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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기 전날의 두근대는 마음 같은 것.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순간, 선물 상자를 열어보기 직전의 두근거림... 그런 순간의 느낌을 저는 좋아합니다. 내 삶이 그런 순간으로 채워져 있다면 좋을 것만 같아요.

오랫동안 기다렸던 여행도 사실, 여행지에 도착해서 누리는 기쁨도 좋지만 여행을 가기 전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일정을 짜고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쇼핑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알아보고, 새 노트에 펜으로 다짐을 적을 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저로 하여금 에너지가 솟아오르게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는 그 마음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음 속에 희망이나 바람을 갖는 것 자체를 모른 체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희망과 바람을 갖는 일에 대하여
 희망과 바람을 갖는 일에 대하여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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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바람이나 꿈, 좋아하는 것과 갖고 싶은 것 등을 묻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고, 또는 무엇을 바라는지조차 몰라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은 달라서,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솔직히 표현해서 얻어내고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겉으로 드러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자신의 바람이나 욕구를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대하면 실망하고, 바라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꿈이나 소망에 대해서 "에이,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 "난 해봤자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자신의 현실을 자각한다는 핑계로 나에게 만들어주는 구실입니다. 혹시 실패했을 경우에 상처를 덜 받고자 하는 자기보호의 방법인 것이지요.

무언가를 바라고 갖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보다, 차마 꺼내어놓지도 못하고 미리부터 바라지도 말고 기대하지도 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쩌면 훨씬 더 그 바람의 크기가 커다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간절할수록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에 내가 갖는 상처와 실망을 감당하는 것이 어려우니까요.

그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억지로 변화를 시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자신을 자꾸 움츠러들게 한다면, 그리고 차마 표현도 하지 못하고 손내밀지 못해서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삶에서 너무 많았다면 그 마음을 조금씩 열기 위한 훈련은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주 작고 사소한 성취라도 해내었을 때, 나 자신을 마음껏 칭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정도는 가질 만한 자격이 있지. 노력했잖아"라고. 그리고 그것을 바랐음을 솔직히 인정해줍니다. 사실은, 속마음은 감히 바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많이 바라는 일이었다고... 나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조심스럽게라도 해봅니다.

그렇게 내가 이룬 것들 중에 바랐던 것, 꺼내어놓지는 못했지만 간절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이 정말로 이루어졌을 때의 솔직한 내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색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 성취감을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또렷이 기억하도록 노력합니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주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머뭇거리는 나에게 바람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을 기다리는 일이 설렘이 아니라 불안감인 건 사실 슬픈 일입니다. 그동안 겪어온 실망과 좌절의 경험때문일 수도 있고, 스스로가 무언가를 얻고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다섯 살 어린 아이가 사탕 바구니에 담겨 있는 사탕을 보고 자신이 먹으면 안 될까 봐, 혹시라도 혼날까 봐 그 사탕을 못본 척 하고 먹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내 안의 그런 안쓰러운 아이를 다독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살면서, 조금 뜬금없는 것들을 바라기도 해보고, 가끔은 부질없는 꿈같은 일로 설레여도 됩니다. 저는 아직, 조금 더 설레고 기다리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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