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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길1110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
 평등길1110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
ⓒ 월간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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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본격화된 지 14년째를 맞았다. 2007년 17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새로운 차별금지법안들이 발의되었으나 번번이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중도 철회되었다.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을 문제 삼고 나선 일부 기독교계의 압력에 국회와 정부가 굴복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을 필두로 4개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이번만큼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보자는 시민사회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2011년 발족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중심으로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매일 10시간씩 120개 집회를 이어간 온라인 농성, 30Km의 오체투지 등 시민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러나 국회가 요지부동이다.

6월 14일 성립한 국민동의청원은 국회법에 정해진 심사 기한(90일)을 넘길 동안 방치됐다. 국회는 11월 10일까지 심사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통지만 달랑 전했을 뿐이다. 이대로 해를 넘길 수는 없다는 절박감으로 부산시청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500km의 '평등길' 걷기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사무국장이다. 두 사람 모두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이다.

같은 길을 걷지만 길 위에 선 마음이 똑같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싸움에도 나만의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이종걸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혐오 선동에 막혀 무산되길 반복하는 과정을 14년간 낱낱이 지켜봤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마치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처럼 인식되는 상황도 겪었다.

막다른 길에서 또다시 길을 내기 위해 나설 때, 그의 마음은 복잡한 무늬를 그렸을 것이다. 왜 이 길을 걷는가. 뻔한 듯하지만 결코 뻔할 수 없는 질문을 쥐고 충청북도 옥천에 도착한 그를 만났다. 30일의 여정 중 딱 절반을 걸어온 날인 지난 10월 28일이었다.

"성소수자도 이 사회 시민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도보행진중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이종걸
 도보행진중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이종걸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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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소개되고 싶으세요?

"아무래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이종걸이겠죠. 제 활동의 근원지니까요." 

-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오래 해오시면서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실 때가 많으셨을 거 같아요. 그 말들도 변화해왔겠지요.

"그렇죠. 제가 처음부터 인권운동, 성소수자운동을 하려고 친구사이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거든요. 2003년 말에 친구사이에서 합창단을 만든다는 공고를 보고 들어왔어요. 인터넷으로 다른 나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게이 코러스를 많이 봤거든요.

나도 이런 노래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대학에서도 합창 동아리 활동을 했었거든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노래, 내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친구사이에 들어와 보니 회원들과 같이 문화콘텐츠를 만들거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무언가를 기획하고 활동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2년 만에 대표가 됐어요.

회원으로 활동할 때는 저를 닉네임으로 소개했죠.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닉네임을 쓰는 문화가 있는데, 실명을 드러내기 어려워서도 그랬겠지만 나를 좀 더 잘 드러내는 이름을 쓰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어요. 제가 <그렘린>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기즈모'를 닮아서 처음에는 '기즈모'라고 썼어요. 그러다 '기즈베'(계집애)로 바꿨어요. 제게 있는 여성성을 드러내 본 이름이었죠.

그런데 친구사이 대표로 외부 활동을 할 때는 그 이름을 쓰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계집아이라는 게 어린 여자를 낮춰 부르는 말이기도 한 거잖아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이 말이 쓰이는 맥락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명함에는 제 이름을 끝 자를 바꾼 '이종헌'이라는 이름을 함께 새겼죠.

2009년에 대표를 그만두고 상근간사를 맡으면서 친구사이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이제는 '이종걸'이라는 실명으로 나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 침해 사건들이 많이 드러났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2007년 말쯤 당시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이 '성적지향'을 포함한 7개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된 채로 발의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성소수자 혐오를 직면하면서, 성소수자도 이 사회 시민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졌어요."

- 자기를 드러내고 세상과 싸우는 과정이 자긍심을 주지만 쉽지 않잖아요. 활동한다는 건 혐오와 계속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맞아요. 그럴 때는 싸워야 하잖아요. 어떤 걸 정확하게 요구해야 되거나, 상대방에게 당신이 뭐가 문제인지 인식시켜줘야 해요. 참 어려워요. 저는 즐겁고 신나는 게 좋아요. 화내기보다는 이해하려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인권교육이나 간담회를 나가면 오신 분들과 제가 먼저 벽을 허물려고 해요. 당사자를 만났을 때 궁금한 거 있으면 두려워 말고 이야기하시라고 하면, 경계가 조금 풀어지시면서 정말 궁금하셨던 걸 물어보세요. 혐오의 시선이 있는 분이라도 솔직하게 말을 나눠보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죠.

활동하면서 정말 어려울 때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권한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예요. 구청장, 시장,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답답한 소리를 할 때는 너무 짜증 나죠. 그런 사람들은 우리를 그런 공식 석상에서 만나주지 않아요. 꼭 비공개로 만나려고 해요. 눈치를 보는 거죠. 너무 화가 나지만, 그렇게라도 만나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어요."

"도대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왜 문제인가"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에서 준비한 등배너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에서 준비한 등배너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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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죠. 2011년 11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할 때,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의 차별 금지 조항이 삭제될 위기에 처한 일이 있어요. 인권활동가, 청소년활동가들이 서울시의회를 6일간 점거하고 농성해서 다행히 원안에 가깝게 통과됐죠.

2014년에는 서울시민 인권 헌장 제정을 놓고 또 같은 문제가 불거졌어요. 당시 제정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고 박원순 시장이 단지 만장일치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제정 포기를 선언했거든요. 그러고는 보수 기독교 단체 대표들과 만나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발언했어요. 그러니 저희는 분노스러웠던 거예요.

12월 5일부터 시청 로비를 6일간 점거하고 '무지개농성'을 했어요. 농성 끝에 시장의 면담과 사과를 끌어내긴 했지만 그때도 비공개로 자리가 만들어졌어요. 그때 좀 더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어요."

- 그런 싸움을 계속해온 힘이 뭘까요?

"투쟁을 하려면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드러내 싸우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성소수자 운동이 함께 하는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을 2008년에 결성했어요. 저도 그들과 함께 성장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학생인권조례나 서울시 인권 헌장 같은 경우 저희가 주도했던 운동이라기보다는 인권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슈였거든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성소수자들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싸움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 지역에서 인권 기본조례뿐만 아니라 성평등조례, 문화다양성조례 등에 보면 다 차별금지 원칙이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걸 차별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동성애 옹호'니 '동성애를 조장한다'라는 식으로 문제 삼으며 계속 왜곡된 싸움을 만들어버리거든요. 우리 사회가 차별금지 원칙들을 제대로 세울 기회를 자꾸 무너뜨리고 있어요. 꼭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라 무슬림, 난민, 이주민, 여성, 장애인 등등 다양한 혐오들이 서로 연결돼요.

어떤 존재를 부정하거나 모욕 주는 걸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예요. 저는 더 이상 볼 수 없어요.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되지 않나요? 그러려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힘을 내서 같이 싸워야 하죠. 사람들에게 같이 싸우자고 이야기하려면, 우리(성소수자)부터 더 힘을 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왜 우리가 나서야 하는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질문일 거 같아요.

"네. 그래서 무지개행동 안에서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어요. 그러니 이건 저의 고민이라고 이야기해야겠죠. 14년 동안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 못 하는 이유가 뭘까 수없이 생각해봤어요. '성적 지향'이 문제로 지목되는 이 국면을 뚫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해 보여요. 그게 가장 큰 문제인지도 따져봐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도대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왜 문제인가? 그러려면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회적 인정을 막는 세력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어요. 성소수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대표 시민으로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이제는 들어요."

"수도권으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
 
물집이 잡히지 않기 위한 발가락양말과 무지개깃발
 물집이 잡히지 않기 위한 발가락양말과 무지개깃발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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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로 평등길을 걸은 지 보름째네요. 걸어오시면서 어떠셨어요?

"걷기 직전까지 많이 긴장했어요. 우선 신체적으로 내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걱정됐죠. 출발하기 3~4일 전에 도보행진 경로를 차량으로 미리 답사했거든요. 아, 이 길을 이제 걸어야 되는구나. 그때부터 실감이 나는 거예요. 차로 이동해도 한참인데. 인도가 없어서 갓길로 이동하기도 하고 고개를 넘기도 하잖아요.

또 하나의 부담은 '말'이었어요. 함께 걸으러 오는 사람들한테 무슨 말로 어떻게 싸우자고 이야기를 해야 될까. 제가 막 멋지게 발언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웃음). 내가 왜 싸우고자 하는지, 그 이유가 나한테도 선명한가. 고민 많이 했어요.

첫날은 18km 정도 걸었는데 괜찮았어요. 그다음 날 27km를 걸었어요. 골반 쪽이 조금 아픈 거예요. 과연 걸을 수 있을까 두려웠는데, 한 2~3일 지나니 괜찮아졌어요. 몸은 좀 적응하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을 어떻게 채울까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 매일 함께 걷는 분들이 달라지죠. 어떤 분들을 만나셨어요?

"도보 행진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많이 오시더라고요. 자기 싸움을 하시는 분들이요. 김진숙 지도위원도 그렇고, 지금 내내 함께 걷는 차해도 동지도 한진중공업과 싸워왔던 분이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분들이 '소금 꽃 찾아 천리 길' 행진하신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때는 하루에 50km씩 걸어가셨대요. 아! 우리는 뭐지 이런 생각 들고(웃음).

코로나 확산 때 의료공백으로 사망한 정유엽 학생의 아버님도 같이 걸어주셨거든요. 올해 그분들이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행진하셨을 때 저는 가지 못했는데. 그렇게 싸움을 만들어왔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구나를 느꼈죠. 그 싸움을 잘 이어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느끼시는 분들도 같이 해주세요. 경산에서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시는 분께서 전동휠체어 타고 함께해주셨고, 어떤 분은 고등학생이셨는데 성소수자 친구가 있다며 함께하러 오셨더라고요. 같이 싸우고자 하는 분들이 걸어주시니까 저도 더 힘이 났어요."
   
- 기대하게 될 거 같아요. 어느 길에서 또 어떤 분들이 나타나실까(웃음).

"네, 맞아요(웃음). 저희가 11월 10일에 국회에 도착하는 게 목표인데, 수도권으로 다가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냥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열망하며 어떤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지 가시화되면 좋겠죠."

-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을 오래 지켜보셨는데, 그 사이 우리 사회가 좀 달라진 게 있는 것 같으세요?

"차별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확장되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았던 현실이 드러나니까요. 코로나19 상황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더 잘 인식하게 해 준 것처럼요. 차별에 대해 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뚜렷한 변화 같아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 인종차별, 장애라든가 몸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거든요. 그래서 그에 대한 백래시가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백래시에 대항할 언어들이 아직은 많이 만들어지지 못했어요. 그 언어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은 차별하는 사람을 솎아내는 법이 아니라, 무엇이 차별인지 우리 사회가 논의하게 만드는 법이거든요."

용기는 사람들 안에서 생겨난다
 
왼쪽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 오른쪽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
 왼쪽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 오른쪽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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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은 평등길을 걷는 동안 매일 새로운 노래를 골라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린다. 그는 말보다 노래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편한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전부터 이종걸은 노래에 빠졌다. 부모님과는 <가요무대>를 빼놓지 않고 봤고, 6살 터울의 누나로부터 최신의 팝음악을 전해 들었다.

라디오 피디를 꿈꿨던 소년은 커서 차별과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싸움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던 터라 그 자신도 놀랄 변화였다. 종횡무진인 음악 취향처럼 그는 넓고 종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를 살아간다. 인터뷰 다음 날, 이종걸은 절반 남은 길의 첫발을 내딛으며 SNS 계정에 긴 글을 남겼다. 나는 왜 걷는가, 나는 왜 싸우는가에 대한 글이었다. 그중 일부를 옮긴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 보면 정말 크게 성질을 내고 욕하고 싸우는 때가 있다.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마지막 날, 운동장 조회가 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내가 여성스럽고 여자친구들과 노는 것을 놀리고 괴롭히던 2명의 남자친구들이 있었는데, 이 둘이 나를 또 놀려댔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내가 이전에 한 적이 없던 화를 그들에게 냈다. 주먹다짐하려고 온 힘을 다해 분노를 터뜨렸다. 다행히 그때 가장 친한 친구가 내 몸을 잡았고, 그 두 친구는 화를 낸 나에게 너무 놀랐는지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내가 분노를 터뜨리기 전에 가졌던 마음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것, 내가 왜 이런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내가 나답게 살고 싶은데 도대체 남자다운 것이 무엇인지, 왜 나를 그렇게 놀리는 것인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
     
이종걸은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생각들을 풀어 싸우기에 딱 좋은 옷을 엮어냈다. 분노할 용기 말이다. 그는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이 법이 도대체 뭐라고 14년 동안 국회는 제정도 하지 않으면서 눈치 보고 핑계 대고 밖에서 잘 싸우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가 온 힘을 다해 터트린 분노만큼, 그의 몸을 잡아준 친구의 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분노는 싸움의 동력이지만, 때로는 분노하는 자를 집어삼킨다. 그러니 절대 혼자 싸워서는 안 된다. 서로를 잡아주는 손이 되어 함께 싸워야 한다. 용기는 사람들 안에서 생겨난다.

이종걸은 길 위에서 그것을 선명히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 길 바깥의 '우리'가 생각하고 움직일 때다. 우리에게서 온 것이 아닌 저주의 말들에 절망하지 말고, 서로를 붙잡아주며 제대로 싸워보자. 이것이 끝일지, 이 뒤에 무엇이 올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힘껏 나아간 만큼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평등길은 11월 10일 국회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박희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기록활동가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평등길1110, #연내제정,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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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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