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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창원마산 부림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71주년(14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
 23일 오후 창원마산 부림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71주년(14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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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뵙지 못한 아버지를 처음으로 크게 불러본다. 아버지께서는 6·25 직후 보도연맹 교육이 있다고 집을 나서신 이후 돌아오시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그 당시 큰 언니가 13살, 작은 언니가 10살, 큰 오빠가 7살, 작은 오빠가 4살로 오남매를 어머니에게 남겨둔 상태였다."

백명순 전 마산성지여고 교사는 '아버지'부터 불렀다. 백 전 교사는 23일 오후 창원마산 부림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행 전후 민간인 학살희생자 제71주년 14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에서 "보고 싶은 아버지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읽은 것이다.

그는 "돌아가신 날을 모르기에 아버지 기일은 '9월 9일'(음력)로 정해 제사를 모셨다. 아무런 재산도 없이 어머니 혼자서 어린 자녀 다섯을 키우시느라 한 고생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웠다"며 "제가 성인이 되어 어렴풋이 아버지의 행방불명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연좌제로 자녀들의 학사장교(ROTC) 입대 불가, 직장에서의 불이익 등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동안 많이 원망스러웠다"고 한 그는 "큰 언니와 친척들에게서 아버지에 대해 들은 바로는 고등교육(당시 마산상고)을 받으신 식자셨고 성품이 곧으셔서 불의한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강직한 분이셨다고 한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36년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을 때 정의롭고 공정한 새로운 국가에 대한 기대가 크셨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불의한 공무원, 경찰들에 대한 반감이 크셨던지 행동으로 맞서기도 했다"고 칠순을 넘긴 딸이 말했다.

이어 "그러나 당시의 심상찮은 정세를 파악하시고 가족을 위해 국가시책에 따르시기로 마음먹고 권유하던 국가보도연맹에 가입하시어 교육소집명령을 받고 집을 떠나신 이후 가족과는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어머니는 오남매를 키우며 힘들게 살았다는 것. 백 전 교사는 "돌아오시지 못하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시던 어머님의 슬픔을 자식들은 어찌 다 짐작하겠느냐"고 했다.

이어 "나약한 어머니에게 어린 오남매를 남겨두고 떠나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70년 동안 아버지 사망의 정확한 원인과 장소에 대해 적극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했음에 용서를 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를 부른 그는 "지금부터라도 유족회가 추진하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명단과 앞으로 건립될 추모탑에 아버지 이름이 들어가게 하여 아버지의 억울하고 외로운 영혼을 달래 드리고 싶다"고 했다.
  
23일 오후 창원마산 부림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71주년(14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
 23일 오후 창원마산 부림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71주년(14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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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희생자 명단 520명"

이날 합동추모제는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회장 노치수)가 마련했다. 박종철 경남진보연합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김선희 한국민속춤협회 경남지회장이 '초혼무'를 추었고, 전통제례가 열렸다. 제단에는 '한국전쟁 전후 창원지역 민간인 학살 희생자' 명단 520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전통제례에서 '축문'을 통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학살 희생당한 모든 영령들이시여. 이념의 갈등 속에 영문도 모르는 채 무고한 공권력에 의해 학살 희생된 영령들의 통한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다"며 "살아 있는 우리 후손들은 이념의 올가미에 씌워져 형무소에서, 산골에서, 바다에서 희생당한 그때의 처절하고 애절한 통곡소리가 이곳 광장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 영령들이시여. 우리 유족 일동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어느 산골, 어느 바다, 어느 하늘 아래서 떠돌고 계시는 영령들을 위하여 이곳에 모셔서 맑은술을 올리며 추모제를 지낸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이제 님들이 가신 지 71년이 흘렀다. 후손들은 님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모든 원한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옵소서"라고 축문을 끝맺었다.

김연희 시인은 추모시 '그날의 아버지'를 통해 "천근의 눈물을 묻은 바다/그날 몰래 내던져진 목숨들은/나라를 믿고 따라 나서거나/무시로 끌려간 이 땅의 사람들, 파도는 71년째 만장을 들고 호곡한다"며 "그날 이후 끝내/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를/그리울 때마다, 서러울 때마다/남몰래 불러 보는/가엾고 가여운 이름이여"라고 했다.

노치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미군정 시절 '정부를 국민에게 넘기라, 농지 개혁하라'고 외치다 감옥살이를 하다 전쟁이 나니 죽음을 당했고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권유를 받고 가입해 전쟁이 나니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했다.

노 회장은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며 "이제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숨겨진 어두운 역사, 잘못된 과거를 하나하나 밝혀 정리해 나가야 진정한 진실화해가 될 것이고, 억울함이 없는 세상, 진정한 평화가 싹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고 했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최영철 마산합포구청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쓰러져 가신 억울한 영혼들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내리는 눈물과 가슴 찢어지는 비통함이 우리 앞을 가린다"며 "한국전쟁의 쓰라린 아픔을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가 더 큰 사랑과 용서로 승화시켜 모두가 하나 되고 풍요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치우 창원시의회 의장은 "과거 불행하고 아픔 역사를 용서와 화해로 극복하고,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고 했다.
 
23일 오후 창원마산 부림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제71주년(14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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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창원유족회, #창원시, #진실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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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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