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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가 약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을 준비하는 지금, 국민들은 여전히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선택의 기준이 공고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을 뽑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털어서 먼지가 적게 나는 사람이 올바른 정치인일까? 혹은 나의 심기를 덜 건드린 사람이 좋은 정치인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올바른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과 정부의 '정책' 간의 상호관계를 바라보면 된다. 나의 이익을 증진시켜 줄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은 어디인가? 내 가족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최대로 보장해 줄 이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선거 이전에 각 정당의 주요 정책들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우리의 머릿속은 온통 후보자들의 가정사와 가십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사람들이 이 자극적인 가십들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분노와 묘한 흥분감을 함께 느낀다.

우리는 정치 후보 간의 대결을 지켜보며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내 편을 응원하고 상대편을 야유하면서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볼 때와 같이 흥분한다. 이처럼 격렬한 정치판은 거친 싸움이 격돌하는 투기(鬪技)장을 연상시킨다.

루마니아의 저명한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86)는 종교학이 하나의 학문 분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성과 속(Sacred and Profane)>, <신화와 현실(Myth and Reality)>, <종교 관념의 역사1,2(A History of Religious Ideas)> 등을 집필하며 하나하나의 개별 종교 연구를 넘어 보편적인 종교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해명코자 했다. 따라서 그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인 우리가 이 사회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를 설명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엘리아데는 프랑스의 기자였던 클로드-앙리 로크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아즈텍족(14-16세기 무렵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도 사람을 죽이는 의례를 했고 나치들(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파시즘 정당)도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살인이라는 면에서 똑같다면,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엘리아데는 나치가 강제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것도 종교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들은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나누어, 나치는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며 악마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시 신앙이 세계를 선악의 싸움으로 설명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나치에게 '악'은 유대인과 집시 등의 타인종,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반면에 순수한 아리안의 피를 이은 게르만족은 '선'이었기에 그들의 열광적 폭력과 인종주의는 무고한 시체들 위에서도 죄의식을 안겨주지 않은 것이다. 나치에게 전쟁과 홀로코스트는 '선악의 싸움'이자 '정당한 종교적 의례의 집행'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집단 차원으로 행동할 때 맹목적 열의에 휩싸이게 된다. 나와 내 편은 '선'인 반면, 상대편은 '악'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의 대립 속에서 누군가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나의 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현실은 신앙과 신앙, 의례와 의례가 대결하는 투기장과 같다.

현실은 우리의 확신과 달리 합리적이기보다는 맹목적이며 다원화되어 있지 않고 이원론적이다. 그러나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이러한 승리와 패배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당의 세력다툼과 그에 선동되는 대중은 투기장의 선수와 관중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관중은 이제 그 경기장을 빠져나와 가십의 도가니에 거리를 두고 선수의 약력과 자신의 처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떠한 후보가 자신이 입고 있는 누더기를 근사한 외투로 바꿔줄 적임자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 미르치아 엘리아데 저, 이은봉 역, 『신화와 현실』, 한길사, 2020.


태그:#대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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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하고 '사람'에 관심이 많은 새내기 인문학도입니다. 비합리를 통해 합리를 뒷받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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