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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이자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가 지난 10월 31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열린 총선 후 언론과의 생방송 인터뷰에 참석해 웃고 있다.
 일본 총리이자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가 지난 10월 31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열린 총선 후 언론과의 생방송 인터뷰에 참석해 웃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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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교도통신>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10월 19일 워싱턴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회동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명분 아래 이같은 입장이 나왔다고 <교도통신>은 보도했다.

2009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민주당 내각을 이끈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은) 한반도가 분단된 것에 대해 매우 큰 책임이 있는 나라 중 하나" "미국조차 태도를 확실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왜 일본이 시기상조라고 말해야 하느냐?"며 기시다 내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북한에서도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발언이 나왔지만, 북한이 말한 '시기상조'와 일본이 말한 '시기상조'는 뉘앙스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연합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거론하고 3일 뒤인 지난 9월 24일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같은 날 김여정 국무위원은 '종전선언은 좋은 발상이지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철회된 뒤 논의할 수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북이 말하는 '시기상조'가 어떤 의미인지가 김여정 담화에서 드러난다.

일본은 '납치문제가 우선이므로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납치문제가 같은 테이블에 오를 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는 '종전선언 시기상조' 발언의 진짜 의도가 다른 데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엔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구도로 종전선언이 추진되고 이것이 한반도 평화체제및 동북아 국제질서에 파급력을 끼치게 되면, 일본의 입지가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게 이것이 아닌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 개입하고자 한 일본의 족적

그런 생각을 가질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사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갈등을 부추기고 한민족 문제에 개입하고자 하는 일본의 모습은 비단 오늘날뿐 아니라 70년 전 한국전쟁 때도 나타났다. 패망 직후의 그 와중에도, 미군의 지배를 받는 그 와중에도 일본은 6.25전쟁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일본도 한국전쟁 참전국이었다.

1978년 6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 '일(日) 소해대 6.25 참전'은 "6.25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의 소해대가 미군 명령에 의해 극비리에 참전한 사실이 지금까지 일부는 단편적으로 보도된 바 있는데, 최근 당시 해상보안청장관으로 이 소해(掃海) 작전의 최고 책임자였던 오오쿠보씨(74)가 8일 처음으로 이 작전의 극비 내용을 자서전을 통해 발표했다"고 한 뒤 일본군이 벌인 기뢰 제거 등의 소해 작전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서전은 일본 해상보안청의 소해대는 지난 50년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유엔군 측의 의뢰로 원산 앞바다에서 북괴가 부설한 소련제 기뢰를 제거하는 데 조력해왔다고 말했다."

일본군이 동해에만 출현했던 것은 아니다. 서해에도 이들이 출현했다. 인터넷판 KBS뉴스 2004년 7월 1일자 '자위대 한국전쟁 때 후방 참전'은 이렇게 보도했다.

"오가 료헤이 전 해상자위대 막료장은 오늘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자신은 한국전쟁 당시 시모노세키 해상보안청의 소해대 지휘관이었다고 소개하고 '1950년 개전 직후 일본의 소해대가 편성됐는데, 6척의 소해정을 이끌고 미군 해군과 함께 한국 서해에 파견돼 2개월 가까이 작전에 참가했다'고 증언했다."

오가 막료장은 연인원 1200명, 소해정 25척이 작전에 참가했다고 증언했다. 적지 않은 경찰예비대(자위대의 전신) 병력이 투입됐던 것이다.

일본군이 바다 청소에만 동원됐던 것은 아니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도 일본군의 참전이 이루어졌다. <조선분단의 역사 1945~1950>과 <조선전쟁과 일본> 등을 저술한 오누마 히사오 교아이학원 마에바시국제대학 교수는 '일본 입 닫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전쟁 참전국'이라는 제목의 2010년 6월 29일자 <한겨레> 인터뷰 기사에서 "한반도의 지리 지형을 잘 아는 옛 일본군 출신들"의 한국전쟁 참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점령군 사령부의 정보조직(G2)에 협력해서 유엔군의 상륙작전 등을 돕는 정보 제공을 했다. 일부는 상륙용 함정(LST)에 선원으로 승선해 일종의 병참 업무를 담당했다."

오누마 교수는 가미카제 특공대 출신들이 참전했을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았다. "민단의 의용병 모집에 일본인도 지원했다. 심지어 가미카제 특공대 출신도 끼여 있었다던데"라는 질문에 대해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진주만 기습에 동원된 가미카제 특공대에 근무했던 일본 전사들이 재일한국인들 틈에 끼여 한국전쟁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일본군의 참전 사실은 한국전쟁 중에도 논란을 일으켰다. 1952년 9월 4일자 <조선일보> '일군(日軍) 한국 향발(向發)'은 구마모토·나가사키·지바현에서 소집된 1천 병력과 관련해 소련 <프라우다>지를 인용해 "공산당 기관지 푸라우다지는 웅본(熊本)·장기(長崎) 및 천엽현(千葉縣)으로부터 소집된 일본 예비경찰대원 1천 명이 15명의 미군 장교 및 99명의 미 하사관 그리고 150명의 한국인 하사관의 지휘 하에 한국전선으로 향발하였다고 운운하는 평양발 통신을 게재하였다"고 보도했다.

"한국 특수 끝나면 일본 경제는 대체 어떻게 되는가, 불안"이라는 언론보도

일본은 전쟁에 개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쟁이 좀더 오래 지속되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미국·북한·중국이 진행하는 휴전협상에 대해서도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에 관한 불만을 아라키 에이키치(新木榮吉) 주미대사를 통해 미국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이 1989년 10월 15일 공개한 외교문서를 보도한 그달 16일자 <동아일보> 기사 '일본은 한국전 휴전을 싫어했다'는 "한국 특수가 끝나면 일본 경제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불안"이 일본 내에 있었다고 설명한 뒤, 일본 정부가 이런 불안감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휴전이 가까워지자 일본은 즉시 미 정부에 '휴전 후의 배려'를 요청했으며, 당시의 존슨 미 국무차관보대리는 '일본이 입게 될 경제적 타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일본이 획득할 달러에 큰 변화를 미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것." - 1953년 4월 1일 신목영길(新木榮吉) 주미대사의 전문

일본은 한반도와 관련된 정치협상에도 참여하려 했다. 위 기사는 휴전 직전인 1953년 6월 20일 오가자키 가쓰오 외무대신이 아라키 주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고 보도한다. "일본은 휴전 정치회담에 '어떤 형태로든 일본이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미국 측에 타진"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한반도 갈등을 부추기고 이익을 얻으려 할 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일본 정부의 성향을 잘 드러낸다. 이는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종전선언 추진에 대해 일본이 '시기상조'라며 끼어든 것이 정말로 납치문제 때문인지를 생각케 만든다.

만약 일본이 스스로를 종전선언 당사자로 생각한다면, 일본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본이 매우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 '왜 일본이 시기상조라고 말해야 하느냐'라는 지적을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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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와 역사 채널(유튜브).kimjongsung.com. 제15회 임종국상..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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