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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병원이 되었다. 그 병원 임종실에서 한 나치 군인(SS대원)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병원에 유대인 무리가 도착했다. 죽기 직전, SS대원은 간호사에게 그 유대인 무리 중 한 사람을 불러달라 부탁해, 그 유대인에게 자기의 살인죄를 상세히 고백했다. 

유대인 앞에서 SS대원은 자신의 죄과를 철저히 후회했고, 참회했다. 그 SS대원의 이름은 카를, 그 참회장면에 영문도 모른 채 호출된 유대인의 이름은 시몬 비젠탈이다. 
 
카를은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 300명이나 되는 유대인의 집단학살 현장에 있었으며, 그 학살행위에 동참했다는 내용을 시몬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어느 집 건물에 유대인들을 300명 몰아넣은 다음 SS대원들이 불을 질렀고, 죽기 싫어 건물 바깥으로 탈출하는 유대인들을 사살했다는 것이다. 카를은 자기가 마치 '자동기계'처럼 그 일을 수행했노라고 고백했다. 그런 다음 카를은 시몬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때 시몬은 어떻게 했을까? 시몬은 그에게 "용서"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시몬은 카를의 손을 뿌리치고, 임종실을 나왔다.  
 
책 표지그림
▲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책 표지그림
ⓒ 뜨인돌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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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강제노역으로 차출되어, 그곳에 다시금 도착한 시몬은 간호사로부터 카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몬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시몬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한 카를의 진정성, 카를이 느낀 양심의 가책을 의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몬은 카를의 참회와 자신의 침묵을 곱씹고 곱씹었다. 

선뜻 용서해주겠다는 말을 못해 카를에게 미안했던 것일까, 시몬은 악몽까지 꾸었다. 마음고생이 시작된 것이다. 시몬은 언제 갑자기 처형될지 모르는 강제수용소 동료 유대인들에게 카를의 참회와 자신의 침묵 사건을 이야기해주었고 그들의 의견도 들었지만, 확고하고도 올바르며 정의로운 결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세계대전 뒤 나치의 몰락... 생존자들의 노력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패배했고 나치는 몰락했다. 시몬은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카를의 참회와 시몬의 침묵 이야기를 들으며 의견을 함께 나눴던 시몬의 친구들은 전원 사망했다. 한 친구는 티푸스에 걸려 의식불명상태에서 숨을 거두었고, 또 다른 친구는 다리를 다친 뒤 독일군에게 발각돼 사살됐다. 몸이 아파 수용소 실내에서 쉬고 있던 친구도 독일군에게 들켜 처형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대인 생존자 시몬은 '미국 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일했고, 1946년에는 다른 생존자들과 힘을 합쳐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세웠다. 이 센터는 나치 전범들을 한 명 한 명 추적했다. 

이 센터의 활약으로 1100여 명가량의 나치 전범들이 적발, 체포되었다.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던 아돌프 아이히만도 센터의 끈기있는 추적을 통해 체포될 수 있었다. 그는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로 하여금 '악의 평범성'을 사유하게끔 만든 고위급 나치다. 
 
시몬은 말한다.

"나치들 중 오직 단 한 명만 카를 같았다. 그러나 그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나치 전범들은, 자신의 살인행위를 목격한 증인들이 (재수없게) 살아있어서 재판받게 되었다는 식으로 행동했다."   

시몬이 쓴 책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책은 매우 진지한 책이다. 책의 1부는 카를과 시몬의 만남을 회상하는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글로 채워져있다. 글 제목이 '해바라기'인 이유는, 군인묘지에 묘소 당 한 그루씩 해바라기가 심겨 자라는 걸 시몬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시몬은 묘지 하나마다 하나씩 피어있는 해바라기를바라보며 그 해바라기들이 저 군인들에게만 해당사항이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당시 유대인들 중 누구도 단 한 그루의 해바라기를 허락받은 이가 없다. 집단으로 구덩이에 파묻히거나, 버려졌거나, 불태워졌다. 

책의 2부는 53명에 달하는 각계각층 사람들이 '해바라기'의 마지막 문단에서 시몬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자기대로의 답변을 제시한 글들이다. 그러면, 시몬의 질문이란 무엇이었을까? 
 
어떤 사람은 내가 처한 딜레마에 공감하면서 내 행동이 정당했다고 두둔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참회를 했는데도 죽음의 순간까지 그를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결국 '용서'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156쪽)

'노태우 국가장' 논란을 보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정과 운구차량이 10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에 도착하고 있다. 2021.10.30
▲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사저 도착한 고인 영정과 운구차량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정과 운구차량이 10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에 도착하고 있다. 2021.10.30
ⓒ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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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말 광주항쟁 학살주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전 대통령이던 노태우씨가 사망했다. 국가장이 결정됐고 거행됐고, 결국 종료됐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의 죽음 앞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더러는 망자에 대하여 예우를 갖추자고 말했다. 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는 이들도 많았다(관련 기사: '노태우 국가장' 앞에서 엇갈리다).

책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서 시몬이 던진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오늘 대한민국의 우리에게 철저히 현재형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몬의 질문은 정성껏 답변되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대충 답변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 국가장을 해줄 건지 하지 않을 건지'와 같은 양자택일 형도 넘어서야 한다. 정답을 도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성껏 진지하게 답변하자는 것일 뿐이다. 

참고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 실린, 마치 쓴 이들이 자신들의 '심장'을 갈아넣은 듯한 53개의 응답 중 몇 가지를 예시해보겠다. 
 
기억하되, 용서하라/ 달라이 라마
문제는 '용서했어야 했는가'가 아니라 '용서할 수 있는가'이다/ 에바 플레이슈너
지혜로운 침묵, 정의를 뛰어넘는 연민/ 매튜 폭스
죽은 이들이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산 사람들 또한 그렇게 할 수 없다/ 마크 골든
부디 그를 용서할 수 있기를! 내가 아닌 하느님의 이름으로/ 시어도어 M. 히스버그
섣부른 용서는 악을 희석시킬 뿐/ 허버트 마르쿠제
값싼 은혜는 위험하지만 용서는 가치있는 행동이다/ 마틴 E. 마티
그 침묵은 희생자의 도덕적 승리였다/ 앙드레 스타인
 
책 2부의 필자들 53명 중 나치 전범이 한 명 끼어있다. 히틀러의 친구였으며, 전쟁 막바지에 군비장관을 맡았던 알베르트 슈페르다. 그는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20년형을 살았다. 특별사면 같은 것 없이 만기출소했다. 

슈페르는 시몬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시몬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시몬 비젠탈 씨, 부디 저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비록 제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416쪽

"적어도 당신을 만난 그날 이후에 제 짐은 좀 더 가벼워졌습니다. 하느님의 은혜가 당신을 통해 제게 베풀어진 까닭이겠지요." -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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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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