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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에서 시험장에 입실한 수험생이 1교시 시험을 앞두고 기도를 하고 있다.
▲ 기도하는 수험생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에서 시험장에 입실한 수험생이 1교시 시험을 앞두고 기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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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이다.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들은 저마다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한다. 교문 앞에 서서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왠지 모를 눈물을 훔친다. 학교 담벼락에 엿을 붙이는가 하면 찬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한참을 손이 닳도록 빌다 울다 돌아간다.

경찰 오토바이와 소방서 순찰차들까지 나서 지각한 수험생들을 실어 나른다. 길 막히지 말라고 직장인들도 출근 시간을 늦춘다. 심지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도 이날 아침만은 평소보다 한 시간 뒤에 개장한다. 듣기평가를 하는 동안엔 하늘에 떠있는 비행기까지 이착륙이 금지된다. 분명 모두 수험생들을 위한 배려다. 그런데 왜 11월 늦가을마다 반복되는 이 풍경들은 어딘가 조금 슬픈 걸까.

수능날 온 사회가 합심해 이 난리통의 비용을 치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졸음이 와? 수능 대박 나서 '좋은 대학'만 가면 니 인생 쫙 피는 거야 임마", "나중에 '좋은 대학' 못 갔다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공부해. 그러다 니 배우자도 맘대로 못 고른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좋은 대학'이나 반복하던 꼰대 선생들 얘기가 어이없게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 때문이다.

그렇다. 그놈의 '좋은 대학'은 추상적 표현이 아닌 구체적 현실계급이었다. 우리가 한때 정의롭다 믿었던 수많은 위정자 중 여럿도 어떻게든 자식들 '좋은 대학' 보내겠다 꼼수 쓰다 나가떨어졌다. 그러니 열아홉살 무렵의 50만 청년들이 한날 한시에 '좋은 대학'이냐 아니냐를 놓고 겨루는 수능이란 대한민국 '오징어게임'의 첫번째 스테이지인지도 모른다.

"좋은 학교"란 말에 담긴 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 20대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 20대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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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전쟁 같은 수능이 치러지기 바로 전날, 11월 17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선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총 20여 개 대학에서 온 100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한 행사였다.

그런데 행사 초반부, 이재명 후보가 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예를 들면 정치적 배경도, 조직도, 돈도, 학연도, 좋은 학교도 아니고, 뭐 어쨌든. 지연도..."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이재명 후보는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나왔다. 이 후보의 해당 발언은 비주류 '흙수저' 출신으로 시작해 오직 자신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는 취지였지만, "좋은 학교도 아니고"란 말이 내심 걸렸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현재 각자의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 앞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의 모교 출신 학생들도 참석한 행사였다.

행사 현장에서 이 발언을 직접 들은 대학생들은 어땠을까. 수소문 끝에 간담회에 다녀온 복수의 학생들과 연락이 닿았다. 어떤 예민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일부를 싣는다.
 
기자 : "잠시 빠르게 지나가긴 했는데, 혹시 어제 이재명 후보 발언 중에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고, 예를 들면 정치적인 배경도…'"
A학생 : "아, 학교 얘기하시는 거죠?"
기자 : "아, 맞아요."
A학생 : "좋은 학교도 아니라고 한 것."
기자 : "기억하시네요?"
A학생 : "그 부분은 좀… 뭐 후보는 아무래도 사회에서 '좋은 학교'라고 하면, '스카이' 출신 정치인들도 많고 하니까... 그래서 조금 실수하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뭔가 깊게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만약 그 자리에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셨다면…"
 
B학생 : "그렇게 말하는 건… 사실 좀 그렇죠. 거기 실제 이 후보랑 같은 학교도 있고 또 다른 대학 학생들도 다 있는 자리였는데. 그리고 사실 되게 민감한 거잖아요. 예를 들면 좋은 대학이라고 하면 서울대부터 딱딱 순위가 매겨진 게 뻔한 건데."
 
C학생 : "얼마 전에 고민정 민주당 의원 논란도 있었잖아요. 정치인들이 대학에 대해 말을 할 때 아무래도 학생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 후보 본인의 정치적인 배경에 어떤… 어떻게 보면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말인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는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지는 않아요."
 
몇 년 전 그들도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인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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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학생은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사회에서 '좋은 학교'라고 하면 '스카이' 출신 정치인들도 많고 하니까"라 한 부분은 정확한 사실이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중 이른바 '스카이' 출신은 112명(37.3%)에 달한다. 그것도 피라미드마냥 서울대 63명, 고려대 27명, 연세대 22명순이다. 소위 '인서울' 대학 출신은 300명 중 무려 238명(79%)이다.

C학생 얘기를 들었을 땐 최근 민주당의 한 청년 정치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치 평가를 떠나, 고민정 의원의 이번 경희대 캠퍼스 논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2030에 대한 민주당의 무감각"이란 푸념이었다. 고민정 의원은 얼마 전 자신의 모교인 경희대 국제캠퍼스를 사례로 들며 블라인드 채용의 당위성을 설명하다가 해당 대학 학생들로부터 '모교 비하'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재명 후보 역시 과거 비슷한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다. 이 후보는 지난 2016년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가천대학교를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이라며 학위를 반납했다고 설명하다가 학교 비하 논란이 일자 사과한 바 있다. 고 의원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을 호명했을 때 그 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이미 한 번 홍역을 치러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이번 "좋은 대학도 아니고" 발언이 더 아쉬운 이유다.

B학생 말을 들으면서는 이제 막 수능이란 잔인한 게임을 치르고 뛰쳐나오는 앳된 수험생들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대학생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역시 잔뜩 긴장한 채 초조하게 떨던 바로 그 수험생들이었다. 정치권이 연일 너도나도 청년 표심 잡기에 매진하는 걸 보면 정말 선거철이 다가온 것 같긴 하다만, 정작 기본적인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올해 수능도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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