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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나는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었다. 그 당시에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제자 P를 떠올렸었다. P는 인문계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가지고도 가정형편을 고려해 스스로 특성화고 진학을 결정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하며 고등 영어, 고등 수학을 공부하는 또래의 친구들 곁에서 나와 같이 영어 면접을 준비하던 그 아이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뉴스에서 특성화고 아이들이 현장실습에 파견되었다 겪는 갖가지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P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알지 못하던 아이들의 죽음을 내가 알고 있던 아이에 투영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른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21년 현재, 나는 또다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 실습 중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전말을 알고 난 후 나는 암담했다. 고 홍정운 군은 요트 관광객 안내 업무를 배우러 갔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에게 주어진 실습 내용은 요트 바닥에 붙은 해조류와 조개류 등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잠수 자격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12Kg짜리 납벨트를 차고 바다에 들어가야만 했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 등을 쓴 이슬아 작가의 아버지도 잠수부였다. 그녀의 책에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읽으며 잠수부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는 국내 작업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작업했던 베테랑 잠수부이다. 그러한 그도 산소가 떨어져 납벨트를 풀고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든다고 했었다. 몇 십 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잠수부에게도 생기는 두려움은 고등학교 3학년 소년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커질까.

참는 법만 배웠던 아이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책 표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책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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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럼 회사를 가지 말라, 학교를 가지 말아라, 선뜻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존재하는가. 나도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 "쓰러져도 회사 가서 쓰러져라." 우리 세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다. 힘들어도 참는 게 인생이라고, 가기 싫다고 안 가면 인생 낙오자가 된다고 들었다. 근면한 신체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었다.
 
아마도 현장실습은 성적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도 바른 학생들이 파견될 것이다. 제자 P처럼 미래를 꿈꾸며 현장 실습에 임할 것이다. 냉혹한 사회는 그들에게 실습이라는 경험은 뒤로 미뤄두고 책임을 요구한다.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안전 장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들은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만둔다'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참으라고 배웠으니까.

4년 전 제주 생수업체의 실습생 고 이민호 군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19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청년이 있다. 고인은 고졸 청년인턴 자격으로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공사에 입사했고 입사 반년 만인 그해 12월 정직원으로 전환되었다.

취업준비생들이 그토록 원하던 공기업의 정직원 자격을 얻게 된 A군의 앞날은 꽃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도 특성화고의 다른 실습생처럼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되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특성화고에도 공무원, 공사 시험 대비반이 있다. 나름 학교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이 그 시험에 도전한다. 3년 전 제자 Y에 의해 이런 전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까지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Y는 영어가 제일 어렵다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먼저 합격한 선배의 조언에 따라 태어나 최고의 노력을 그 시험 준비에 쏟아부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Y가 합격하면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 일거라고 생각했다.

2019년 전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을 때와 2021년 같은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된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란 곧 전부 수능을 치는 예비 수험생으로 여기는 식이다. 비진학, 탈학교 아이들은 배제되고 특성화고 아이들은 고려되지 못한다.
 
의무 교육 과정을 마치고 당연히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갖는 것. 나는 이 길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었다. 나 역시 20년 이상 사회생활을 해보고 다른 길을 찾아가는 제자들을 보면서 내 틀에 갇혀있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그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 (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은이), 임진실 (사진), 돌베개(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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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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