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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9년 어느 민간 기업의 계약직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나는 2019년 어느 민간 기업의 계약직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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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연구소 계약직 연구원 모집하오니 유능한 인재의 지원을 바랍니다.'
'OO 국책연구원에서 위촉 연구원을 모집합니다. 계약 기간은 3개월이며 추가 연장은 불가능합니다.'


이른바 고학력 연구자 네트워크라고 하는 커뮤니티에는 온갖 석·박사급 연구원 채용 공고가 올라온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불황이 무색할 만큼 매일 쌓여가는 연구원 모집 공고들.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씩 열어보면 '계약직/기간제/위촉/프로젝트'라는 용어가 빠지질 않고, 일부 친절한 인사 담당자들은 '정규직 전환 불가능'이란 지침을 덧붙여 ('혹여 정규직 전환?'과 같은) 지원자의 '설레발'을 사전 차단해준다.

'뭔 석사 연구원은 죄다 비정규직이냐'며 푹 꺼뜨린 한숨은 예나 지금이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데, 나는 혹여라도 이 한숨이 청년기의 일시적인 날숨이 아닌 평생의 자신을 규정하는 단념적 습관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번뇌할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덴 이유가 있다. 내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2019년, 거스를 수 없는 불안의 늪을 표류하던 나는 어느 민간 기업의 계약직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왜 정규직을 포기하고 계약직에 입사했어요? 나라면 정규직 갔을 텐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회사의 한 동료가 내게 물었다. 최종 합격 소식을 주변에 전했을 때, 이미 지인들로부터 유사한 질문 세례를 받았던 터라 나의 답변은 제법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다.

"원래 석사급 연구원은 공공, 민간 할 것 없이 대개 계약직이더라고요. 일을 하다 보면 또 좋은 기회가 오겠죠."

막 입사한 회사에서까지 이런 해명을 해야 하는 것이 멋쩍었지만, 다만 나의 첫 마음은 순전히 희망으로 빛나고 있어서 '1년 후 평가에 따라 1년 추가 연장 가능'이라는 모호한 조건 속에서도 성실히 임하면 자연히 더 나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졌다. 그때는 몰랐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계약 종료 후의 거취를 정하기 위해 매일 채용 사이트를 들락거리게 될 줄은.

'연구원님'이라는 그 말 

연구가 주가 아닌 기업에서, 그것도 정규직이 대부분인 부서에서, 연구를 위해 계약직에 입사한다는 것은 연구에 '목숨 건' 돈키호테의 허황된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기대를 하며, 수천 번 무너져내리는 감정을 일으켜가며 애쓰고 분투했다.

열심히 논문을 읽고, 조사를 기획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유관 기관과 업무를 조율했다. '우연 안에서의 필연'을 말하는 칸트의 소명 아래 제 몸뚱이를 조금 더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분골쇄신했다.

치열한 한 달을 보내고 세후 180만 원 남짓의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왜인지 감정이 복받쳐 올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싶었고, 정규직 동료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같은 보고서를 쓰고, 여기에 별도의 연구 업무까지 추가되어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는 날이면 나는 그렇게도 야근이 하기 싫었다.

회사에서 나를 부르는 '연구원님'이라는 호칭은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또래 동료부터 나이 지긋한 임원급 상사까지 하나 같이 '연구원님'이라는 존칭을 쓰셨는데, 그러나 존중 섞인 정중함이 내게는 관계의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호칭으로 대우받는데 웬 배부른 소리냐는 핀잔을 들을지 모르겠다만, 또래 정규직 사원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친근한 반말이 쓰이는 업무 분위기에서 유독 나를 부를 때만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연구원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그들의 깍듯함이 여간 익숙해지지 않았다.

선량하고 악의 없는 존칭이 고요한 폭력으로 다가왔던 것은 '나도 당신들과 같은 존재이고 싶다'는 애끓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시간 지나면 익숙해지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는 계약 종료 날까지도 내게 '다름의 표상'에 지나지 않았다.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과 불안을 자아내고, 패자에게는 분노를 자아낸다'고 지적했다. 대학시절 내내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에서 표창장과 정부부처 장관상을 수상하며 연구로 외길을 걸을 줄 알았던 '승자'에서, 동료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업무로도 처우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패자'로 스스로를 위치 짓는 동안, 나는 승자의 오만·불안과 패자의 분노 모두를 내면에 싹틔웠다.

능력주의를 가르는 경계를 수없이 오가며 '이런 대우 받으려고 공부했나'란 한탄을 내면화하는 동안, 나는 기이하게 커진 자의식과 병리적인 완벽주의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괴상하게 뒤섞인 과잉적 자아를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잡념들은 '모든 것은 나의 무능 탓'이라는 유일한 결론에 이르고 나서야 잦아들었으며, 이후에는 '자기착취(한병철, <피로사회>)'적 사고에 몰입하며 재기불능의 실패자라는 프레임으로 스스로를 낙담시키는 것 외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쓸모와 무쓸모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매몰차게 스러졌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매몰차게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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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종료를 며칠 앞두고 부서의 여러 동료들은 '퇴사하고 무엇을 할지'를 물었고, 나는 '본가에 내려가서 당분간 쉬려고 한다'고 답하며 과장된 미소를 내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은 채 내면을 표류하는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마부작침의 노력은 '계약 기간인 2년을 단 하루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인사 원칙과 함께 매몰차게 스러졌다.

쓸모 있는 것. 마더 테레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소감에서 이탈리아 아씨시(Assisi)의 성자 프란시스코의 기도문을 인용했다. '주여, 저를 오직 당신의 도구로 쓰이게 해주소서.' 이는 오늘날까지 회자되며, 많은 이들로 하여금 오직 세상의 쓰임 있는 사람이 될 것을 강다짐하게 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시대 정신이 되어버린 작금의 사회에서 쓸모의 반대편에는 무쓸모가 황량하고도 확고하게 자리한다는 것을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고용의 불안정성이 청년기 개개인의 외현적 자존감을 평생에 걸쳐 훼손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승자가 고하는 선량한 언어가 패자의 귓가에 닿을 때 솟구치는 설움을 추동한다는 것을 가늠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원 석사 졸업자는 어떤 위치일까. 지난해 대학원 석사 학위취득자는 8만3046명(2020년 기준)이며, 취업에 성공한 석사 학위자의 비율은 52.4%(2018년 기준)에 그쳤다. 자연공학계열 전공자를 제외한 나머지 석사 학위취득자의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69.3%, 비정규직이 30.7%(2017년 기준, 송창용·김혜정·윤혜준·이지은, '석사조사(2018) : 국내석사학위취득자 실태조사', 한국직업능력개발원)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왔다. 국무조정실 산하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 연구기관 가운데 일부에서도 고용형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기관은 여전히 계약직, 위촉직, 프로젝트직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연구원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민간기업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매일 쌓여가는 연구원 채용 공고는 변화를 체감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엄격한 예외주의의 영역에 위치해 있는 듯하다.

정부가 머뭇거리는 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제적, 사회적, 감정적 간극이 '1과 0' 혹은 '승자와 패자' 혹은 '쓸모와 무쓸모'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로 해석되는 현재의 양상은 소리 없이 가속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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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엘이여, 삶은 목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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