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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년간 마음 편히 사람들을 만나지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했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위드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풍경들을 스케치해봅니다. [편집자말]
엄마는 용감했다. 11월이 되면서 '코로나와 함께해야 한다'(일명 위드코로나)는 정책 변화와 함께 굳게 닫혔던 공간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 달로 78세 생일을 맞이하신 엄마는 '장민호 콘서트'를 보러 가셨다.

엄마는 지난 2년 동안, TV 트로트 경연 대회에 나온 여러 가수 중에서 '사람 좋은' 장민호씨가 좋다고 말하시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갑자기 닫혀버린 공연장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로 대표되는 방역 정책의 변화와 부지런한 며느리의 티켓팅 신공이 더해져서 콘서트 현장 관람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토요일(13일)에 장민호 콘서트 보러 인천에 갈 건데, 너도 갈래?"
"아니! 엄마, 콘서트를 보러 간다고?"


코로나19와 함께한 2년 동안,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쫄보 본능'이 한껏 끌어올려진 게 분명하다. 체육관 콘서트는 물론이고, 수만이 운집하는 월드컵 현장 관람도 두려워하지 않던 나였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집과 일터로만 쪼그라들어 버렸다.

아무리 정부가 코로나와 함께하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선언하고 있다지만, 막상 그 일상을 회복하려고 보니 이전이 어땠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마흔일곱의 딸내미는 콘서트장의 관중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데, 일흔여덟의 엄마는 그동안의 팬심을 현장에서 펼칠 수 있다는 설렘을 가득 품고 있었다. 장민호를 본다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집 나간 일상'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마저 생겼다.  

마스크도 가릴 수 없는 엄마의 밝은 표정
 
‘위드 코로나’의 일상회복 이벤트, 엄마는 장민호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콘서트장 앞에서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는, 장민호 응원봉을 들고 계시네요.
▲ 엄마는 용감하게 콘서트장에 다녀오셨습니다! ‘위드 코로나’의 일상회복 이벤트, 엄마는 장민호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콘서트장 앞에서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는, 장민호 응원봉을 들고 계시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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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한테 장민호 보러 간다고 자랑했더니, '내 표도 끊어주지' 하길래 미수랑 가기로 했어."

결국, 엄마의 콘서트 동료는 '쫄보' 큰딸도, 표를 예매한 '인천 사는 아들며느리'도 아니고, 고향의 또 다른 '장민호 팬'인 친척 미수 언니로 정해졌다.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가시겠다고 했으니, 다행이고 감사했다.

같이 콘서트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금요일에 퇴근을 하여 고향집으로 향했다. 선물을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 생신 주간에 혼자 포항에 있는 것이 못내 서운해서다. 포항에서 서산까지 네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서 도착한 집. 엄마는 피곤으로 감기는 눈을 간신히 뜬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얼른 자야 해. 내일 공연장 안에는 사람이 많아서 더울 수도 있어."
"안 그래도 내복을 입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안 입어도 되겠지?"
"괜찮을 것 같아. 마스크는 벗으면 안 되고, 먹을 것도 못 먹을 거야. 일단, 얼른 자."


다음날 엄마는 KF94짜리 신품 마스크를 챙겨들고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미수 언니차에 탔다. 언니에게 엄마 잘 모시고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더니, '걱정 마' 하며 웃으신다.

얼마 안 있어 인천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동생네와 점심을 먹고는 한 시간쯤 기다리신 후, 공연장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사진 속 엄마는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의 미소를 지으며 '장민호'가 적힌 콘서트 봉을 들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나와는 대조적으로 환하게 웃고 계신 엄마의 표정을 보니, 엄마의 용기가 놀랍게 느껴졌다.

오후 10시쯤 엄마가 서산 집으로 돌아오셨다. 장시간의 여행으로 피곤해 보이시긴 했지만, 아들이 챙겨준 간식거리를 야식으로 먹으면서, 코로나19 이후의 첫 번째 콘서트 관람기가 신나게 펼쳐졌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맞춰 한 자리씩 띄어 앉기는 했지만, 공연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고 했다. 게다가 일흔 여덟의 당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관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휠체어 탄 할머니들도, 지팡이를 짚고 걷는 할머니들도 많더라며 놀라셨다.

다른 콘서트에서는 초대가수도 부르고 하던데, 두 시간 넘게 장민호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고도 하셨다. 피곤해 보이셨지만, 콘서트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팬심의 에너지가 한껏 채워진 듯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엄마의 밥상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났더니 남동생이 챙겨줬다는 생일 케이크가 떠올랐다. 엄마랑 둘이서만 초를 끄는 것은 서운해서, 가족 채팅방을 통해 영상통화를 걸었다.

저마다의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을 가족들은 신기함과 반가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화면에 등장했고, 엄마는 새로운 기술이 연결해 준 화면을 통해 들리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기뻐하셨다. 동생이 전해준 생일 케이크에 초를 켜는 동안, 엄마는 어제의 콘서트장에서 '득템'한 장민호 가수의 팬클럽 유니폼인 하얀색 후드티로 바꿔 입으셨다.

'비대면 생일상'도 바뀔 날이 올까요 
 
코로나19는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엄마는 화면에 등장한 아이들에 반가워하셨지만,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시겠죠?
▲ 기술이 이어준 일상이예요.  코로나19는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엄마는 화면에 등장한 아이들에 반가워하셨지만,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시겠죠?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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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분들, 같이 노래해요. 시작!"

화면의 가족들이 모두 각양각색의 생일 축하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한 집에서 여러 대의 전화기가 연결되었으니,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자칫 쓸쓸해질 뻔했던 아침이 순식간에 반갑고 따뜻해졌다. 기술이 연결해 준 왁자지껄함에 신기하고 감사했지만, 엄마는 가족들이 직접 모여서 전해주는 온기가 더 그리웠을 거다. 

"얼른 코로나가 끝나서, 같이 모일 수 있으면 좋겠네."

코로나19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특히,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는 엄마의 일상 회복은 아직도 요원하다. 코로나 이전의 엄마 생신을 떠올려본다.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11월 초에서 중순의 날짜로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온가족이 고향의 집에 모이는 우리 가족식 '추수감사절'이었다.

시골집의 거실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상이 펼쳐지면, 어른 여덟과 손자들 여섯, 동생네 반려견까지 옹기종기 둘러앉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상이 점점 좁다고 느껴졌지만, 어른들이 적당히 '치고 빠지기'를 하다 보면 같이 밥 먹는 건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연하게 느껴졌던 '엄마의 생일 모임'은 지난 2년 동안 멈춰 버렸고, 명절에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번 생일도 엄마는 네 명의 아이들을 3주에 걸쳐 맞이하실 계획이니, '완벽한 일상 회복'은 멀리 있구나 싶다. 
 
이제 곧, 우리 같이 만날 수 있겠죠? 팬클럽 후드티로 갈아입은 엄마의 미소를, 같이 모여서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가족 영상통화가 이어준 순간, 이제 곧, 우리 같이 만날 수 있겠죠? 팬클럽 후드티로 갈아입은 엄마의 미소를, 같이 모여서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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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성덕 이벤트인 '장민호 콘서트' 관람을 기점으로, 가족의 일상도 활기를 찾아가려는 모양이다. 인천의 동생네는 주말에 이순재 배우의 연극 <리어왕>을 보았다고도 했다. 한동안 열리지 않았던 동호회의 축구 대회도 빼꼼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런 식이면, 코로나19의 공포에 짓눌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카타르 월드컵의 원정 참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월드컵은 이제 딱 1년이 남았다). 부디, 일상으로의 회복이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우리의 공동체에 더 큰 부담을 주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 쫄보 이창희도 이제 용기를 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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