에서 다시 시국대강연회를 열었다. 

독재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안기부와 검찰이 헌정사상 초유의 제1야당 총재를 강제 구인하고 평민당의 명줄을 끊으려 들었다. 평민당이 1천만인 서명운동을 검토하면서 시작한 장외투쟁의 일환이었다.

평민당 의원총회는 8월 1일 결의문을 통해 "국운걸린 투쟁에 국민의 동참을 호소한다"고 장외투쟁의 불가피성을 밝혔다.

국운 걸린 투쟁에 국민의 동참을 호소한다

〈의총 결의문〉

우리 평민당 의원 일동은 우리당에 주어진 역사적 소명과 국민적 여망을 받들어 누구에 의한 어떠한 5공회귀 음모도 국민의 힘으로 분쇄하는 데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면서, 작금의 공안통치 종식과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결의를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1. 정치가 실종되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시급한 현안 문제가 산적해 있는 이 시점에 몇 개 상임위만 여는 것은 무의미하고 민의에도 배치되며 궁극적으로 공안통치를 합리화시켜주는 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여당과 다른 두 야당은 실종된 정치를 부활하고 제반 민생현안을 폭넓게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의 소집에 즉각 동의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요구한다.

2. 공안당국은 우리당 소속의원 2~3명 추가입북설, 김대중 총재의 대북 친서설 등 참으로 해괴한 낭설을 고의적으로 유포하며 우리당을 음해하고 우리당에 대한 불신 풍조를 조장했다. 이러한 반민주적 행태에 관해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안기부장을 파면하고 발설책임자를 엄중 처단할 것을 촉구한다.

3. 5공청산과 민주화는 13대 국회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이며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국민적 지상명령이다. 

우리 평화민주당 의원 일동은 극소수 반민주 수구세력에 의한 반역사적 준동을 단호히 저지할 것을 다짐하며, 국운이 걸린 이 투쟁에 국민 여러분께 결연한 자세로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

                                                                평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일동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한 집회는 사전여흥으로 농악과 창, 이경희의 성악에 이어 최영근 공안통치 저지 민주정치회복 중앙투쟁본부장의 개회사, 이우정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과 김대중 총재의 강연 순으로 진행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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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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