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

대전충청

포토뉴스

평화롭고 고즈넉해보이는 시골 풍경. 하지만 이 속엔 겪지 않으면 모를 어려움도 공존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대중교통과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의료기관, 문화 시설 등이 그것이다. 때문에 지역의 노인은 여전히 차별받는 대상이 된다. 사진은 10월 13일 촬영한 충북 옥천군 이원면 원동2리 풍경. ⓒ 월간 옥이네
 
농촌의 면으로 갈수록 고령화는 심해진다. 충북 옥천군의 경우 2021년 9월 기준 옥천읍 평균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율은 21.5%지만 8개 면 평균은 44.3%. 그중 청성면은 50%(2370명 중 1200명)가 65세 이상일 정도로 읍면 간 차이는 크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지 서비스는 인구가 많은 읍 지역에 치중돼 있다. 면 지역 주민의 경우 당장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아 읍 중심 복지시설 접근성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옥천읍에서 가장 먼 마을인 청산면 명티리의 경우 버스를 이용하면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별다른 개인 교통수단이 없고 대중교통 이용도 어려운 상황에서 면에 사는 노인이 읍에 있는 복지기관 서비스를 받기란 쉽지 않다.

복지 격차가 커질수록 삶의 질도 크게 차이 난다. 생산적 여가활동이 인지기능을 높이고 이는 자연스레 삶의 만족도로 이어진다. 코로나19로 복지시설의 휴관이 반복된 이후, 당장 지역 어르신들을 만나는 복지 업무 관계자들의 말에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인의 사회활동, 여가 생활에서의 읍면간 불균형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옥천군평생학습원이 '읍면 평생학습센터'를 운영해 면 지역으로 평생교육을 확장하려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올해 평생학습원은 동이·군북·이원면의 작은도서관에서 디지털·색연필화 교육, '찾아가는 한글교실 청춘학교' 등의 운영을 확대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많다. 여전히 모든 면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고, 그나마 있는 프로그램 역시 정원이 있어 희망자를 모두 수용하지 못한다.

이원작은도서관 색연필화 수업에 참여하는 참가자 A(이원면 평계리)씨는 "면에서 문화 강좌를 많이 열면 좋겠다. 읍에서는 많이 하는데 나가려면 힘들고, 신문 모집 공고를 보고 전화해 봐도 이미 마감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옥천군평생학습원 교육지원팀 정용호 주무관은 "읍면 단위 평생학습센터 프로그램은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작은도서관을 이용할지, 마을 경로당에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할지는 아직 논의 중"이라며 "사립인 다른 면 지역 작은도서관과는 일정 조율이 어려워 진행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청산 어르신들의 아지트
 
충북 옥천 청산노인복지관 ⓒ 월간 옥이네
 
면 지역 노인들이 이용할만한 변변한 문화·복지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청산복지관 운영은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2006년 청산·청성면 주민을 대상으로 청산농협 2층에 문을 연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 청산분관(이하 청산복지관). 350명이라는 초기 가입 회원 수가 그간 주민들 사이에 쌓였던 여가 욕구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후 2010년 9월, 문턱이 없고 지열난방을 이용한 새로운 청산복지관이 준공됐고, 지난해 '노인여가복지시설 증축' 사업으로 연면적 300㎡ 규모의 경로식당도 신축했다.

현재 청산복지관에서는 고전무용, 민요장단, 서예, 요가, 정보화 교실 등 10여 개 강좌가 열리는 중이다. 특히 10월부터는 자체 치매 예방 프로그램 '인지야 놀자'를 진행하며 동화구연, 자기소개, 만들기 등 인지능력 개선을 중점에 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산복지관 맹수현 사회복지사는 "치매안심센터, KB총명학교와 연계한 치매 예방 교육은 있었으나 자체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그 의미가 크다. 내년부터 정규과목으로 편성해 회차를 늘려 진행할 생각"이라며 "농촌의 노인 프로그램은 분반 확대보다 횟수를 확대해 지속성을 높이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농막 김남순씨 시간표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청성면 화성리 김미숙씨 시간표 ⓒ 월간 옥이네
 
청산복지관 이용자 심영순(78)씨는 "코로나 때문에 복지관이 쓸쓸하다. 원래는 여기가 사람으로 꽉 차서 헤치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복지관에 따르면 재작년 수강신청 인원은 170명 이상. 그러나 코로나19로 수강생 모집 인원이 줄고 가장 인기던 노래교실을 폐쇄하며 올해는 100여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복지관이 강좌를 열지 못했던 지난해 심영순씨는 '복지관 없는 면 지역'을 경험했다.

그는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할 일도 없었다"며 "복지관에 다니니 내가 느끼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몸을 움직이는 게(다니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이용자 배정숙(78)씨는 "민요장단 반장도 하고 스마트폰 문자 보내기도 배워 딸에게 보내고 다 좋지만, 여기 선생님들(사회복지사)이 신경을 많이 써준다. 수업에 안 나오면 전화해서 안부도 물어보니 위로가 많이 된다"며 복지관에 다니는 즐거움을 전했다.
 
마을 구석구석, 직접 찾아갑니다
 
9988행복나누미 김진주 강사(오른쪽)와 체조를 따라하는 어르신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청산복지관 민요장단 수업 ⓒ 월간 옥이네
 
모든 면에 복지관 등 관련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경로당은 여전히 면 지역 문화의 최전선에 있다. 마을마다 하나씩은 꼭 있으니 누구나 언제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가장 변화한 곳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던 곳에서 입을 막고 심지어 문까지 걸어 잠갔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르며 문을 연 경로당도 있으나, 여전히 식사는 금지되고 개방 시간도 낮으로 제한했다.

마을 구석구석,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가장 가까이에서 주민을 만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가 주관하는 '9988행복나누미' 강사들이다.

대한노인회는 옥천군 내 310개 경로당을 관리한다.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현판 정비, 찾아가는 노인대학·9988행복나누미 등을 운영하며 지역 노인들이 건강하고 유익한 삶을 살도록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3개 면에 '찾아가는 면 노인대학'을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보류됐다. 또, 경로당 청소와 식사 준비 등 마을 노인 일자리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 소속 15명의 9988행복나누미 강사는 옥천군 255개 마을에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한다. 요가, 생활체조, 민요, 발 마사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물론, 강사와 주민이 마음을 나누며 교류한다. 계절이나 역량에 따라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것도 강사의 몫. 어느 마을에서나 "9988 오는 날은 경로당에 꼭 간다"는 말을 듣는 이유다.(관련기사 : "외롭지 않고 좋던데?" 어르신들은 왜 9988을 찾을까 http://omn.kr/1uov9)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 주종순 경로부장은 "마을별 홍보와 안내를 통해 연말에 이듬해 운영 신청을 받는다. 코로나 때문에 경로당에서 식사가 금지돼 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9988행복나누미'를 진행하는 날이라도 어르신들이 밖에 나와서 활동을 하시니 건강 유지와 사회성 증진, 치매 예방 등에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곧 '찾아가는 영화관'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꾸준히, 생활과 밀접하게, 수요자의 신체적·정신적 여건에 맞는 여가활동을 제공하는 것. 면 지역 특성에 맞는 작은 거점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반복돼 왔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농촌 노인의 건강한 생활을 보장할 필수 조건이다.
 
[관련기사] 복지관도 도농 양극화... 문화 사각지대 놓인 지역 노인 http://omn.kr/1w4eu

월간옥이네 통권 53호 (2021년 11월호)
글·사진 소혜미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태그:#옥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구독문의: 043.731.8114 / 구독링크: https://goo.gl/WXgTFK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