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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의 비행 …낙동강 해평습지를 지나치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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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루루 뚜루루"

지난 10일 오후 4시 30분 해평습지에서 반가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나는 쪽을 응시했다. 바로 하늘 위였다. 순간 오감이 떨렸다. 기다리던 흑두루미가 드디어 온 것이다.

100여 마리로 보이는 흑두루미가 편대비행을 하며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반가웠다. 그 모습을 바로 카메라로 담았다. 그런데 그것이 다였다. 흑두루미는 구미 해평습지에 내리지 않았다. 그대로 남쪽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아, 흑두루미가 그냥 가버리다니. 떨린 마음을 진정시키고 혹시 아래 대구 달성습지에 녀석들이 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뜩 달성습지를 모니터링하는 석윤복 선생께 전화를 돌렸다. 정확히 4시 34분 흑두루미떼가 해평을 지나갔으니 달성습지에 내리는지 잘 관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뒤에 석윤복 선생께 확인을 했지만 흑두루미들은 달성습지에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녀석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본 이즈미로 바로 날아갔을까? 그러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석윤복 선생은 우포늪이나 주남저수지로 갔을 거라고 판단했다.

남으로 튄 흑두루미는 어디로 갔을까?
 
낙동강 해평습지를 내리지 않고 날아간 흑두루미 80마리
 낙동강 해평습지를 내리지 않고 날아간 흑두루미 80마리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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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정확히 80마리의 흑두루미는 해평습지를 외면했다. 낙동강 최대 흑두루미 도래지였던 해평습지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해오던 그들의 질서를 스스로 무너트려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흑두루미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평습지는 모래톱 하나 없는 '해평 호수'의 모습이기에 말이다.

흑두루미처럼 예민한 녀석들은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넓은 개활지에서 쉬어간다. 해평습지가 녀석들의 중요 도래지였던 까닭은 넓은 개활지로서의 모래톱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해평습지에는 모래톱 하나 없다. 완전히 물로 잠겨버렸다.

4대강 사업 탓이다. 4대강 사업은 해평습지의 그 많던 모래를 파내고 아래 칠곡보를 건설해 칠곡보 수문을 닫음으로써 넓은 모래 백사장의 해평습지는 그대로 수장돼버린 것이다.
 
모래톱 하나 없는 해평습지. 설상가상 하중도 위에 교량공사마저 벌이고 있다
 모래톱 하나 없는 해평습지. 설상가상 하중도 위에 교량공사마저 벌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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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 흑두루미의 도래를 방해하는 교랑 공사마저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해평습지를 지금의 이 지경으로 만든 국토부가 해평습지의 핵심 공간에 교량공사마저 벌이고 있기에 이래저래 흑두루미들에겐 해평습지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해평습지를 외면한 이유다.

그래서 80마리의 흑두루미들은 해평습지를 외면하고 "남쪽으로 튄" 것이다. 녀석들은 정말 어디로 갔을까? 오랫동안 흑두루미를 관찰해온 이들의 소통 공간에서 다양한 추측들이 나온다.

석윤복 선생의 주장처럼 주남저수지나 우포늪으로 갔을 거라고 보는 쪽과 흑두루미는 눈이 밝아 야간비행도 가능하니 일본 이즈미로 바로 갔을 거라고 보는 쪽으로 갈린다. 그러나 일본으로 바로 가기엔 너무 먼 거리다. 체력이 고갈나 잘못될 수도 있는 거리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갔을까?
      
낙동강 해평습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흑두루미가 러시아 동북부에서 일본 이즈미로 가는 최단 경로가 바로 낙동강 루트이고 낙동강 루트의 핵심이 바로 해평습지였기 때문이다. 해평습지에서 한번 쉬었다가 다음날 일본으로 날아가는 것이 이들의 질서였던 것이다.

깨어진 흑두루미의 질서를 회복시켜주자
  
칠곡보 수위를 1미터 내린 현재 낙동강 감천 합수부의 모래톱은 더 늘어났다. 적어도 이런 모래톱이 있어야 흑두루미가 내려올 수 있다.
 칠곡보 수위를 1미터 내린 현재 낙동강 감천 합수부의 모래톱은 더 늘어났다. 적어도 이런 모래톱이 있어야 흑두루미가 내려올 수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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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들의 질서가 깨진 것이다. 그 질서는 4대강 사업이 깨버렸다. 우리가 깬 그들의 질서를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 질서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바로 해평습지 아래 만든 칠곡보의 수문을 열면 된다.

칠곡보의 수문을 열어 물을 빼줘서 모래톱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다행히 흑두루미가 오는 철은 농사철도 아니라서 농업용수 걱정도 안 해도 된다. 칠곡보의 관리수위는 해발 25.5미터이고 해평취수장의 취수가능 수위는 19.1미터다. 그러니 적어도 5미터 정도는 수위를 내릴 수가 있다.

지금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5미터 수위가 내려간다면 넓은 모래톱이 생겨날 것이다. 모래톱은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천수만의 김신환 원장의 말처럼 "모래톱만이 흑두루미를 부르니" 말이다.

그래서 환경부에 공개 요청을 해본다. 적어도 겨울철만이라도 칠곡보 수위를 5미터 내리자고 그래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그들의 질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말이다.

그들의 질서를 깨트린 것은 우리다. 우리가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니 환경부는 결단을 해달라. 멸종위기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니 말이다.

한편, 환경부는 흑두루미와 상관없이 현재 칠곡보 수위를 1미터 정도 내렸다. 이는 수문을 열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관찰하는 겨울철 모니터링을 위함이다. 그러나 1미터 수위를 내려서는 해평습지에 어떠한 변화도 없다.

그래서 요청해본다. 겨울철 모니터링을 위해 수문을 연 차에 더 열어서 5미터 수위를 내려보자. 그러고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기다려보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모니터링이 아닌가. 수문을 연 낙동강에서 나타나는 기분 좋은 변화를 관찰하는 모니터링 말이다. 환경부의 결단을 다시 기다려본다.

태그:#흑두루미, #낙동강, #해평습지, #이즈미, #달성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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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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