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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 해에도 많은 법이 생겨났고 개정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준 '최고의 법 개정'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마이뉴스>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가 뽑은 '올해의 법 개정'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더불어 관심 있는 시민기자의 참여를 환영합니다.[편집자말]
연말이 되면 '올해도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 그 중에도 2021년, 인생이 바뀐 사람들도 있다. 또는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변화를 남들보다 더 많이 체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변화 중엔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인해 촉발된 것들도 있다. '법은 인생을 바꾼다'라는 말이 멀게 느껴지는 현대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의 고군분투로 제정된 '인생을 바꾼 법'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하나, 스토킹 처벌법
 
지난 3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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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라만 보는데도 내가 그렇게 불편할까요. 내가 나쁜 걸까요."

가수 '10cm'가 2014년 발매한 노래 <스토커>의 가사다. 노래 가사처럼 오랜 시간 동안 헤어진 연인이나 짝사랑하는 사람의 집에 찾아가서 무작정 기다리는 행위는 로맨틱한 행위로 그려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SBS 드라마 <상속자들>에서는 남성 캐릭터가 호감을 가진 여성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여성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가게 앞이나 안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 드라마와 영화, 노래를 접하다보면 과거의 연애가 떠오를 때도 있다. 아주 오래전 나와 만났던 그는 헤어진 후에도 꽤 오랜 시간 나에게 연락했다. 그의 연락은 내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을 때 끝났다. 그러는 동안 그는 내 주변인들까지 괴롭혔다. 그게 스토킹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알았다.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며, 더욱 심각한 사건들도 많다는 사실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2020년 창원에서는 10년 동안 스토킹을 하던 남성이 기어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100통이 넘는 일방적인 통화 기록, 주변인들의 증언, 피해자 자녀의 호소가 있었으나 재판부는 선고문에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피해자가 거절했으나 집착, 질투심으로 인해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우리는 아직 재판부가  스토킹 행위를 '호감'으로 해석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스토킹을 미화하는 드라마와 노래, 영화는 스토킹 피해자 또한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지운다. 폭력을 사랑으로 둔갑하는 사회는 스토킹 피해자가 되는 여성들을 사랑의 행위자이자 주체가 아닌 객체이자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그 속에서 피해자들의 호소는 소거되었다.

2021년 3월,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스토킹 처벌법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 최초로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나온 지 22년만이었다. 스토킹 행위가 경범죄로 분류되어 주거침입이나 물리적 폭력을 동시에 행해야 벌금형 이상의 형이 확정되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스토킹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벌금형 이상의 형을 내리는 게 가능해졌다. 경찰의 응급조치 및 긴급응급조치, 법원의 잠정조치 등 형사처벌 외의 대응도 개발되었다.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는 몇 가지 장치도 생겼다. 스토킹 처벌법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스토킹이 사랑으로 취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뜻깊은 법이었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10월,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가 5배로 늘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한 달 만에 2700여건의 스토킹 범죄 신고가 접수되었다. 법의 구제를 받을 수 없었던 피해자들은 드디어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었기에 가해자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스토킹 처벌법을 시작으로 사랑이라는 폭력을 종결시킬 수 있는 더 많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스토킹 처벌법에서 보호하는 대상은 피해당사자와 동거인, 가족만이다. 그러나 스토킹 피해를 함께 입는 사람이 동거인과 가족뿐이라 단정할 수 없다. 피해당사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이웃과 친구, 직장 동료 등 광범위하기에 이후의 법 개정으로 대상을 넓히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스토킹 처벌법에 반의사 불벌죄가 포함된 것도 개선되어야할 사항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처벌 의사가 없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는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스토킹 범죄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에 노출되기 쉽고, 물리적 폭행과 주거침입, 심지어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2차 피해에 노출되기도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의사 불벌죄가 있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도록 강요하거나 협박하는 일이 일어날 여지가 있다.

2021년 11월 19일, 우리는 다시 비극적인 사건 하나를 마주했다. 6개월 가량 전 남자친구의 폭력과 스토킹으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여성이 또 다시 살해된 것이다. 교제 살인, 스토킹 범죄 후 살인은 스토킹 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 글을 빌려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또 다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토킹 처벌법도 더욱 치밀하게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지난해 3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 당시의 모습.
 지난해 3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 당시의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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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시선' 욕망하는 '일탈계' 여성들"

조직적, 계획적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났던 지난해 4월 작성된 기사 제목이다. '일탈계'는 자신의 신체 일부나 성행위, 자위 행위 등을 촬영하여 트위터 등의 SNS에 개시하는 온라인 계정을 일컫는다. '일탈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다양하며, 그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사실 때문에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후 '일탈계'가 큰 논란이 되었다. 이러한 논란은 쉽게 'n번방 사건' 가해자들도 잘못했지만, '일탈계'를 운영한 피해자들도 책임이 있다는 말로 이어졌다.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 2차 가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기 위해 사회는 피해자의 옷차림과 과거의 역사, 그가 맺었던 관계를 문제시한다.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몸에 붙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과거에 그가 성경험이 있기 때문에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이야기는 2차 가해를 하기 위해 사용되는 흔한 예시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은 피해자의 옷차림과 과거의 역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저지른 폭력과 사회 구조적 원인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워야했다. 'n번방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n번방 사건'은 피해자들의 행동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사회 구조적 원인으로 촉발되었다. 우리는 "'일탈계'를 운영한 청소년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말 대신 "누가 피해자들을 착취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2021년 2월 26일, 권인숙 의원의 1호 법안이었던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루밍(Grooming)은 '길들이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 그루밍은 성착취를 목적으로 가해자가 (정서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피해자 스스로 성착취 영상을 보내도록 '길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연인 관계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알선하는 것처럼 속이기도 하며, 때로는 부모에게 알린다는 협박을 가하기도 한다. 'n번방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루밍 성범죄는 '자발적'이라는 탈을 쓰고 있기에 더더욱 착취적 면모를 찾아내기 어렵고,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쉽다.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은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 혐오감을 유발하는 대화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하거나 성적 행위를 하도록 유인·권유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온라인 그루밍 행위가 발견되어도 2차적인 범행(강간, 성착취물 제작 범죄 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처벌이 불가한 것과 달리 이제 온라인 그루밍 행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는 2차 범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의 또 다른 큰 특징이자 성과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에 대해 경찰의 위장 수사가 가능해졌다는 것에 있다.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대규모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텔레그램이나 디스코드 등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메신저를 사용하여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메신저 어플을 개발한 플랫폼에 가입자의 인적 사항을 요구하기 어려웠으며, 몰래 사건의 현장인 비밀 채팅방에 잠입수사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을 수면 위로 들어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던 '추적단 불꽃'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신분을 위장하여 'n번방' 등의 성착취 동영상 유포 방에 잠입했고, 대화 내용을 경찰에 신고했다. 성착취 동영상 유포 방에서 어떤 대화가 이루어지는지가 범인 특정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경찰이 범인 검거를 위해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한 신분으로 수사를 하게 된다면 대규모 성착취 유포 방에 잠입하여 성범죄 수사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실시간으로 메시지 분석과 범인 특정이 가능해진다면 조금 더 빠르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이 통과된 이후 한 달 만에 경찰은 위장 수사로 35건의 범행을 수사할 수 있었고, 총 58명의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위장수사는 향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착취 범죄 수사 기법을 넘어 일반 디지털 성착취 범죄 수사 기법으로도 논의되어야 한다.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 중에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취약한 상황에 놓인 비청소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청소년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성적인 것들을 향유하기 위한 제도들도 고민되어야할 것이다. 여성 청소년이 성을 접하는 창구가 '일탈'만 존재할 때, 위험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기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교육과 청소년의 법적인 권리 강화 등에 대해 논의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2022년의 과제

여성 국회의원 비율 19%, 4급 여성 보좌관 비율 8%라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2021년, 의미 있는 법들이 통과되었다. 스토킹 처벌법과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외에도 양육비 이행법이 강화되었고,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가사 근로자법이 근로기준법 제정 후 68년만에 통과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법'이 통과되어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더욱 많은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제안되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법들도 많다. 청와대 청원에 올라와 10만명의 동의를 받았으나, 최근 국회가 심사 기한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024년 5월 29일까지로 미루어버린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구호는 21세기가 도래한 지 21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관철되지 않은 것이다. 강간의 기준을 '거절'에서 '동의'로 바꾼 비동의 강간죄도 계류중이다. 동성 사이의 관계 등을 보장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은 21대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2020년 12월 31일 '낙태죄'가 유효기간 만료로 사라진 이후, 인공임신중지의 문제는 여전히 입법 공백 상황에 놓여있다.

그래서 아마 2022년에도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싸움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 국회 내 외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성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여성혐오를 끝내기 위해,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위해, 평등한 경제적 권리를 위해. 벌써부터 대선후보들의 성차별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해낸 것과 해야 할 것들을 연말에 고루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다들 성차별과 혐오의 파도를 넘어 평등의 바다에서 만나길.

태그:#페미니즘, #스토킹, #온라인 그루밍, #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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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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