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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중등교육의 주요 주제는 2가지라 할 수 있다.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 그리고 지금 개정 시안이 다듬어지고 있는 2022 교육과정이다.

그런데 교육과정의 변화는 평가제도의 변경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존 수능을 전과목 절대평가 혹은 논서술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입시가 수시전형에 비해 정시전형 비중이 낮아도 평가장치로서의 수능시험은 여전히 강력하게 고3 교실을 적막하고 비장한 결전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의 수능시험은 흔히 말하는 '킬러문항'이라고 지칭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악명높다. 고부담시험으로서 세계적으로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이 문항들은 교과영역 곳곳에서 마치 땅에 묻혀있는 지뢰(地雷)처럼 수험생의 당락은 물론 심지어 실제 죽음까지도 결정한다.

메리토크라시 :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불평등을 은폐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는 사회경제적 지위분배가 재능에 객관적인 시험성적에 의해 이뤄질 때 가장 '공정' 하다는 통념에 기반한다. 이 때 재능(능력)의 객관적 지표로는 시험성적이 가장 선호된다.

능력(성적)에 따른 입학과 채용이 가장 공정하다는 생각이 지금도 우리의 지배적인 관념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전에 문재인 대통령도 대입 정시모집 비율을 40% 이상으로 올리라고 주문해 교육자들을 놀라게 한 것도 결국은 메리토크라시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최근에 '88만원 세대'의 작가로 알려진 박권일이 '한국의 능력주의'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책을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참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보고서"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2021년 10월 1일자 한겨레신문에서는 책 리뷰 기사에서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참는 K-능력주의"라고 했다.

여기서는 2018년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지에 실린 글을 발췌, 소개하면서 한국사회가 불공정을 너머 불평등에 주목하기를 희구해 본다. 이 연구지의 글쓴이는 캐나다 터론토 대학 소속 라첼 굿맨(박사후 연구원), 사라 카플란(교수, 전임 맥킨지 자문관)이다.

 인도의 사례 

메리토크라시는 개발도상국에서 더욱 선호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때문에서 시험성적에 기대하는 정도도 강력하다. 인도에서 1993년에서 2012년 사이의 작업장내 여성의 비율이 11.4%로 떨어졌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도정부는 교육적으로 학업기회를 고르게 주려고 했다. 하지만 교육기회만 준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오지의 아이들과 대도시 지역간 교육환경의 차이로 인해 이미 교육결과의 차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메리토크라시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여학생들이 대학입학과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성적에서 차별받게 된다는 사실도 간과하게 만든다. 메리토크라시가 암기식 학습과 시험위주의 대학입학 시스템을 선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암기식과 다른 환경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암기식 공부와 시험이 상상력, 비판력 및 종합적 사고력을 함양하기 어렵게 한다는 것은 오랜 상식이다. 한국에서 학문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학생들의 성적이란 그 학생들 자체의 재능(merit.암기력, 단편적인 응용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앞서서 그들이 접해 온 문화적 자원에 대한 접근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높은 교과성적이 높은 지위를 보장한다고 믿어지는 메리토크라시는 인도 전역에 걸쳐 사립학교의 증가 그리고 사교육 열풍을 몰고 왔다. 사회경제적 특권층 및 고학력 소유의 부모를 둔 자녀들은 고액과외, 시험준비 사교육, 속성 영어과외, 여기에 더한 추수지도 등의 혜택을 받으면서 대학입학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낸다.  

메리토크라시는 계층간 화합을 방해하고 그 격차를 벌이는 역기능을 한다. 2006년 인도 정부가 소외받는 하위계층 카스트(marginal caste groups) 출신의 자녀에 대해 계층할당제로 국공립대학 입학을 허용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에 인도전역에 걸쳐 의과대 학생과 교수들이 거리시위를 벌이며 반대했다.  

그 이유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면서 환자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계층할당제에 의한 입학정원은 고득점 성적을 받은 학생들의 몫이며, 이들이 의사가 되어야 의료행위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시위대들의 주장이었다.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인 대학생들은 높은 입시성적은 높은 지능(intelligence) 즉 자신들의 재능의 징표라고 주장했다.  

이 중상위층 자녀들은 이른바 시험성적이 객관적이라고 믿으면서 돈, 인적(人的) 커넥션, 부모의 개입이 자신들의 고득점 입학성적을 낸 원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한국에서 일전에 있었던 의대생 및 의사들의 주장과 어쩌면 이렇게 빼닮아 있을까? 

메리토크라시의 모습은 정도를 달리해서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메리토크라시의 맨트라(mantra. 불교용어로서 기도나 주문을 의미함)는 진행중인 불평등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계층 자녀의 낮은 성적이 자신들의 탓이라고 여겨진다. 미국에서는 성차별적 요인은 적어서 여성이 학사 학위를 더 많이 받고 있으나 엘리트 대학의 여학생 비율이 높지 않다. 이는 노동시장의 제도화된 성차별로 연장될 수 있다.

 중국의 사례 

중국도 인도처럼 대학입학 전국단위 시험인 '가오카오'가 있다. 그런데 역시 시골지역, 이주자, 장애학생들은 도심 학생들에 비해 열악한 교육적 환경에 놓여있고 당연히 성적이 낮다. 뻬이징 출신 학생들의 최상위권 대학입학률은 가난한 시골지역 학생들에 비해 41배나 높다. 

시골지역에 사는 여학생은 더욱 불리하다. 이들의 고교 졸업률이 남학생에 비해 떨어지고 당연히 대학입학이 낮을 수밖에 없다. 중국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교제도라는 것이 메리토크라시에 의해 기능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교육격차라는 것이 '차별화된 기회(differential access)'가 아닌 '차별화된 능력(differential ability)'의 결과라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차가 공정하다는 피상적 인식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안 : 취약계층에 대해 고등교육 기회를 대폭 확대하기 

그러면 이런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메리토크라시를 벗어나야 할 이유가 될까? 그것은 아니다.  순수한 형태로 메리토크라시는 하나의 이상(理想)으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메리토크라시가 현실에서는 엘리트 계층의 특권을 고착화(entrench)시키고 있다는 것, 그래서 재능에 의지하지만 실제로는 재능계발을 훼방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첫째, 계층별, 성별로 고르게 공교육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질적으로도 고르게 해야 한다. 즉 교육적 환경이 지역별, 계층별로 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일례로, 정부가 교사지망생 중 취약한 계층적 환경(underserved communities)출신에서 더 많이 선발하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이들이 각종 차별에 민감하고 이해력이 앞서서 그 격차를 해소하는데 남다른 열정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방법은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취약한 토착민들의 교육적 성취를 이루는데 의미있는 결과를 내곤 했다. 또 정부는 지역 NGO단체들과 협업하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교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둘째, 대학입시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를 높이는 방안이다. 고부담 입학시험(표준화된 전국단위 시험)은 어느 한 계층의 삶의 경험이 너무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도록 문제를 출제하려고 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아 여전히 취약계층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벌써 미국의 일부 대학은 입시에서 시험성적(교과성적)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곳이 있었다. 2018년 기준으로 당시에, 비교과활동이 포함된 고교 내신성적(highschool grades)이 표준화된 시험성적(standardized Test scores)보다 성공적인 대학생활을 더 잘 예측한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는 코로나 19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된 현실을 감안해서 더욱 더 시험을 선택사항(test optional)으로 제쳐놓고 있다. 특히 UC계열 캘리포니아 대학이 그러하다.  

교과시험(exams)을 통한 정시전형은, 성적을 통해 다른 수험들과 쉽게 비교할 수 있어 일단 선발의 공정성을 쉽게 확보한다. 반면 내신을 포함한 전인적 평가(수시 입학사정관 전형)은 다양한 기준(multiple criteria)을 갖고 성취역량(excellence)을 측정하기 때문에 학생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육성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앞선다.  

시험성적의 차이는 교육 및 문화적 환경에 얼마나 잘 노출되었는가의 계층적 차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교과성적에 과도하게 기대하면 교육불평등, 나아가 계층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에 비해 전인적 평가는 미국과 한국의 이른바 최순실, 조국사태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일부 엘리트 부모들에 의해 조작가능성이 있지만 학생이 지닌 저마다의 능력(different advantage)을 폭넓게 설명, 격려하는 기능을 한다(Rachael Goodman & Sarah Kaplan, 2018.1.4.The Mantra of Meritocracy,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이제 불공정 너머에 자리한 불평등에 주목할 때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 따라 2022 교육과정의 핵심가치인 '4차 산업혁명 대비 역량계발'과 '교육과정 구성의 지역화 및 자율화'가 실현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정치적 구호에 그칠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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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썼으며 오마이뉴스에도 종종 기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부 교육과정 심의위 참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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