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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요. 바로 '김장'입니다. 우리집만의 김장 비법, 독특한 재료로 만든 이색적인 김치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이 끄댕이들은 곧 우리집으로 와서 끄댕이 짠지로 탄생할 것이다.
▲ 박명자님의 텃밭에 남은 끄댕이 무 이 끄댕이들은 곧 우리집으로 와서 끄댕이 짠지로 탄생할 것이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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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했남? 무수(무) 좀 뽑아다가 깍때기(깍두기)도 담가 먹고 채김치(생채)도 담아먹으랑게. 배추는 망쳐서 줄 게 없는디 무수는 잘 됐다니께."
"김장을 벌써 하셨어요?"
"날씨 추워지기 전에 해 버려야 한갓지지."


오랜만에 중천 마을에 사는 박명자(77)님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도 전염병의 영향 때문에 김장 일손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소문도 없이 김장을 해치우는 중인 것 같았다.

일손은 보태주지도 못하고 얻어다 먹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누군가 무엇을 가져다 먹으라고 하면 얼른 가져오는 것이 예의이다. 농사에 소질이 없는 나는 이런 이웃들이 있을 땐 염치불구하고 달려간다. 시골 마을에서는 잉여 농산물을 치워주는 이웃도 필요하다.

세상에, '끄댕이'라는 채소도 있나? 

"끄댕이 짠지 좀 담가 볼텨?"
"끄댕이 짠지요?"


충청도 부여 산골마을 살이 20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김치의 이름이었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과 대화 속에서는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지역색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언어들을 발견하곤 한다. 보통 충청도에서는 김치보다는 '짠지'라는 말을 많이 쓴다. 시골살이 초창기에는 그 '짠지'란 말이 낯설고 촌스럽게 들려서 큰소리로 웃곤 했었다.

최근에는 그 '짠지'라는 말의 사용자들이 많이 줄었다. 표준어를 교육 받은 인구가 그렇지 않은 인구를 넘어서서 그런 것 같다. 표준어에 오염되지 않은 지역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용자들도 사라지고 있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고유의 명칭이 사라지면 그와 관련된 모든 재료와 스토리도 소멸된다. 투박하고 촌스런 이름이 남아있을 때 충청도 산골 마을 고유의 맛도 생생하게 살아 있기 마련이다.

처음엔 '끄댕이'가 그 마을에만 있는 희귀한 채소의 이름인 줄 았았다. 알고보니 끄댕이는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운다'고 할 때 그 끄덩이를 끄댕이로 발음한 것이다. 끄댕이 짠지는 원재료에서 명칭이 유래한 것이 아니라 재료의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끄댕이 짠지'의 원재료는 무청이 달린 작은 무를 말하는 거였다. 박명자님에 의하면 '끄댕이 짠지'는 '총각 짠지'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 알타리와는 별개로 총각 김치의 원조는 끄땡이 짠지였다.

김장 배추와 무를 심을 때 한쪽 밭을 조금 비워놓는다. 한 달쯤 지나서 배추와 무가 자리를 잡고 성장기에 들어설 때쯤에 비워놓은 밭에 다시 무씨를 뿌린다. 이 무는 작정을 하고 늦게 심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김장 시기에도 알타리 무 크기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다.

이때가 되면 무청은 부드럽고 무는 먹기에 좋을 만큼 작으면서도 단단하고 아삭한 맛의 결정체가 되어 있다. 바로 이 무를 뽑아서 담는 김치가 '끄댕이 짠지'가 되는 것이다. 끄댕이 무수는 일단 밭에 심을 때부터 먹기에 좋은 크기와 부드러운 줄기를 염두에 두고 재배 시기를 조절해서 심은 것이었다.
 
일반무의 무청은 이 맘때에는 억세서 김치로 담가 먹기에는 질겨서 시래기로 말려서 먹지만 이 부드럽고 청청한 무청으로는 끄댕이 김치를 담근다.
▲ 일반 무의 씨앗을 한달 늦게 심어서 수확한 끄댕이 무수들 일반무의 무청은 이 맘때에는 억세서 김치로 담가 먹기에는 질겨서 시래기로 말려서 먹지만 이 부드럽고 청청한 무청으로는 끄댕이 김치를 담근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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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는 김장을 할 때 이 '끄댕이 김치'를 따로 담그는 집이 많다. 나도 이 김치를 자주 얻어먹었으면서도 '끄댕이 짠지'라는 이름은 박명자님에게 처음 들었다. 생각해보니 무로 담근 김치를 주길래 따로 이름을 물어보지 않기도 했고 주는 쪽에서도 굳이 말을 하지 않은 거였다.

"이거 보랑게. 이 무수(무)를 뽑아보면 무수 꼬다리(뿌리)는 작고 이파리만 무성하니 머리 끄댕이를 풀어헤쳐 놓은 거 같잖여. 이걸루 짠지를 버무리면 머리 끄댕이처럼 서로 엉켜서 끄댕이 짠지라고 하는 겨."

두 개의 김치 냉장고와 저온창고에 저장할 만큼 김치를 잔뜩 담가 놨는데, 박명자님의 텃밭에는 아직도 이 끄댕이 무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찐 고구마에 척 올려먹던 그 맛 

검색의 힘을 빌어서 '끄댕이 짠지'를 찾아보니 반갑게도 그 그리운 김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충청도 태안 사람의 블로그에서 '끄댕이 짐치'의 흔적이 발견됐다. 어릴 적 소한 추위가 극성을 부릴 때쯤, 찐 고구마에 무청으로 담근 '끄댕이 짠지'의 이파리를 척 걸쳐서 먹었던 입맛이 그립다고 했다.

따끈한 밥 한 그릇과 끄댕이 김치를 먹었던 어린 시절의 충청도의 입맛이 나이가 들수록 생각난다고 했다. 음식은 추억의 다른 이름이다. 겨울 추위 속에 적당히 숙성이 된 끄댕이 김치를 한 바가지 퍼다가, 가마솥 밥 한 숟가락에 긴 무청줄기를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쑥 내밀어서 아작아작 씹어 먹었던 곰삭은 맛은 몸이 기억해 낸다.

"알타리도 심었으면서 이 끄댕이 무도 따로 심었네요."
"알타리랑 맛이 같으간디... 이 끄댕이 무는 깊은 맛이 나잖여. 이 무로 이파리까지 양념해서 그대로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가 내년 봄에서 여름까지 먹는 겨."

 
이 끄랭이는 우리 집으로 왔다. 아직 숙성되지 않아서 아삭거리는 무의 맛만 보고 김치 냉장고 속에 소중하게 저장해 두었다.
▲ 박명자 님이 담근 한 끄랭이의 끄댕이 김치  이 끄랭이는 우리 집으로 왔다. 아직 숙성되지 않아서 아삭거리는 무의 맛만 보고 김치 냉장고 속에 소중하게 저장해 두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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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는 김치로 담가서 바로 익혀서 먹을 때 맛이 나고 끄댕이 김치는 알싸한 맛 때문에 오래 숙성을 해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뜻이다. 겨울 무의 아삭하고 단맛을 오래두고 즐기기 위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런 지혜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런 맛에 대한 변별력이 확실한 입맛을 요즘 사람들은 알까?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나고 수확을 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아는 입맛이다.

"이 끄댕이 무를 담글 때 따로 들어가는 젓갈이나 양념이 있나요?"
"아녀. 그냥 배추하듯이 하면 돼야. 말하자면 무가 덜 자라서 억세지는 않아도 알싸한 맛이 있기 땜에 '단 것'(뉴슈가)을 많이 넣어야 혀. 새우젓이나 액젓은 기본이잖여. 요즘은 매실청이나 엑기스들을 많이 담그니께 그런 것들 좀 많이 넣으면 돼야. 끄댕이 무수가 알싸하니께 생강은 넣지 말고."


김치가 우수한 식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비타민의 보고인 채소에 단백질과 미네랄의 결정체인 젓갈을 결합한 음식으로 숙성하는 과정에서 유산균 등의 신체에 이로운 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충청도 부여에서는 금강을 통해 서해바다에 잡은 새우젓이 많이 유통되었기 때문에 젓갈 음식이 발달되기도 했고 김치에 젓갈은 반드시 넣었다.
 
박명자 님이 담근 끄댕이 짠지는 먹기에 좋게 무와 이파리를 잘라서 담갔다. 이제 이가 시원찮아서 되록이면 잘게 썰어서 담근다고 했다.
▲ 끄댕이 김치. 예전에는 무와 무청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담갔다. 박명자 님이 담근 끄댕이 짠지는 먹기에 좋게 무와 이파리를 잘라서 담갔다. 이제 이가 시원찮아서 되록이면 잘게 썰어서 담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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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덜(우리) 입맛대로 하자면 소금도 더 넣고 짭짤하게 해야 혀, 요즘 애들은 짜게 안 먹으니께 짜게는 안 혔어. 오래 두고 먹으려면 좀 짭짤하게 혀야 맛이 나기는 헌데 요즘은 냉장고가 있어서 그렇게 안 혀도 돼야. 한 보세기 줄테니께 가져가 먹어봐. 아삭아삭 씹어서 먹는 소리까지 맛있당게."
"말만 들어도 벌써 침이 고이네요. 곰삭은 무김치만큼 맛있는 김치도 없을 걸요."


염치불구하고 손 큰 박명자님이 주는 끄댕이 무수를 한 트렁크 가득 뽑아오고도 끄댕이 짠지까지 한 끄랭이(봉지) 얻어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왔다. 시골마을 인심의 맛도 오래도록 몸이 기억할 것이다. 다음에는 이 끄댕이 무수들을 잘 닦달해서(다듬는다는 표현을 충청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짠지로 담는 과정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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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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