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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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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가 발표한 2021년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노동실태 긴급점검 조사(10월)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스태프 333명 중 19.8%는 여전히 '팀별 턴키계약'을 체결한다고 답했습니다.

턴키계약은 방송국이나 제작사에서 각 스태프 파트별로 팀장급 스태프와 용역계약을 맺고 원래 방송국이나 제작사에서 스태프들에게 지급하였어야 할 임금을 대금형식으로 팀장급 스태프에게 뭉텅이로 나눠주는 형식의 계약을 말합니다. 여러 차례 제작사와 방송사들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지적되어 온 드라마 제작 현장의 '턴키계약'은 무엇이 문제이고 왜 근절되지 않을까요?

촬영감독은 근로자 아니라는 고용노동부, 맞다는 법원

그 배경에는, 애석하게도,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던 고용노동부의 2019년 근로감독 결과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근로감독 결과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일종의 성과였지만 사실 고용노동부의 발표는 반쪽짜리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같은 근로감독에서 조명팀, 촬영팀 등 드라마 제작 현장의 각 팀을 총괄하는 '팀장급 스태프'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즉,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조명감독, 촬영감독 등 드라마 제작 현장의 각 팀의 '팀장급 스태프'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팀원급 스태프와 팀장급 스태프는 업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아서 팀장급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을까요? 고용노동부는 '팀장급 스태프'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 책임 아래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근로 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여 팀장급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업무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하는지 여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어떤 업무 분야를 오래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쌓이기 마련이므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하는지 여부는 근로자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법원이 내세우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기준들을 따진다면 팀장급 스태프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연출 감독을 제외한 팀장급 스태프들은 방송사 또는 제작사가 고용한 연출 감독의 지시를 받아 일합니다. 카메라 각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조명은 어떤 느낌이 나기를 원하는지 등 연출 감독의 세부적인 지시에 맞춰 촬영은 이루어집니다.

또한 팀장급 스태프들의 근무장소와 근무시간은 연출 감독과 제작사에서 정한 촬영 스케줄에 의해 지정됩니다. 팀장급 스태프들은 자신을 대신하여 팀을 통솔하고 연출 감독과 제작사의 지시를 팀원에게 전달하는 '팀장의 일'을 할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팀장급 스태프들은 통상 정하여진 일당을 근로에 대한 보수로 받고 일합니다. 드라마가 대박이 난다고 갑자기 보수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즉 팀장급 스태프는 드라마 제작에 노무를 제공한다고 하여 드라마 제작으로 인한 이윤에 따른 이득 또는 손실에 따른 위험을 안지 않습니다. 이처럼 업무 수행 전반에서 제작사와 연출 감독의 지휘‧감독을 받는 팀장급 스태프들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고소하면 된다? 아니다

법원은 이미 드라마 제작 현장의 팀장급 스태프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올해 5월 드라마 촬영감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대법원에서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팀장급 스태프들과 업무 환경이 유사한 영화 촬영현장의 팀장급 스태프들에 대해서는 이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확인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팀장급 스태프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확인하는 문제는 팀장급 스태프들 개인의 근로기준법상 보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팀장급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면 제작사와 방송국은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의 계속되는 근로기준법 위반의 이면에는 팀장급 스태프들에게 턴키계약을 체결할 것을 압박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관행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가 팀장급 스태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하면 제작사들은 턴키계약을 이용하여, 팀장급 스태프들을 팀원급 스태프들에 대한 사용자로 내세워, 근로기준법상의 법적 책임을 팀장급 스태프들에게 돌릴 수 있게 됩니다.

팀장급 스태프들은 제작사와 연출 감독의 지시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사용자로 서류에 남게 됩니다. 결국 팀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지휘‧감독을 받는 위치에 있는 각 팀 팀장들만 근로기준법에 의한 의무를 지게 되고 실제 결정권을 가진 방송국과 제작사,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현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법원에 가서 근로자성 여부를 따져 근로기준법 위반을 인정받으면 그만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소송의 과정은 지난하며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사람은 개별 당사자뿐입니다.

그에 반해 고용노동부는 일선 현장과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위반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에 대한 해석 또한 법원의 판결만큼이나 현장에서의 파급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용노동부는 2019년 근로감독 결과에서 벗어나 드라마 제작 현장의 '팀장급 스태프'도 근로자임을 일반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지 책임을 져야 하는 자가 책임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가 보호를 받는, 원래 근로기준법이 예정한대로의 드라마 제작 현장이 정착될 것입니다.

태그:#드라마, #노동, #턴키, #KBS ,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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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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