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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18일 군산 월명운동장에서 유세하던 당시 김대중 평민당 후보
 1987년 11월 18일 군산 월명운동장에서 유세하던 당시 김대중 평민당 후보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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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당은 창당 이래 대선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소야대 정국의 제1야당으로서, 3당야합 이후에는 맘모스 거여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전개하였다.

창당 3주년에 앞서 "고독한 투쟁 그러나 유일한 희망 평민당의 업적"을 11가지로 내세우고 "민주ㆍ민생ㆍ치안 파탄시킨ㆍ민자당정권의 죄악상"을 13가지로 분석했다.
                                   
5공회귀기도 저지 
공안정국 평민말살음모 분쇄  

지난해 봄 중간평가를 빙자한 파국유도로 정국의 민주화 흐름을 역전시키고 5공회귀를 기도하던 여권내 수구세력의 음모를 일부의 오해까지 받아가면서 끝내 좌절시켰다. 

당시 야당의 가면을 쓰고 중평강행론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던 김영삼씨의 3당야합으로 중평을 둘러싼 반민주세력의 음모는 1년이 채 안돼 명백히 입증된 셈이다. 중평음모가 좌절되자 공안정국을 조성, 민주화의 보루인 제1야당 말살작전을 폈으나 평민당은 단결된 투쟁과 국민의 힘으로 공안광풍을 극복하고 끝내 승리하였다.
   
전두환증언 5공실세 책임추궁
광주학살 정호용 공직 추방

지난 2년간 특위정국을 주도하며 5공비리의 진상과 책임규명에 당력을 기울여 전직대통령(전두환씨)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가는 선례를 만들었다. 장세동, 이학봉, 허문도씨 등 5공실세에 대한 책임처벌을 관철시켰으며, 특히 지난해 말에는 5공청산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80년 광주학살의 실질책임자 정호용씨를 공직에서 추방시킨데 이어 전씨를 국회증언대에 세우는 가시적 성과를 이루어냈다.   
"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 1987년 11월 30일, 제13대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 <사진 = 전시 도록에서>
 "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겠다." 1987년 11월 30일, 제13대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 <사진 = 전시 도록에서>
ⓒ 강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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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독립 전기마련
근로기준법 개정 8시간 노동제

13대 국회의 최대 사명인 5공 잔재청산과 악법개폐를 통한 민주화의 제도적 장치마련에 최선을 다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장기수를 양산했던 악법 「사회안전법」과 「사회보호법」을 대폭 개정, 사실상 폐기시켰으며, 5공의 정치악법 「정치풍토쇄신법」과 「국가원로자문회의법」도 없앴다. 또한 종전 '허가제'였던 각종 집회 개최를 '신고제'로 바꾼 집시법개정, 최루탄 남발을 제한시킨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을 통해 평화적 집회ㆍ시위보장의 틀을 마련했으며, 검찰권독립과 국회견제장치를 위한 헌법재판소법 제정도 평민당의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근로기준법」을 대폭 개정, 8시간 노동제를 실현했으며, △노인복지법 △장애자복지관련법 △남녀고용평등법 △가족법의 제정ㆍ개정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입법과 중산층ㆍ봉급생활자를 위한 세법개정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동안 평민당의 줄기찬 노력에 힘입어 성취를 눈앞에 두었던 국가보안법, 안기부법, 노동관계악법, 의료보험법 등의 개폐가 3당야합으로 인해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씨비리 밝힌 국정감사주도
노(盧) 후보 예산전용 총리사과 받아내

13대 국회 시작부터 5공비리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해온 평민당은 야대국회였던 2년 동안 특위정국을 주도하며 전씨일가 비리를 밝혀내고 국정감사, 당조사단활동 등을 통해 수많은 권력형 비리를 규명했다. 특히 지난 임시국회에서는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선거자금 전용사실을 낱낱이 폭로, 12.16선거의 금권부정을 입증시키며 총리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또한 재벌ㆍ권력의 경제비리를 언론에 제보하다 보복 구속된 이문옥 감사관의 폭로사실을 조사 작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한편, 이감사관 석방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농수산물 유통구조개선
민생치안 봉사대 발족활동

물가안정 대책으로 △'선안정 후성장' 정책추진 △불요불급한 예산의 집행보류 △재벌기업의 여신관리강화 및 부동산투기근절 △생필품의 원활한 수급조정을 위한 농수산물 유통구조개선 △한은법개정을 통한 중앙은행의 독립과 통화관리 정책강화, 총통화율 19%선 억제 등을 수립, 정부당국에 평민당안의 채택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민생치안 대책으로는 지난 2월 17일 「민생치안봉사대」를 발족시킨 이래 주요 우범지대 순찰 및 계몽봉사 활동을 펼쳐 국민생활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11월 13일 거행된 평화민주당 현판식
 11월 13일 거행된 평화민주당 현판식
ⓒ 김삼웅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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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5만원 임대주택
재벌 비업무용 토지실태 폭로

주택난 해소를 위한 중장기 대책으로 영구임대주택 건설을 정부에 촉구, 부분적 수용을 관철시켰다. 88년 정기국회에 제출해 놓은 「공공주택건설특별조치법」은 10년간 1조 원씩을 투자해 7~12평 규모의 영구임대주택 2백만호를 건설, 1백만 원 수준의 보증금과 월 3~5만원의 임대료만 내면 영구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기대책으로는 서울 등 대도시주변 국공유지나 유휴지에 조립식간이주택(퀀세트) 15만 호를 건설, 영세세입자들을 임시수용하는 한편 전세융자금을 총 5천 억 이상으로 늘려 장기저리(5년거치, 5년상환)로 지원해주는 방안 등을 마련, 정부당국에 강력히 촉구했다.(정부가 일부 정책모방, 수용) 이와 함께 주택증축의 활성화를 위해 종전 주택 신증축에 대한 각종 규제완화를 추진, 최근에는 주택의 건폐율ㆍ용적률 제한을 완화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정의경제실현을 제1의 정책과제로 표방하며 부동산투기 근절을 통한 경제안정에 전력을 경주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투기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정부당국의 「5ㆍ8부동산투기억제조치」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농가호당 1백만원이상 혜택
외국농산물 전면수입개방 저지

국민경제의 뿌리인 농어가 회생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온 평민당은 조합장직선제와 수매가의 국회동의를 관철하고 농어가부채 탕감을 줄기차게 주장, 마침내 부분적인 경감조치를 얻어 냈다. 또한 양곡관리법ㆍ각종 세제에 관한 법률 등 총 20여 개의 농어촌관련법의 제정ㆍ개정을 관철시켜 농어가에 향후 10년간 총 6조7천 억 이상, 호당 1백 만 원 이상의 혜택을 주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명실공히 '농어민을 위한 정당'으로서 확고히 섰다. 

평민당은 남아 있는 농업기반조차 위협하는 외국농산물 전면수입 개방에 반대, 농어가의 개방대처 능력을 높이기 위한 대체작물 개발과 농어가 지원정책을 적극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가족법개정주도 여권신장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탁아법 추진

평민당의 주도로 획기적인 여권신장이 이룩되었다. 어머니, 아내, 딸로서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거의 동등하게 보장받도록 가족법을 개정, 한국 여성운동의 숙원을 풀었으며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동일노동에 동일임금과 승진을 보장하였다. 평민당이 국회에 제출한 △탁아시설 확충을 국가가 보장하는 탁아법 △여성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비례대표지방선거법안 등도 여성계의 큰 호응을 얻고 있으나 민자당 측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7천여건 민원접수 소외계층대변
진정ㆍ중재 요구 전국각지서 쇄도

지난 88년 5월 3차 임시전당대회 이후 90년 6월 말까지 당에 접수된 민원건수는 총 7천1백25건으로 민생과 민원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평민당에 국민적 기대가 집중되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연인원 8만 명이 넘는 당사방문 농성과 진정 및 중재요구가 전국에서 쇄도했으며, 의원현장조사 활동을 비롯 소관위원회와 중앙당, 지구당 당직자들의 적극적인 중재노력에 힘입어 60%이상의 해결률을 기록함으로써 소외계층의 대변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국군조직법 등 이원제포석
장기집권음모 분쇄투쟁

3당야합 이후 그 야욕을 노골화시킨 노태우정권의 장기집권 음모에 필사적인 저지투쟁을 벌였다. 3당야합 직후부터 민생해결, 국회해산, 총선 즉각실시를 요구하는 1천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해온 평민당은 지난 임시국회에서 이원집정부제의 사전포석인 국군조직법ㆍ방송법 등의 개악을 저지키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날치기불법처리 등 민자당의 장기집권 야욕을 국민 앞에 폭로하였다. 소속의원 전원이 의원직사퇴 결의로써 민주당과 재야 등 전 민주세력과의 통합연대전선을 구축하여 내각제개헌 등 현정권의 장기집권음모 분쇄를 위해 당운을 걸고 투쟁할 것이다. (주석 2)


주석
2> 『평민신문』, 1990년 7월 27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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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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