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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 '왕산 허위 선생 유허비'
 경북 구미 "왕산 허위 선생 유허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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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선열의 날'은 대한민국 법정기념일 중 하루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은 순국 선열의 위대한 독립투혼과 위훈을 기리고 그 뜨거운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매년 11월 17일을 기념하기로 했다. 그때가 1939년이었다.

1939년 11월 17일보다 앞선 해인 1938년 11월 17일에 국권회복을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은 누구일까? 민영환인가? 아니다. 충정공은 1905년 11월 30일에 자결로 국권회복을 부르짖었다. 허위인가? 역시 아니다. 왕산은 1908년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로 순국하였다.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정한 까닭

11월 17일을 순국 선열의 날로 지정한 것은 어떤 독립지사 한 분의 타계를 추념해서가 아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로 사실상 나라가 망했다. 그 탓에 수많은 지사들이 순국 선열의 혼으로 하늘을 떠돌게 되었다. 11월 17일을 순국 선열의 날로 기념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을사늑약 이전에 국권이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갔음을 말해주는 사건이 있다. 바로 을미사변이다. 1895년 10월 8일 일제와 그 앞잡이 한국인들이 궁궐에 무단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모'가 외국인과 민족반역자들의 손에 살해될 만큼 조선은 당시 망국에 가까운 상태였던 것이다.
 
명성대비(명성왕후)와 현종의 무덤인 숭릉. 사진은 숭릉의 정자각. 정(丁)자 모양으로 생긴 정자각(丁字閣)은 죽은 이를 위한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안에 있다.
 명성대비(명성왕후)와 현종의 무덤인 숭릉. 사진은 숭릉의 정자각. 정(丁)자 모양으로 생긴 정자각(丁字閣)은 죽은 이를 위한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안에 있다.
ⓒ 동구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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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가 비록 순국 선열은 아니지만 그 참담한 죽음이 민족의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명성황후 시해를 다룬 소설, 영화, 연극 등이 무수히 창작되었고, 해마다 10월 8일이 되면 그 날을 추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통함으로 적시게 된다.

올해 11월 17일 순국 선열의 날에는 특히 을사늑약과 을미사변을 함께 돌이켜보게 해주는 일이 일어났다. 1895년 10월 8일 당시 일본 영사관보였던 호리구치 쿠마이치가 고향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다. 범행 가담자였던 호리구치는 "우리가 조선의 왕비를 죽였다"면서 구체적인 시해 과정과 사건에 대한 감상까지 적어 두었다(관련 기사: 명성황후 죽인 외교관의 편지, 그날의 또다른 보고서).

명성황후 시해... 당시 일본 관리, 을미사변 상세 과정 밝혀

'1910년대 최고의 항일운동단체(제6차 교육과정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대한광복회의 지휘장으로 활약했던 우재룡 독립지사를 기리는 '백산 우재룡 선생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도 순국 선열의 날을 맞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자료 전면 공개와 사죄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념사업회는 "126년 전인 1895년 일본 외교관들이 명성황후를 살해했다고 밝힌  편지가 발견되었다.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 아래 자행된 만행이 일본 정부의 조직적 범행임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는 명성황후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전면 공개하고 한국민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대구 두류공원 '애국지사 백산 우재룡 선생상'
 대구 두류공원 "애국지사 백산 우재룡 선생상"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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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명성황후 살해에 대해 단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히젠도(肥前刀)는 일본 후쿠오카 쿠시다 신사에 의젓하게 봉납된 상태라고 한다. 그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지난 19대 국회 이래 현재 21대 국회까지 '명성황후 살해에 사용된 히젠도 처분 촉구 결의안'이 세 번이나 제출되어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국회는 그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정부 또한 그 흉기를 인도받는 외교적 교섭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35년이나 한반도를 무력으로 강점한 일본에 대해 사대주의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언급했다고 그것을 "외교적 결례"로 지적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성계가 국호를 정해달라고 중국에 사절단을 보낸 이래, 점점 공고해지는 사대주의가 이 땅에서 물러날 시기는 과연 언제일지 궁금해진다.

국회의 역할... 진정으로 순국선열 추념하는 사회를 기다리며

내년에도 순국 선열의 날은 또 올 것이다. 자강정신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이들도 그날이면 현충원을 찾고, 국민을 향해 "애국애족"을 부르짖을 것이다. '정치적 쇼'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그날을 간구하며 뒤늦게 접한 백산우재룡선생기념사업회의 '성명서'를 읽는다.

독자들을 위해 성명서 전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런 일이라도 해야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 몫을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자료 전면 공개와 사죄 성명서

일본 정부는 명성황후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전면 공개하고 한국민에게 사죄하라!
 
최근 보도된 일본의 언론사인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의하면, 126년 전인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일본의 외교관들이 살해했다고 밝히는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 아래 자행된 이 같은 만행의 발생 126년이 지나 일본 정부의 조직적 범행이 드러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명성황후 살해에 대해 한번의 사죄를 한 바가 없다. 아울러 명성황후 살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칼집에는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었다'라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가 새겨진 히젠도(肥前刀)를 압수는커녕 일본 후쿠오카 쿠시다(櫛田)신사에 자랑스럽게 봉납되어 있는 형편이다.
 
현재 한일(韓日) 간에는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는 일본 정부의 시대착오적 인 태도로 긴장이 고조되어 있다. 우리는 진정한 한일 간의 우호는 과거를 직시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외교관들이 중심이 되어 명성황후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하고, 이와 관련된 자료를 즉각 공개하여야 한다. 아울러 히젠도를 압수하여 한일 역사인식의 공유를 위하여 한국 측에 정중히 인도하여야 한다.
 
우리 국회는 지난 19대 국회부터 시작하여 20대에 이어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세 번째로 이미 제출되어 있는 '명성황후 살해에 사용된 히젠도 처분 촉구 결의안'을 신속히 통과시키고, 정부는 이를 인도받는데 외교적 교섭을 즉각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되어 일제시대 1910년대 가장 치열한 무력투쟁을 한 (대한)광복회의 지휘장 백산 우재룡선생 기념사업회는 향후 명성황후 살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히젠도 환수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2021.11.17. 순국선열의 날에 백산 우재룡선생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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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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