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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평민당은 분주했다.

곧 선거체제를 갖추었다. 김대중 후보의 일정은 더욱 바쁘게 진행되었다. 창당준비위원회가 열린 10월 30일 오후에는 중견 언론인 그룹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했다.

"4명의 후보 중 김대중 후보가 첫 주자로 토론에 참가하게 되었고, 노태우 후보에게는 사전에 질의 내용을 귀띔해주는 등 불공정하고 악의적인 토론과정이었지만, 김대중 후보는 차분하고 일관되게, 또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4후보 사이의 차별성을 명백히 했다."(주석 1)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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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론회에서 특이했던 일은 패널로 나온 김대중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악의적인 질문이었다.

"1973년 2월 김위원장께서 미국에 망명하여 있을 때, 유신치하에서 그때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어페어스(Affairs) 난의 김대중 명의의 글에서는 분명히 한국에 정치적인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 군사원조의 중단까지를 고려해서, 그런 문제가 분명히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기록을 위해 말씀드립니다." (주석 2)라고 따졌다. 

김대중은 이같은 질문을 받고,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답했다. 그렇지만 다음날부터 언론에서는 이 문제가 대서특필되고, 김대중이 마치 국익을 해치는 글을 쓴 것처럼 비난하였다. 반대 정파에서는 '매국노'라고 매도하였다.

선거 종반에 김대중 진영에서 <뉴욕타임즈>의 기고문 원본을 복사해와서 허위사실이었음이 드러났음에도 사과나 정정보도에는 인색하고, 보수언론에서는 4명의 후보중에서 유독 평민당 후보를 찍어서 비판적 기사ㆍ논평으로 일관했다. 당기관지 <평민신문>이 이를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했으나 그들의 물량공세(발행부수)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선후보로 지명된 이후 김대중 후보의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다.

△ 11월 13일 - 국립묘지, 4.19묘역 참배, 전태일 17주기 맞아 유족 위로, 평화시장과 봉천시장 방문, 광주에 측근 보내 김영삼후보 유세 때 불상사 생기지 않도록 협조 요청.
△ 11월 17일 - <뉴욕타임즈>에 공명선거 위해 초당내각구성 필요성 기고.
△ 11월 18일 - 군산공설운동장에서 선거 연설.
△ 11월 21일 - 경기도 광명시 공설운동장에서 연설, 인천대 체육관에서 '노동운동 탄압규탄 및 노동정책토론회' 연설.
△ 11월 24일 - 충남대천ㆍ공주ㆍ논산 연설.
△ 11월 25일 - 경기 일원과 서울 중랑천 고수부지 연설.
△ 11월 26일 - 경기구리ㆍ춘천 연설.
△ 11월 29일 - 서울 여의도 광장 연설.
△ 11월 30일 - 제주지역 연설.
△ 12월  1일 -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방문, 외신클럽 4당후보 초청 인터뷰, 개신교 범교단 장로합동만찬 기도회 참석.
△ 12월  2일 - 강원도 동부지역 순회 연설. KBS 1 TV에서 "16년만에 여러분 앞에" 란 제목의 연설 방영.
△ 12월  3일 - KBS 1 TV에서 "독재는 짧지만 민족은 영원하다" 는 제목의 연설 방영.
△ 12월  4일 - 원주 유세, 충청지역으로 이동, 조치원 연설.
△ 12월  6일 - 마산ㆍ울산ㆍ경주역 연설.
△ 12월  7일 - 경남의 김해ㆍ진주ㆍ하동, 전남의 구례ㆍ곡성ㆍ순창ㆍ남원ㆍ장성 등 10곳에서 연설.
△ 12월  8일 - 인천ㆍ부천ㆍ구로공단지역 연설.
△ 12월  9일 - 충북 영동을 거쳐 전북 부안, 전남 영광 등 연설.
△ 12월 10일 - 전남 해남ㆍ강진ㆍ장흥ㆍ고흥 등 연설, MBC TV에서 "안정속의 개혁, 개혁 있는 안정" 제목의 연설 방영.
△ 12월 11일 - 자택에서 백기완 후보와 회담, 후보 단일화 결렬.
△ 12월 12일 - 경북 김천ㆍ상주, 충남 대전 연설.
△ 12월 13일 - 서울 보라매공원 대집회.
△ 12월 14일 - 경기지역 순회 연설.
△ 12월 15일 - 통일민주당측의 "김대중후보 사퇴가능성" 등의 통일민주당 당보 호외와 또다른 유인물에 대한 기자회견.

김대중 후보는 대선기간 중 11월 29일 서울 여의도 광장의 유세와 12월 13일 보라매공원 유세는 우리나라 선거운동사상 초유의 인파가 모여든 기록을 세웠다. 여의도 광장 유세는 4명의 후보진영에서 각각 당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청중동원에 열을 올리고, 유권자들에게는 참가 숫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어느 후보가 가장 많은 청중을 끌어모으느냐에 따라 대세를 판가름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주석
1> 김학민 엮음, <김대중연설문집, 평화를 위하여> ,115쪽, 학민사.
2> 앞의 책, 123 ~12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평화민주당연구, #평화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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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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