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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이도훈 이사장에 관한 글을 준비하는데 그가 대산농촌재단의 농촌발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농업계의 큰 상을 받은 사람을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잠시 망설였으나, 서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원래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대산농촌재단이 밝힌 선정 배경에 따르면 "농촌발전 부문 이도훈 수상자는 유기농업 기술 보급과 전파로 지역 친환경농업 확산을 이끌고, 농업인들이 상호 협력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틀을 마련하는 동시에 지역 내 27개 단체의 참여를 이끌어 농업과 먹을거리 선순환 체계 구축에 이바지했다".

이는 그의 공적인데, 나는 그가 공적을 쌓아온 배경과 삶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이 칼럼에서 소개한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에서 I턴(고향이 아닌 농촌으로 들어간 사람)하거나 U턴(고향 시골로 돌아온 사람)한 사람들이지만, 이도훈 이사장의 이력은 매우 특이하다.

조금은 남다른 인생역정

우선 그의 살아온 얘기를 간단히 들어보자.

"고향마을(괴산군 감물면 오성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나 8남매(7형제)의 막내로 중학교를 갈 형편이 못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형님과 자취를 하면서 2년간 아이스케이크 장사, 구두닦이 등 갖은 고생을 했다. 고향에 돌아와 이웃 마을 불정면의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다행히 공부를 잘해 청주의 청석고에 3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학교 졸업 후 형님 밑에서 농사를 지으며, 신협운동을 접했다. 당시 (재)충북농촌개발회(1968년 천주교 청주교구 클라이드 데이비스 Clyde Davis 신부가 주도하여 설립한 충북육우개발협회에서 1981년 개명)는 농민교육원을 설립하여 협동조합, 축산기술교육을 하는 한편, 괴산과 음성 지역을 중심으로 광역농촌개발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괴산군에는 3개의 신용협동조합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방학가축신협과 인연을 맺고 협동조합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2003년 흙살림감물모임으로 시작한 감물면 제1회 친환경 손모내기행사
 2003년 흙살림감물모임으로 시작한 감물면 제1회 친환경 손모내기행사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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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신협 감사를 한 6년 했는데, 리영희 선생님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을 읽으며 사회적 눈을 뜨기 시작하고, 기독교농민회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1983년 마을청년 9명이 힘을 모아, 낡은 마을창고를 마을회관으로 개조하기로 하였는데, 각자 주특기(목수, 전기 등)를 발휘하고, 화재로 버려진 소나무를 활용하고, 마을사방공사에 받은 인건비로 비용을 충당했다. 이를 통해 팀워크를 다진 마을 청년들이 마을을 변화시켜 나갔다.

새로 단장한 마을회관에서 마을회의가 열릴 때면 집집마다 다니면서 부부가 함께 회의에 나오도록 권유했다. 회의가 열리면 권위를 앞세우던 남자들이 여자들과 논쟁을 하면 지기 마련이라 마을 일에 여성들의 참여와 지위가 높아졌다. 마을에 어린이 유치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기로 했다. 어린이 유치원 운영을 위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내려온 부인과 1985년 결혼했다. 결혼 후 약 3천 평의 문중 땅을 임차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민의 경제적 삶 고민

괴산군에서는 1975년부터 가톨릭농민회가 활동해왔지만, 이도훈은 이를 잘 알지 못하였고 1982년부터 기독교농민회에 참여했다. 당시 괴산군에는 가농, 기농 외에도 자주농민회가 혼재되어 활동하였으나, 1989년 괴산군 농민운동연합이 결성되면서 단일 대오를 형성했다.

1989년 1월, 괴산군 농민회 창립에는 8개면 지회의 450여명의 농민이 참여했다. 지역의 농민운동은 80년부터 수세, 을류 농지세, 농가부채, 쌀 문제, 고추가격 싸움, 의료보험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응하여 왔을 뿐 아니라, 투쟁과 함께 지역 농민들의 경제적 삶의 향상을 함께 고민했다. 이도훈은 1991년부터 6년간 사무국장 그 후 4년간 부회장을 맡으면서 괴산군 농민회에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2006년 친환경농업 정책토론회
 2006년 친환경농업 정책토론회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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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회는 농민의 경제적 향상을 위해 두 가지 일에 주력했다. 하나는 영농기술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농산물 판매 개선이었다. 괴산군의 주작물인 담배 후작으로 오이를 입식하는 억제 재배 기술, 주키니 호박과 가지 재배 기술 등을 가르친 영농교육기술교육은 농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농업기술센터가 식사를 제공하며 영농기술교육을 하였으나 5명 정도 밖에 참석하지 않은 반면에, 농민회 기술교육에는 밥값을 내면서 105명이 몰렸다. 농업기술센터가 수도작 중심이었기 때문에 밭작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한 반면에, 농민회 교육에서는 경험 있는 현장 농민이 직접 교육하였고, 필요할 때는 옆에서 언제든지 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4-95년 무렵 농산물 판매를 위해 현장 경매와 직거래를 도입했다. 지역의 특산물인 홍고추와 건고추를 괴산장에 갖고 가면 상인들이 저울 잡이와 짜고 각종 농간을 부렸다. 농민회 경제사업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무현(후에 불정농협조합장이 됨)이 주도하여 현지경매를 실시했다. 경매라고는 하나, 남 위원장이 가격을 매기면 상인들이 사는 방식이었다.

또한 농민회원들이 직접 박스 작업을 해서 가락시장과 안양시장 등에 경매 위탁했다. 대학가에서 직판을 하기도 하고, 고추씨 종자를 공동구매하여 농민들에게 값싸게 판매했다. 농민회 활성화를 위해 처음에는 경제사업을 회원만 참여시켰으나 그 후 지역 농민들에게 개방했다. 농민회원의 가입이 늘어나, 한때는 10개면에 2천 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하였고, 월례회의를 하면 임원만 25-30명 참석할 정도로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농민회 경제사업은 90년대 말 IMF를 맞으며 시들시들 힘을 잃어갔다. 경제사업을 운동으로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농민들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주기 위해 수수료를 최소화하였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인 희생에 의해 추진되었다.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경제적 전망이나 비전이 없었다. 7-8년 농민회 경제사업에 헌신하면서 농민에게는 도움을 주었지만 이도훈의 경제 사정은 나빠졌고,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IMF 경제위기에 결정타를 맞은 경제사업은 2005년 경 힘을 거의 잃었다. 유통판매 조직을 따로 운영할 전문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농조합법인으로 새로운 협동의 길 모색

2001년 12명의 농민회원으로 흙살림 감물면지회를 결성했다. 흙살림의 모태는 1991년 (재)충북농촌개발회, 괴산소비자협동조합, 농민들이 참여하여 창립한 괴산미생물연구회다. 1984년 괴산에 귀농하여 농촌운동을 하고 있던 이태근(현 흙살림 회장)이 중심이 되어, 생명의 근원인 땅을 살리기 위해 미생물을 활용해 지력(地力)을 북돋워 튼튼하고 건강한 농작물을 키워내기 위한 것이었다.

미생물연구회는 1993년 흙살림연구모임, 1996년 (사)흙살림연구소, 1999년 ㈜흙살림 설립, 2005년 ㈜흙살림푸드로 성장했다. 흙살림은 친환경농업을 위한 기술 연구 및 교육, 홍보 그리고 친환경농산물유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흙살림 감물면지회(대표 이도훈)는 2001년 설립 당시 판매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친환경유통을 하고 있던 아이쿱 생협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영농조합법인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으로 친환경경제사업체로 성장해갔다.

"2003년에 영농조합법인으로 전환한 것은 특별한 계획은 없었는데, 군에서 찾아와 영농조합법인으로 전환해 친환경지구조성사업지원(우렁이 사육장, 창고, 집하장, 미생물발효탱크 등 2-3억원 지원)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영농조합법인설립을 위해서는 5천만 원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하였는데, 그만한 돈이 없었다. 기껏해야 13명이 50만 원씩을 모은 돈 650만원 밖에 없었으나, 사법서사 사무소에서 나머지 돈을 빌려 설립인가를 받고, 그 즉시 하루 이자를 지불하고 갚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때는 그랬다."

영농조합법인 전환 후 당시 친환경농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여 쌀값 불안으로 고민하던 적지 않은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했다. 법인은 참여농가 50농가, 친환경재배면적 12만평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영농조합법인은 2005년 흙사랑영농조합법인(이하 흙사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농조합법인은 초기에는 아이쿱과 인연을 맺었으나, 여러 이유로 2005년부터는 한살림생산공동체에 가입했다. 지금은 연간 총매출(2021년 현재 45억 원)의 80% 정도를 한살림에 납품하고 나머지 20%를 흙살림, 두레생협, 행복중심 생협 등에 납품하고 있다.
 
2007년 손모내기 체험 행사
 2007년 손모내기 체험 행사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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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의 흙사랑 자랑을 들어보자.

"흙사랑은 기획생산, 공동선별, 공동정산을 하고 있다. 생산조정회의를 통해 품목을 배정하고 재배면적을 조정하여 계약 생산과 인증관리를 하고, 생산물은 공동 선별하여 납품하고, 납품 후 대금을 공동으로 정산한다. 이것은 협동운동의 기본원리이지만, 공동정산까지 하는 곳은 흔치 않다. 그만큼 조합원들의 협동의식과 상호신뢰가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 흙사랑은 회원들의 영농자재 지원 사업을 일원화하고, 천연농약을 자가 제조해서 공급하는 영농사업을 한다. 그리고 양배추액, 삶은 옥수수, 절임배추, 브로콜리 순 등 가공사업을 하며, 도농교류를 위한 체험사업을 하며, 수익의 일부를 지역에 환원한다."

"흙사랑이 공동책임(정산)을 도입한 계기는 2003-2004년 경 저장고를 임대하였는데 저장을 잘못해서 생산의 절반 이상을 날린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회원들을 설득하여 공동책임을 지게 되었다. 흙사랑은 회원들과 물량(면적)을 배정하지만, 예상과 달리 원래 배정 물량 이상으로 생산이 늘어나도 판매처를 늘릴 자신이 있기 때문에 모두 받아들이고 공동 책임을 진다. 흙사랑 조합원들은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새로 친환경농업을 하면서 조합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면 모두 받아준다. 기존 조합원의 평균 출자금액에 관계없이 20만원의 기본 출자금을 내면 가입할 수 있다.

흙사랑은 소농을 배려한다. 기존 재배면적의 기득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재배가 수월하고 소득이 많은 인기품목에 대해 회원 모두가 동일한 권리를 가져 농사면적이 적은 귀농자들이 인기품목을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고 면적이 넓은 대농들은 기본 권리에 추가로 부족품목이나 비선호품목을 농사지어 약정물량을 조정했다."

 
2008년 논생물 다양성 연구모임 활동
 2008년 논생물 다양성 연구모임 활동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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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랑은 2011년 예비 사회적 기업을 거쳐 2013년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가장 커다란 이유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2011년 직원이 2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일자리 창출 지원으로 5명을 고용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 2년, 사회적 기업 3년 총 5년차 사업이 마무리된 시점에 직원이 10명으로 늘어났다. 지금 직원은 23명(상근 15명, 일자리 지원 4명, 계약직 4명)이다. 계약직은 65세가 넘은 퇴직한 직원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이다. 현재 조합원은 70농가에 회원(부부로 가입)은 130명이다.

흙사랑의 매출은 2011년 10억 4천만 원, 2016년 19억 7천만 원, 2020년 35억 1천만 원으로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한살림 등 생협의 매출 신장 덕에 큰 어려움 없이 넘기고 있다. 흙사랑은 현재 친환경인증 밭 49ha, 친환경인증 논 8.5ha에 쌀, 감자, 옥수수, 양배추, 브로콜리 등 30여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 저온저장고 350평, 가공공장 100평, 작업장 110평, 창고 100평의 시설을 갖춘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정부 지원의 빛과 그림자

흙사랑의 성장 과정에는 정부의 친환경농업지원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현재 흙사랑이 보유하고 있는 시설의 대부분은 정부 혹은 군 지원에 의해 건립되었다. 저온저장고 및 공동작업장, 양배추액 가공시설, 집하장 건립을 비롯해 6차 산업 지원 그리고 사회적 기업 지원 등 대략 30-40억 원의 정부 지원이 있었다(물론 일부는 자부담).

여기에 문제가 있다. 정부 지원 사업의 경우 대부분의 농촌에서 겪는 일이지만 비용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간다. 농민들은 자기 돈이라면 반값으로도 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시설이 업자와 공무원이 주도하여 건립하기 때문에 농민(수요자)이 원하는 대로 짓지 못하고, 짓자마자 바로 수리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성비와 품질 모두에 문제가 있다.

한편 친환경농민조직은 대부분 생협 조직과 거래를 한다. 생협을 통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생협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친환경농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친환경농민조직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금융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만큼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친환경농민조직의 경쟁력은 정부의 금융지원에서 나온다. 생협은 이 원가를 고려해서 매입가격을 결정한다. 결국 정부 지원이 농민이 아니라 생협을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2009년 흙사랑 벼베기 행사
 2009년 흙사랑 벼베기 행사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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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앞으로다. 흙사랑은 가공사업 등의 수입으로 인건비와 운영비를 충당한다. 배당은 하지 않지만 따로 사업준비금은 유보하지 않고 의무출자(상황에 따라 7~4%)를 통해 자본금을 마련한다. 현재 조합원의 출자금이 6-7억 원에 달한다. 정부 지원 사업으로 건립된 시설은 노후하지만 조합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고 하다 보니 감가상각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시설 재투자와 새로운 투자를 위한 자금이 필요한데, 법인은 스스로 그러한 자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계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법인의 지속적 운영이 가능할 것인가?

생산 및 가공 시설 등의 건립하는 보조금 지원보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직접지불을 강화하는 것이 어떨까. 친환경농업으로 안정적인 수지를 맞출 수 있다면, 정부의 시설자금 보조 지원이 없더라도 농민들이 알아서 협동조직을 결성하여 필요한 시설을 갖출 것이고, 그게 지속가능한 방안이 아닐까. 본래의 농업협동조합은 그런 것이 아닌가.

지역 먹을거리 체계의 확립을 위해

이도훈은 2018년 말 흙사랑 대표를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지역의 먹을거리 순환체계를 위한 '괴산먹거리연대'를 고민한다. 2019년6월 괴산먹거리연대 준비위원회를 출범했다. 여기에는 괴산군농업인단체협회(8개 농업인단체)와 괴산군유기농업인단체협의회 등 주요 농업인단체가 모두 참여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2019년 9월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먹거리연대조합')를 창립한다. 한살림과 흙사랑을 중심으로 한 지역 먹을거리 협동운동의 튼튼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06년 괴산군 학교급식운동본부가 출범하였고, 2007년 이후 친환경쌀 학교급식이 실시되고, 학교급식지원센터 설립을 위해 농민기금(총 2천만 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먹거리연대조합'은 이도훈 이사장을 비롯해 19명의 개인 혹은 법인이 출자하여 설립했다(출자금 3천만 원). 괴산군민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군민이 신선하고 건강한 지역 먹을거리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고, 먹을거리 취약계층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공공급식 지원센터 시스템을 구축하여 주요 사업으로 ∆ 관내 공공(학교) 급식 공급 ∆ 관내 괴산군 생산 농식품꾸러미 공급 ∆ 관외 괴산군 생산 농식품 공급확대 ∆괴산군 로컬푸드 직거래매장 개장 및 운영 참여 등을 하고 있다.

'먹거리연대조합'의 출범은 행정과의 민관 협력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괴산군은 민선 7기 출범(2018년)과 함께 푸드플랜 수립 준비를 계기로 공공급식 조달체계 논의를 본격화했다. 2019년 공공급식지원조례를 제정하고, 2020년 괴산군 공공급식지원센터 건립사업(사업비 20억 원)이 선정되었다. '먹거리연대조합'은 2020년 5월부터는 학교급식공급사업을, 7월부터는 공공급식지원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2021년 10월부터 괴산군먹거리통합지원센터가 완공되어 이를 위탁 운영하고 있다.
 
2020년 괴산군- 광진구 김장 교류 행사
 2020년 괴산군- 광진구 김장 교류 행사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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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먹을거리 연대를 사회적 협동조합 방식으로 설립하였을까?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는 달리 공익적 목적의 비영리법인의 설립(인가)과 감독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공익사업을 40% 이상 수행해야 하고 경영공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며, 잉여금의 30% 이상은 법정 적립해야 한다. 배당은 할 수 없고, 청산을 하는 경우에 모든 자산이 다른 비영리법인이나 정부로 귀속된다.

"흙사랑을 하면서 출자배당을 둘러싼 논쟁 등이 있었다. 자본적으로 보면 출자배당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농협감사를 하면서 보니까 출자배당은 문제가 많은 것을 봤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출자배당을 하지 않고, 청산하는 경우에는 자산을 나누지 않으니 돈 때문에 싸울 일 없지 않겠나. 그리고 지역 먹을거리운동 하기에는 영리목적의 협동조합보다는 공익목적의 사회적 협동조합이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겠어요?"

귀농인기지역, 감물면의 미래

괴산군은 산간 오지마을이지만 한때 인구 16만 명(1966년 센서스 16만506명)이 넘는 큰 고을이었고, 감물면은 인구 약 9천명(1966년 센서스, 9225명)명의 제법 큰 동네였다. 하지만, 2020년 괴산군 3만 9393명, 감물면 2033명 등 1/4 수준으로 줄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속 줄기만 하던 감물면 인구가 2010년 1604명에서 2015년 1976명, 2020년 2033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도훈은 귀농귀촌 인구 덕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감물면에는 귀농인구가 1/3 가량 된다고 하니 놀랍다. 2021년 전국적으로 귀농귀촌 가구는 35만 7694가구인데 귀농은 1만 2489가구에 지나지 않고, 거의 대부분은 귀촌가구(34만 5205가구)란 점을 고려하면 믿기 어렵다고 했더니, 이도훈은 그래도 1/3은 귀농이라고 주장한다.
 
2021년 괴산군 로컬푸드매장
 2021년 괴산군 로컬푸드매장
ⓒ 괴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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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진위를 떠나 감물면에 귀농인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왜일까. 우선 귀농에 대한 벽이 높지 않다. 마을 이장의 1/3, 새마을지도자의 1/2은 귀농자이다. 귀농자들은 시장거래보다는 직거래를 많이 한다. 대략 직거래 80%, 시장유통 20%라고 한다. 이 또한 놀랍다.

귀농자들에게 흙사랑영농조합법인은 든든한 우군이다. 괴산군 푸드플랜이 추구하듯 친환경 로컬푸드가 활성화되고 지역의 선순환경제 기반이 구축된다면, 괴산군 농민과 귀농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괴산군먹거리연대 사회적협동조합과 이도훈 이사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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