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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곡이 전공 실기인 음악교육과 출신의 교사이다. 연기는 배운 적도 없을 뿐더러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할 만큼 세련된 몸짓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2020년에 대안학교로 전보 오면서 뮤지컬 과목을 맡게 되었다. 앞이 캄캄했다.

수업에 대해 고민을 할 새도 없이 학기가 시작되었고 기존의 악곡을 학생들과 함께 개사하고 안무를 새로 창작하여 짜깁기 방식으로 40분 남짓의 뮤지컬을 구성했다. 연말이 되어 무사히 발표회를 마쳤지만,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대안교과로서의 뮤지컬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꾸만 고민이 들었다.

지난 1월 어느 날, 겨울방학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겨울학교'라는 과정을 만들어 10여 명의 아이들과 학교에서 지내고 있었고, 덕분에 다음 학기 뮤지컬 콘텐츠에 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댄스 학원에 다녀야 하나?',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한 난이도의 뮤지컬 작품은 무엇일까?'라는 생각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득 '그냥 새로 만들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작곡 전공 실기를 꺼내 보기로 했다.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약 8년 전, 곡을 쓰는 동안에는 학생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모든 음악적 창작활동을 접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적인 갈망이 더 깊었을까. 나 자신과의 결심을 깨고 창작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완성된 무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교육적인 과정이 될 것 같았다. 창작에 골몰할 때 날카롭게 변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일 뿐이었다.

새로운 도전, 창작 뮤지컬

본교 2학년 전체의 수는 40명 남짓. 각 학급은 13~1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뮤지컬은 반별로 일주일에 세 시간이며 연강이다. 창작 뮤지컬을 하기로 했으니 첫 시간을 비롯하여 한동안은 수업의 콘텐츠가 없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던 조건이었달까.

반별로 개인 면담을 하고 팀을 나누었다. 창작팀, 시나리오팀, 메이크업팀, 의상팀 이렇게 네 모둠이었다. 가장 먼저 시나리오팀과 야간에 모여서 전체적인 이야기에 대해 회의를 시작했다. 로맨스부터 코미디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은 치킨을 뜯으며 한창 수다를 떨더니 한 시간이 넘게 흐르자 이내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쌤. 잘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막상 정하려고 하면 너무 막막해서 못하겠어요."
"그래. 거창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너희 말대로 어려울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 주변을 먼저 살펴보면 어떨까?"
"아! 쌤. 학교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사실 나 또한 처음 접해보는 뮤지컬 창작이기에 극적 요소를 배치하는 방법 등을 잘 몰라서 맨 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장 편한 것이 현재의 우리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다시 아이들은 왁자지껄해졌고 이제는 나도 토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지금 너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너희가 딱 생각했을 때 2학년들의 가장 큰 특징이나 도드라지는 모습에는 뭐가 있을까?"
"애들이 수업을 안 들어요."
"맞아요.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은 너무 고생하시는데 애들이 집중도 안 하고 다 핸드폰만 하고 있고, 시끄러울 때도 많아요."


시나리오팀으로 모인 학생들은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보니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대화가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한 아이가 외쳤다.

"'얘들아. 뭐 하고 살 거니? 정신 좀 차려라!'라고 대사를 써보면 어떨까요?"

나는 순간 그 아이의 말속에서 운율을 느꼈다. 즉시 그 학생에게, 첫 문장을 다시 말해 주라고 요청했고 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대여섯 번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미 그 말에는 리듬이 있었고 의문문의 형태였기에 약간의 음정도 있었다. 나는 재빨리 빈 종이에 줄을 다섯 개 긋고,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하나의 멜로디를 만들었다.
    
즉석에서 메모한 것. 전체 뮤지컬의 창작이 이 짧은 멜로디에서 시작되었다.
▲ 악보1 즉석에서 메모한 것. 전체 뮤지컬의 창작이 이 짧은 멜로디에서 시작되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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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과 이 멜로디가 닮아 있지 않니?"
"우와. 대박! 완전 그런데요?"
"우와. 쌤. 멜로디가 어떻게 그렇게 뚝딱 나와요?"


아이들과 나는 서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동기는 ○○이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니 작자의 란에 나와 학생의 이름을 동시에 넣기로 했다. A-B-A'의 형식으로 곡을 만들기로 했고, 곡의 중간에는 교사의 고뇌를 넣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가사들이 만들어졌다.

(모범생들) 얘들아. 뭐하고 살 거니. 얘들아. 정신 좀 차려라. 허구한 날 핸드폰에 귓구멍엔 이어폰, 선생님의 말씀은 언제 들을래?
(말썽쟁이들) 안 들을 건데?
(교사) 오늘의 수업을 위해서 여섯 시간을 준비했어. 그런데 수업을 듣는 학생은 여섯 명도 채 안 되네. 교사란 어떤 사람일까? 가르친다는 건 무얼까. 오늘도 나는 계속 흔들려. 괴로운 마음뿐.

 
메모한 멜로디를 발전시켰고 두 그룹이 대화하는 방식의 악곡으로 만들었다.
▲ 악보2 메모한 멜로디를 발전시켰고 두 그룹이 대화하는 방식의 악곡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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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담다

위 악곡은 3반 학생들이 부르는, 오프닝 넘버 바로 뒤에 나오는 곡이다. 다음 곡은 <우리의 꿈을 노래해>라는 곡인데 8개의 솔로 부분이 나오고 각각의 부분은 해당 학생의 작은 꿈을 담고 있다. 이 곡을 위해 뮤지컬 수업 시간에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활동을 했다.

아이들이 작성한 리스트는 정말 다양했다. 해외여행에서 인연을 만나기를 원하기도 했고 스무 살이 되면 동거를 해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죽고 싶다'라고 쓰기도 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학생이 자살 암시를 했다며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어야 할 일이었다.

버킷리스트에 '죽고 싶다'를 쓰다니, 어떤 마음인지 매우 궁금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학생에게 물었다.

"와우! ○○이는 '죽고 싶다'라고 썼네. 어떤 의미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아, 쌤. 인생 현타 와요. 그냥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제 마음대로 죽고 싶을 때 죽고 살고 싶을 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하. 그러니까 네 진심은 죽고 싶은 게 아니고 살고 싶은 거로구나!"
"뭐, 그렇게 되나요?"
"그 마음을 가사가 되도록 조금 더 풀어서 써보자. 네 부분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써서 매우 클래시컬하게 만들어주마."


아이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곡이 되는 과정은 기적과도 같았다. 어디서 그렇게 창작의 영감이 샘솟았는지, 세 시간 만에 8명분의 솔로 멜로디가 뚝딱 나왔다. 피아노 옆으로 해당 학생을 불러놓고 써 온 가사를 보면서 원하는 분위기와 콘셉트 등을 물어보았다. 그 후 30초 정도 상념의 시간을 가진 뒤 손가락을 건반 위로 옮겼고,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이 정도면 되겠어? 괜찮나?"
"우와. 선생님. 제가 딱 생각하는 그 분위기예요!"
"진짜? 와우. 대박인 걸?"
"아니, 선생님. 갑자기 이렇게 멜로디가 떠올라요? 어떻게 이래요?"
"내 전공이 작곡이잖아. 작가가 글 쓰는 거랑 비슷하지 뭐."


사실은 나로서도 대단히 놀라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쉽게 멜로디가 떠오를 줄 몰랐다. 멜로디뿐 아니라 가사와 리듬, 반주와 화성까지 거의 맞추어 오선지에 메모를 했을 정도였다. 나는 원래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절대 아닌데, 이 아이들이 나에게 영감이 되어준 것이 틀림없었다.
 
학생이 적은 가사와 생각을 면담을 통해 함께 의논하여 즉석에서 곡으로 만들었다.
▲ 악보2 학생이 적은 가사와 생각을 면담을 통해 함께 의논하여 즉석에서 곡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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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노래의 조각들이 만들어지면 이제 컴퓨터와 전자피아노를 이용하여 반주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짬짬이 하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참 묘했던 것은 그 시간이 마치 학생들의 내면을 더 자세히 만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더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애초에 없던 악곡을 하나 넣기로 결심했다. 극 중에서, 거친 아이들을 대면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새내기 교사에게 중견 교사가 던지는 말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새내기 교사 역은 원래 정해져 있던 학생이었고, 중견 교사의 역은 다름 아닌 나였다.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곡명 : 아름다운 대화

(중견교사) 아이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이유가 다 있죠.
그럼에도 힘에 부쳐 견뎌내기 힘들 땐, 잠시 멈춰도 좋아요.
(새내기교사) 이제야 보이네요. 거칠은 행동 뒤엔 누구보다 여린 맘이 있단 걸.
어느 누구에게 말할 수가 없어서, 닫혀진 채로 살았던 아이.
(중략)
(함께) 이 아이들에게도 꿈이 있었다네.
난, 미처 몰랐다네. 미안하게도 이제야 알아 맘이 아프다네.
이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네.
한 번 더 봐주고 귀 기울여서 그들의 맘을 들어주는 일.
그것이 교사의 길.

 
뮤지컬 삽입곡, <아름다운 대화>를 녹음하고 있다.
▲ 학교 방송실에서 뮤지컬 삽입곡, <아름다운 대화>를 녹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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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혁신교육 어울마당 개막 무대에 서다

우리 학교는 교육감의 공약이었고, 마을 사람들의 염원으로 태어난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혁신학교였고 혁신더하기학교이자 대안학교의 직함까지 가지고 있는,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학교이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뮤지컬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을 때 전북교육청 혁신교육과에 파견 근무하는 친구 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혁신교육 어울마당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개막 공연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친구로서는 부탁이었겠지만 지도 교사인 나의 처지에서는 기회였다.

2학기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곡으로 탄생하는 과정이 신기해서라도 열심히 참여하던 아이들이 이제 조금 싫증이 났는지 시들해지던 차였다. 평소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어쩌면 열매를 맺어 본 경험이 없었을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제이자 작은 성공 경험이 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헤드폰 앰프를 사고, 헤드폰 8개를 사고, 녹음용 마이크를 샀더니 미니스튜디오가 완성되었다.
▲ 악곡 녹음 중 헤드폰 앰프를 사고, 헤드폰 8개를 사고, 녹음용 마이크를 샀더니 미니스튜디오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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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초 메이크업팀 아이들과 함께.
▲ 메이크업 용품 장보는 중 2학기 초 메이크업팀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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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곡을 다 선보일 수는 없고, <우리의 꿈을 노래해>와 <아름다운 대화>를 공연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공연 소식을 반가워했다. 신기해하기도 했다.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연습했고 각종 의상과 소품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점검하고 수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부의 '원격수업' 방침이 내려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주일 전부터 전교생이 등교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공연은 수능 시험 바로 다음 날이었고, 해당 기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무대에 서는 것이 불가능했다.

교장, 교감, 부장 선생님들과 함께 회의했고 다른 교사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해당 학생들(9명)만 등교시키기로 했다. 물론 학생들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열어주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집이 너무 먼 학생들은 기숙사를 열어주고 본인이 관리하기로 했다.

이날부터 우리의 작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치 이 뮤지컬의 탄생 배경처럼 누군가는 착실하게 시간을 지켜서 열심히 연습한 반면, 몇 명의 아이들은 단 한 번도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속이 타는 것은 제 시간을 지켜 준 아이들이었다.

약속 시간은 오전 10시. 12시가 되어서야 빼꼼히 얼굴을 보이는 아이에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겸연쩍은 표정으로 학생이 말했고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그렇지만 대단히 차분하게 응했다.

"쌤. 왜 화 안 내요?"
"내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어?"
"네..."
"물론 선생님은 화가 났었어. 그런데 네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다 풀렸어.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네. 멀리서 온 것만도 어디야. 대신 나 말고, 저기서 죽치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린 네 친구들에게 더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네. 죄송합니다."
"난 앞으로도 화를 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을 할지는 네가 정해."


그 학생이 다음 날 함께 고산 읍내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에게 한 고백이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울렸다.

"쌤. 이렇게 막상 나와서 같이 연습하고, 나와서 밥 먹으면서 대화하고 하면 진짜 좋고 재밌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는 게 진짜 미치도록 힘들어요. 그래서 자꾸 늦는 거예요. 연습하는 거는 진짜 좋아요."

당연히 완벽하지 않고 부족함 많은 학생이지만 그 진심만큼은 누구의 것보다 소중하고 예뻤다. 이러한 고백이 간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함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서로를 북돋울 수 있었다.

수능 감독을 마치고 나는 다시 학교로 출근했다. 아이들과 저녁 8시에 만나서 마지막 연습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 9시에 전주로 출발해야 하니 전원 모두 기숙사에서 재워주기로 했다. 밤 10시쯤에는 처음으로 동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이 되었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곡을 끝마쳤다.

대단히 수줍은 태도와 눈빛을 가졌던 어떤 학생은 집에서 맹연습을 했는지, 아마추어 배우 뺨치는 수준의 몸짓과 시선 처리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실제 무대에서 더욱 당차게 발휘되었다.

공연 당일 아침, 단 한 명도 늦지 않고 교육청에서 보내준 차량에 탑승했다. 리허설 내내 교육청 관계자들은 학생들을 향해 사랑이 가득 넘치는 시선을 보냈다. 어쩜 그리 아이들이 예쁘냐는 찬사를 몇 번이고 들었다. "그러게요!"를 외치는 나의 눈은 마치 누운 초승달처럼 눈웃음을 가득 띠고 있었을 것이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우리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먼저 내가 나가, 뮤지컬 교과와 본 창작 뮤지컬의 배경 및 내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말을 했다. 뒤이어 <우리의 꿈을 노래해>가 시작되었다. 무대의 커튼 뒤에서, 새내기 교사 역을 맡은 학생과 함께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우리의 꿈을 노래해> 중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학생, 그리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안무로 함께하는 아이들.
▲ 공연사진1 <우리의 꿈을 노래해> 중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학생, 그리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안무로 함께하는 아이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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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이 무대에서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성공적 경험이었을 것이다. 중간에 실수를 하건 말건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힘을 내서 연습하면 된다. 학생이란 그래도 되는 존재이니 말이다.

<아름다운 대화>까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본교의 선생님들 몇 분이 낸 소리가 가장 컸다. 누구보다도 이 분들의 눈에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 보였을 테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공연의 영상을 싣는 것에 대해 대단히 많이 고민했다. 학생들의 얼굴이 보이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부족한 공연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공개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10대의 내면적 고민과 성장의 모습을 그저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모든 아이들에게는 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더욱 안전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회와 가정, 그리고 학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공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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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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