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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의 나무들이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다.
 문경새재의 나무들이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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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어느 한 곳을 지칭할 것도 없다. 한국의 산 대부분이 무르익은 가을 안에서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절경을 펼치고 있다. 경상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의 가혹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찾아온 만추. 오래전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요즘과 같은 날들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단풍은 '초록에 지친' 산이 붉고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냄으로써 '죽고 사는' 굴레에 갇힌 인간의 유한함과 수천 년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자연의 무한함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 곁에 해마다 오는 것일까? 눈이 부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과 함께.

이른바 '위드 코로나 시대'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11월 첫 주말을 이용해 단풍놀이를 즐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흐름은 이번 주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급한 코로나19와의 공존 움직임이 바이러스 확진자 증가로 이어져 다시금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그것만으론 2년 가까이 갑갑한 일상을 반복하며 집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의 일상 탈출 욕구를 제지하기 힘들 듯하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이 몰리는 곳에선 마스크를 꼼꼼하게 착용하고, 식당과 카페 등 다중 밀집 장소에선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기 방어가 필요해 보인다. 그런 태도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사는 여행자의 기본일 터.
 
경주수목원을 찾아 단풍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
 경주수목원을 찾아 단풍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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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고 붉은 나뭇잎 아래를 걷는 즐거움

봄의 꽃놀이와 여름의 물놀이도 좋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여러 사람을 설레게 하는 단풍놀이는 누구나 기다리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청명한 날씨. 샛노랗고 투명하게 붉은 나뭇잎 아래를 거니는 걸 누가 마다하겠는가.

단풍은 '기후 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노란빛으로 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사전적 정의를 뛰어넘는 게 바로 단풍이고, 단풍놀이다. 지긋지긋한 바이러스 탓에 지난해는 단풍과의 만남을 애써 참아왔으니 올해 바라보는 빨갛고 노란 가을 나뭇잎은 더 반갑고 애틋할 게 자명한 이치.

경북의 단풍놀이 명소는 여러 곳이다. 그중 경주시 통일로에 자리한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 내 수목원의 단풍은 풍성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산림환경에 대한 조사 등을 수행하는 기관인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은 생태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한 곳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잘 관리하고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수목원은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가을날의 정취를 만끽하는 곳.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던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은 "마법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나무들을 보면 우리도 저 단풍 든 나무처럼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 진다"며 소리 내 웃었다. 그 웃음이 가을바람처럼 청량했다.

단풍놀이는 중년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20대 연인들도 잘 그려진 수채화 같은 가을 풍경 속에서 도란도란 밀어를 나누며 단풍 아래 한 폭의 그림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봄날 피는 꽃도 근사하지만, 폭염과 폭우의 여름을 이기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단풍 또한 꽃만큼이나 아름답네요. 내년에도 와야겠어요."
 
대구 팔공산의 가을은 단풍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대구 팔공산의 가을은 단풍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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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에서 무르익은 가을과 만나다

갑갑한 거대 도시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대구 팔공산 단풍도 내로라하는 '한국의 가을 명품'이 된 지 이미 오래.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단풍철이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팔공산의 높이는 1192m. 대구광역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솟아 있다. 남쪽으로 내달리던 태백산맥이 낙동강·금호강과 만나는 곳에 위치해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시 동구에 속하지만, 영천시·경산시·칠곡군·군위군 등 4개 시·군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산.

원래 '공산'으로 불리던 것이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산은 보물 제431호 관봉 석조여래좌상으로 유명하지만, 가을엔 여기에 유명세가 하나 보태진다. 순환도로의 단풍 길이 바로 그것.

그곳에서 차를 몰아본 이들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동화 속을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소간의 차량 정체도 이 길에선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듯했다.

팔공산이 선물하는 보너스는 하나 더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단풍 역시 절경 중 절경. 지난 주말에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팔공산이 주는 선물에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팔공산을 찾았다면 동화사, 파계사, 부인사, 은해사를 둘러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르익은 가을날 조용한 산사(山寺)를 거니는 즐거움은 비단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놓치기 아쉬운 것 아니겠는가.
 
청송 주왕산의 휘황한 단풍.
 청송 주왕산의 휘황한 단풍.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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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의 단풍.
 영주 부석사의 단풍.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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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과 영주, 문경새재 단풍도 빼놓으면 아쉬워

경북의 단풍 이야기를 하면서 청송 주왕산을 빼놓을 수 있을까? 그러기는 힘들 것 같다. 청송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보면 군민들이 주왕산에 얼마나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 명소 24곳이 분포돼 있는 주왕산은 한국 3대 암산(巖山)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우리 곁을 찾아오기 전 주왕산 일대는 매년 가을마다 몸살을 앓았다. 찾아오는 여행객이 너무 많아서였다. 도로와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넘쳐났고, 주변 상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해는 그렇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올해는 꽤 많은 이들이 단풍이 절정인 시기에 청송을 찾을 것으로 예측된다. 청송에서 태어나 50년을 그곳에서 살아온 지인은 "절골계곡의 단풍이 주왕산의 백미"라고 엄지를 세워 추천했다.

은행나무는 열매를 떨굴 때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피운다. 그러나, 노란 물감을 흩뿌린 듯 아름답게 물든 이즈음의 은행나무를 보면 지난날의 악취는 자연스레 잊을 수밖에 없다.

영주 부석사의 은행나무 단풍은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종 사찰. '땅에서 뜬 돌'이란 뜻의 절 이름이 이채롭다. 만약 부석사로 단풍놀이를 간다면 노란 수채화를 닮은 풍경 속에서 사찰 명칭에 얽힌 설화도 찾아보면 어떨지.

'걷기 좋은 관광지'를 말할 때 가장 앞서 이야기되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이곳에도 현란한 색채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의 조령(鳥嶺)이라고도 불린다. 천천히 느긋한 걸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며 붉고 노란 나뭇잎 속에 숨은 산새를 찾아보는 흥미로운 체험. 문경새재에서의 한적한 가을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서울과 제주 한라산엔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가을이 왜 이렇게 빨리 떠나버렸지"라며 아쉬워할 시간이 코앞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예쁘고 환한 빛깔로 우릴 기다리는 단풍과 만나봐야 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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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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