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0 19:32최종 업데이트 24.03.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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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숲속에 있는 나무늘보 ⓒ Greenpeace / Takeshi Mi

 
2023년, 동물학자 베키 클리프는 나무늘보가 질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극단적 건기와 우기가 나무늘보의 장내 미생물을 죽여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병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나무늘보는 느림을 생존 양식으로 선택한 동물로, 6400만 년 동안의 진화를 통해 먹이를 많이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개체가 되었다. 그런 개체가 다른 이유도 아닌 굶주림으로 죽고 있다는 뉴스는 많은 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배부른 풍요의 시대는 무엇을 지나쳐서 시작되었는가?"

대한민국은 2023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에서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선정한 '오늘의 화석상' 3위에 올랐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화석 연료를 사용한 대가로 한국이 발달한 기반 시설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공인된 순간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를 포함한 한국의 젊은 세대는 빠르게 이루어진 발전으로 인해 매우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환경을 파괴하여 얻어낸 수혜로 자란 세대이자, 미래의 환경 피해를 짊어져야 하는 세대로서 말이다.


이 세상에서 젊은 세대로 사는 것은 아주 자주 부채감과 공포, 원망의 감정을 동반하게 한다. 나와 친구들은 종종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저 쓰레기를 생산하는 과정이 아닐지 의심하고, 내 직업이 파괴하는 것들에 관해 토론하며, 어떠한 노력도 무용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기후위기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오늘날을 사는 젊은 세대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분명한 것은 자연스럽게 기후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낙관도, 기후위기가 초래할 어두운 미래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디스토피아적 주장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실에 발붙이고 서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믿음은 어두운 미래에 대한 수용을 바탕으로 한 낙관일지 모른다. 미래는 어둡지만, 그 미래를 바꿀 답 또한 존재한다는 믿음 말이다.

24년 4월, 대한민국의 4년을 결정할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유권자에게도 정치인에게도, 무엇부터 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이 가장 중요해지는 시기가 돌아왔다.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사는 청년이자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기록해 보고자 한다.

하나, 탄소예산의 문제
 

세계 환경의 날에 진행된 액션. 참가자들은 탄소 배출에 대한 국회의 무관심으로 청년 세대들이 더욱 큰 짐을 지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 Greenpeace / Jung Taekyon

 
'세상엔 공짜는 없고, 무한한 재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고불변의 법칙처럼 여겨지는 이 문장은 이상할 만큼 기후위기나 탄소배출과 같은 문제에서 간과된다.

2020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는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C까지 오르기까지 '잔여 탄소배출허용량(탄소예산)'이 약 4940억 톤 남았다고 발표했다. 급격한 속도로 녹는 빙하, 해수면 상승, 전쟁과 난민의 급증, 생태계의 파괴 등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온도가 1.5°C 상승한 미래가 밝지 않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탄소 배출이 지구 온도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1.5°C까지 남아있는 탄소예산을 최대한 아껴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많은 나라들이 공감하고 노력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 정부의 정책은 세계 흐름과 많이 다르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추산하여 계산할 때, 한국의 탄소예산은 어림잡아 2023년 이후 45억 톤, 혹은 (인구 비례로 따질 시) 그보다 적게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 기준 연간 5억 9800만 톤으로 세계 9위에 이르렀다. 단순 계산으로 짐작해 봐도 우리나라의 탄소예산이 고갈되기까지 10년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23년 3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산업 부문의 탄소 감축 목표를 2018년 14.5%에서 11.4%로 낮추는 결정을 했다. 정부 정책을 반영하면 2023년부터 2030년까지 41억 톤의 탄소예산이 소진된다. 결국 2030년 이후를 살아가야 할 국민들은 한 해 배출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4억 톤을 쪼개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한눈에 봐도 '기적의 계산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탄소예산이 모두 소진된 비관적인 미래를 굳이 거론하지 않고도, 현재의 과제를 미래로 떠넘겨버리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다. 기성세대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지구에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젊은 세대와 어린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세대 간의 문제, 공정의 문제와 결부된 이상, 탄소예산은 앞으로 몇 년 안에 정치권 내부에서도 가장 첨예한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어두운 미래라는 짐을 한없이 유예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지금 그 짐을 나누어 짊어지겠다는 태도가 기후위기 대응에도 필요하다.

둘째, 그린워싱의 문제

여름철,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이런 광고 문구를 본 적 있다. "지금, 환경 보호가 시작됩니다" 엉뚱하게도 그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은 일회용 플라스틱 얼음컵이었다. 기존에 빨대가 필요한 얼음컵에서 빨대가 필요 없는 형태로 음료를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광고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쉽게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자체가 문제라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플라스틱 얼음컵에 빨대가 필요 없어졌지만, 내용물을 가리는 비닐 위 새롭게 플라스틱 뚜껑이 생겼다. ⓒ 신민주

 
모두가 광고의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제품이 진짜 친환경 제품이고 어떤 제품이 가짜 친환경 제품인지 점점 불명확해지고 있다. '그린워싱'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기업의 아주 작은 친환경적인 실천을 과도하게 부풀려 기업 자체를 친환경적인 기업으로 보이기 위한 시도, 친환경 마크를 위조하여 제품에 부착하는 행위, 제품이나 서비스를 교묘하게 비틀어 광고함으로 친환경적인 이점을 과장하는 행위 등 그린워싱의 방법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친환경이 마케팅 트렌드가 되며 그 숫자도 늘었다. 2023년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국내 대기업과 그 계열사 내 399개 가운데, 165곳이 지난 1년간 그린워싱 게시물을 올렸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그린워싱에 대한 정부 규제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그린워싱으로 적발된 4940건의 사례 가운데 4931건(99.8%)은 법적 강제력이나 불이익이 없는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고,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는 9건(0.2%)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것은, 애초부터 그린워싱을 찾아낼 수 있는 준거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기업이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기후 정보를 포함한 ESG 공시의 경우, 기업 부담을 이유로 도입 시기가 한 차례 유예되기도 했다. 결국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은 어떤 기업이 진짜 친환경 기업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그린워싱을 적발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린워싱을 보다 철저하게 적발하여 제재하는 노력과 더불어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정보를 국민이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방안 또한 22대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기후 불평등'의 문제
 

2022년 수해 피해 당시의 서울 ⓒ Greenpeace / Sungwoo Lee

 
기후위기의 문제는 스모그처럼 모든 사람의 삶에 내려앉았지만, 그 고통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된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 피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저소득층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적 소수자가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애초에 평등보다는 발전에 초점을 맞춘 관념들이 기후위기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눈부신 풍요의 시간을 만들어냈지만, 그 풍요는 많은 것들을 추방하며 만들어지기도 했다. 단지 나무늘보뿐만이 아니라 경쟁과 효율성의 속도에 어울리지 않은 느린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소외되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기후위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기록적인 폭우 피해를 기록했던 2022년, 신림동 반지하에서 목숨을 잃은 일가족의 이야기가 단적인 예시이다.

발전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제 시스템은 영원히 화석 연료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여가시간의 불평등으로 이어졌고, 저소득층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얻지 못했다. 환경을 위한 더 나은 선택은 비용의 문제로 인해 자주 기각되었다. 지역민의 의사와 상관없는 개발은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위기로 인한 실외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점점 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화석연료 자동차만큼 빠르게 달려왔던 시간을 내려놓고, 조금 더 느린 걸음을 함께 옮길 것인지에 대한 의지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만을 조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와 최저임금 인상, 부의 공정한 분배, 사회적 공론장의 형성도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안으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우주적 관점에서 티끌과도 같은 지구에 사는 더 티끌 같은 한 개인이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아주 거대한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후위기는 거대한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거대하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기후위기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직 지구 외에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찾지 못한 인간이지만, 우리는 분명 우리의 행성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가 보다 대안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될 수 있길 빈다. 곧 총선이라는 국면 속에서 그 고민을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분명 불행 중 다행이다. 눈앞에 놓인 4년의 시간에 대한 선택이 그보다 더 먼 미래의 방향을 선택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2024년, 가장 뜨거울 여름을 눈앞에 두고 진행되는 선거에서 기꺼이 '기후유권자'가 되자.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지금의 걱정들을 함께 짊어지는 동료 시민으로서 우리가 등장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신민주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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