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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조각모음: 여성일터 안전키트'는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미지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산업재해 의제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의 조각모음을 통해 이야기의 확장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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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친절한 응대를 요구받고, 이를 위해 감정과 신체를 통제당한다.
▲ 목소리만 남기고 지워지는 몸  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친절한 응대를 요구받고, 이를 위해 감정과 신체를 통제당한다.
ⓒ 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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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받을 때는 감정노동이 가장 심각하죠. 코로나 국민지원금 신청 때는 엄청났어요. 우리는 2분 30초 안에 전화 끊고 다음 전화받아야 하는데 "왜 나는 지원 못 받느냐", "나는 빚이 많은데 왜 반영을 안 해주냐"면서 화를 쏟아내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납득을 못하고 우기기만 하시면... 속에서 열이 뻗치죠.

팀장은 빨리 끊으라 하고 고객은 내 말을 들어주질 않고... 그게 화병, 우울증으로 와서 그만둔 사람도 많아요. 이 사람이 욕을 했으면 내가 끊고 쉴 수 있어야 하는데 치열하게 경쟁을 붙이니 일단 쉬고 오라 그러는 문화가 안 되어 있고, 그걸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으니까 눈치 보여서 못 쉬고 다른 전화받고. 그러니 감정이 남아서 반영이 되는 거죠. 노조 만들고선 그것도 좀 바뀌긴 했는데.    

"당신은 상담도 못하는 주제에 왜 그 자리에 앉아 있어?" 이렇게 비하하거나 욕하는 분도 여전히 있어요. 한 10분을 자기 속상한 걸 나한테 다 쏟아내고 나중에 자기 기분 풀렸다고 '좋은 하루 되세요~'이러면서 끊는데...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거 같죠. 그런데 남자 상담사에 비해 여자 상담사한테 더 감정을 막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여자이고 상담사라는 게 좀 만만하게 보인다는 느낌.

한 번은 지사 정규직원 쪽에서 처리해줘야 할 전화였어요. 그래서 지사로 연결해 드린다고 했더니 "처리도 못할 걸 전화를 왜 받았어요? 그 자리에 왜 있어요?" 이러는데... 자기감정을 던지기에 상담사가 쉬운 거죠. '굳이 너한테 내 기분을 감출 필요 없잖아?' 이런 태도. 그럴 때 아 우리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구나, 모멸감이 들죠. 

'경청'도 전문 업무거든요, 그런데 왜 지켜주지 않을까 

되게 힘든 일인데 사람들이 좀 하찮게 여기는 업무가, 듣는 일 같아요. 경청. 상담사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는 거 같은데 사실 공부도 되게 많이 해야 해요. 건강보험공단은 업무영역이 굉장히 방대하거든요. 건보공단 다닌다 하면 콜센터 업계에서는 알아줘요.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겠구나 한대요. 다른 사회보험들은 자격, 부과, 정산만 하는데 건강보험은 징수까지 하거든요.

징수업무가 엄청 방대하기도 하고 제일 힘들어요. 체납액이 너무 많은 분도 많고, 그럼 압류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게 또 그분 가족들이랑 다 묶여 있고. 고지서 받고 전화를 하면 이분은 피부양자 할 건지 상담을 또 해야 하고... 그거 지사가 아니라 우리가 다 하고 있는 거예요. 내 교육 동기가 14명이었는데 지금 딱 한 명 남았어요. 2년쯤 일해야 업무 사이클을 이해할 수 있는데 업무는 힘든데 박봉이니까 못 버티죠. 호봉 인정도 안 해주니까 16년차랑 저랑 월급이 같아요. 

거기다 내 감정을 꾹 누르고 남을 말을 다 들어야 하는 일인데, 말로 난도질을 얼마나 하는지... 이 일 하다 보면 목소리만 들어도 직종이나 성격이 좀 보여요. 진상 고객은 특유의 '진상 목소리'가 있어요. 약간 높은 톤에 스마트한 느낌? 

고객이 욕을 하면 우리가 ARS를 누를 수 있어요. 1차 누르면 전화가 끊기고, 2차 누르면 3개월 간 상담사 연결이 안 되는 건데요. 그런데 이게 허점이, '욕 안 하는 진상'은 거를 수가 없다는 거. 계속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고 시비를 거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불만족스러우시면 고객만족부서로 전화 넘겨드리겠다 해도, "왜 넘겨? 니가 상담해!" 이러면서 안 끊고 계속 시비 걸고 괴롭히는 거죠. 

날 경찰서에 신고한 분도 있었어요. 이미 '주의고객'으로 분류된 분이었는데, "왜 그렇게 어려운 말 쓰냐, 네가 뭔데 일을 딴 데로 넘기려고 하느냐, 싸가지가 없다." 전활 못 끊고 있으니까 팀장이 청취하고는 ARS 누르래서 그렇게 했죠. 그런데 전화연결이 안 되니까 경찰에 신고한 거예요. 경찰이 수사 안 한다고 경찰 신문고에까지 민원을 올려서 결국 경찰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공단이 전혀 직원을 보호해주질 않더라고요. 그냥 내 전화번호만 경찰에 넘기고는 끝. 그다음엔 다른 악성 민원인이 날 붙들고 30분간 통화를 해놓고는 내가 응대 잘못했다고 통화 전문을 신문고에 올린 일이 있었는데요. 팀장이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언니, 공단에서 언니 이름이 자꾸 올라오니까 언니가 업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어"라고. 통화 내용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건강이든 안전이든, 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거예요. 회사는 관심이 없으니까. '일하면서 건강을 지킨다'? 그냥 내가 틈틈이 운동하고 되도록 감정 안 상하게 하는 거.

그래도 사실 아픈 친구들이 되게 많아요. 그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도 많고. 이제는 그런 것들을 조사도 하고 통계도 내보고, 병가나 산재 인정 같은 것도 되면 좋겠다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 브런치(https://brunch.co.kr/@vpmiyu)에서도 게재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재)숲과나눔의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태그:#콜센터, #여성노동, #감정노동, #여성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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