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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실상사농장 배추밭에 서 있는 오창균 씨.
 실상사농장 배추밭에 서 있는 오창균 씨.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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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둘레에는 1만 5000평쯤 되는 논과 밭이 있는데, 실상사 농장이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 오창균씨를 만났다. 그는 '짱짱'이라는 별명을 쓴다. 서울, 경기 등에서 도시농업을 교육하고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기도 한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해 초창기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사는이야기, 책과 농사 이야기 들을 꾸준히 써 오고 있다. 그는 고향을 떠나 공장노동자를 거쳐 컴퓨터프로그램 전산기술원으로 일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다른 삶을 꿈꿨다. 마침내 그가 도시를 떠나 진짜 농부가 되었다. 농사가 그리도 좋다는 짱짱을 만나 사연을 들어 보았다. 
        
오창균 씨가 묵고 있는 숙소 화림원. 원래는 스님들 수행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가들이 저마다 1인 1실의 방에서 지내며 함게 텃밭도 일구고 공동생활을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쓰고, 생태화장실에서 나오는 똥, 오줌은 거름으로 만들어 농사에 쓰고 있다. 순환하는 삶인 셈이다. 짱짱 오창균 씨는 이곳 공동체의 식량 자급을 우선하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오창균 씨가 묵고 있는 숙소 화림원. 원래는 스님들 수행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가들이 저마다 1인 1실의 방에서 지내며 함게 텃밭도 일구고 공동생활을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쓰고, 생태화장실에서 나오는 똥, 오줌은 거름으로 만들어 농사에 쓰고 있다. 순환하는 삶인 셈이다. 짱짱 오창균 씨는 이곳 공동체의 식량 자급을 우선하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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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 배우러 갔다가 도시농업 강의를 하다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잠이 안 온다고 그러잖아요. 또 가고 싶은데 다음 날, 밤은 길고 막. 농사가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막 애들도 데리고 가고 그랬죠. 가서 컵라면 먹으면서 농사짓고. 도시농부학교 끝나고 교육생들에게 조그만 텃밭을 분양해 줬거든요."

오창균씨는 마흔쯤 되면 귀농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때가 IMF를 겪은 직후였다. IMF 때 오창균씨는 실직을 하고 이직을 하며 도시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꼈다. 5년 정도 연애하다 결혼한 아내에게 귀농 얘기를 꺼냈더니, 처음에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님을 알았기에 가려면 10년 뒤에 가라고 했다.

아내는 나름 수를 쓴 게 아닐까. 오창균씨는 그 '10년 약속'을 철석같이 붙잡고 있었을 테고. 결혼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으니 오창균씨도 당장 귀농을 실행하기도 조심스러웠으리라.

먼저 경험을 쌓아야겠다 마음먹었다. 귀농이 유예된 10년에서 1년쯤 남은 때였다. 귀농 교육을 검색을 하니 '도시농업'이 떴다. '음, 도시에서 농사짓다가 내려가면 더 좋은 거 아닌가' 하고 솔깃했다. 마침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라는 곳에서 도시농부학교 1기를 모집하였다.

몇 달 도시농업 교육을 받고, 교육생들에게 1년간 농사를 지어 볼 수 있게 배정해 준 텃밭을 얻었다. 주마다 나갔다. 두세 평 되는 텃밭에 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텃밭을 보는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오죽 좋았으면 식구들도 데려가 텃밭에서 놀고 먹고 할 정도였다.

이 모습이 인상 깊었을까?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활동가가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도시농업에 푹 빠진 덕에 도시농업 교육자가 되었다. 도시농업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생들을 교육하는 일을 했다. 도시농업 초기인 만큼 여기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곳곳으로 퍼져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도시농업 활동 모습. 주민들과 함께 휠체어와 목발을 이용하는 장애인들도 농사지을 수 있는 텃밭을 만들고 있다.
 도시농업 활동 모습. 주민들과 함께 휠체어와 목발을 이용하는 장애인들도 농사지을 수 있는 텃밭을 만들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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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약속한 10년이 되었다. 아내도 반대는 못 했다. 바로 시골로 가기보다는 집에서 오갈 수 있는 도시농업이 있으니, '농촌으로 귀농이 아닌 농사로 귀농'이라 생각하고 도시농업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이 정말 재미있었다. 푹 빠졌다. 빠져들수록 자영업과 병행하기가 버거웠다. 과감하게 폐업을 해 버렸다. 10년 전 귀농을 결심하며 시작한 컴퓨터 튜닝 자영업이었다.

자영업을 접으면서까지 시작한 도시농업 활동은 먹고살 만했을까?

"가장 두려웠던 거는 통장 잔고가 줄어 가는 거였어요. 자영업 했을 때야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도 쓸 만큼 벌긴 했으니까요. 걱정되기는 했는데,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한 거예요. 아내랑 얘기를 하면, '너는 하고 싶은 거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병나는 사람이잖아' 이래요. 그때 아내가 꽃집을 운영하면서 생활은 됐으니까 가능했죠.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죠."

도시농업 교육 활동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 덕을 보았다. 옥상 텃밭 붐이 일어났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텃밭 보급 사업과 농사 교육을 했다. 그전부터 도시농업을 해 온 곳이었기에 역량이 쌓인 터라 많은 일이 이쪽으로 들어왔다. 한창 성장하던 시절, 7년의 활동을 내려놓고 그는 다시 진짜 귀농을 마음먹는다.

"농사는 정말 내가 스스로 재밌어서 하지 않으면 중노동이거든요. 다들 '농사가 좋아요' 하면서 와요. 도시농업은 옥상이나 빈터에 텃밭 만들고 가꾸는 일이에요. 근데 삽질 한 번 하고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모습에 지치고 힘들어지면서 진짜 귀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육을 위한 도시농업 활동이 어쩌면 그에게 자신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농사를 짓지 않고 가르치기 위한 농사였기에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부러 실패하기 위한 농사를 지어 보면서 농사 노하우를 쌓았으리라. 자연스레 나만의 농사를 지어 보고 싶지 않았을까?

1년 정도 쉬면서 귀농할 곳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교육 과정에서 알게 된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흥 지역 주민들하고 농사를 지으려고 만 평 정도 농장을 얻어 놨는데 와서 교육을 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교육을 하고서, 넓은 땅을 보니까 '여기서 농사짓다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년만 농사짓고 가겠다고 하니 그 분도 흔쾌히 땅을 조금 내어주었다. 출퇴근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재개발 얘기가 오가던 곳이라 오래 갈 줄을 몰랐는데, 7년 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검정고시와 노동야학에서 만난 인연

오창균씨의 정규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다이다. 1984년 16살, 학비 대기도 어려운 형편에 중학교를 자퇴하고 전자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키보다 큰 프레스기를 다루었다.
 
공장노동자 시절 프레스 기계 앞에서
 공장노동자 시절 프레스 기계 앞에서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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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의 삶을 살면서 커져만 가는 자괴감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장에서 만난 형이 '너는 아직 어리니까 공부해라. 안 그러면 평생 기름밥 먹는 거야'라며 공부를 권했다. 몸이 힘든 하루하루와 얇은 월급봉투에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중졸 검정고시에 붙고, 고졸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었다. 야학에 다닌다는 지인 소개로 노동야학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노동의 새벽>을 만나고 <전태일 평전>을 읽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월간 <말>지를 읽었다. 심장이 뛰고 새로운 삶이 다가오는 듯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되면서,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시민기자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50여 편쯤 썼다. 살아가는 이야기, 책 읽고 난 소감, 농사 이야기 들이었다.
                  
<오마이뉴스>에 쓴 <'평생 기름밥 먹고 살래?'가 일으킨 나비 효과>에서
 <오마이뉴스>에 쓴 <"평생 기름밥 먹고 살래?"가 일으킨 나비 효과>에서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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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가 쓴 농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농사 공부가 되는 듯하다. 정답이 있는 농사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실험을 하며 현상에 대한 원인을 끈기 있게 찾고 열려 있는 답을 찾아가는 농사법이라 할 수 있겠다. 도시농업 활동을 하며 농사 교육을 위해, 농부들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하기 위한 농사 실험을 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학 진학을 접고 전문 기술을 배울 생각으로 아이티(IT) 분야를 떠올렸다. 마침 신문에서 대학 부설 전산원(전자계산원) 수강생 모집 광고를 보고 시험을 봤다. 2년을 다니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야근이 많고 고된 생활이 이어졌다. 직장을 몇 차례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 맞벌이라는 이유로 실직을 하고 말았다. 같은 이유로 아내도 실직을 했다.

이때 오창균 씨는 귀농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10년 미뤄지긴 했지만 귀농의 꿈을 위해 자영업을 시작했다. 컴퓨터 튜닝이라는 사업이었다. 약속한 10년이 다가오자 오창균씨는 농사를 배워서 귀농하고자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1기 도시농부가 되었다.

그물코처럼 이어진 인연, 인드라망

도시농업 활동을 하면서도 귀농학교를 찾아다녔다. 이 시기(2010년 전후) 귀농학교는 단체 주도에서 관 주도로 옮겨 가던 시절이었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두 지역의 귀농학교를 다녔다. 실망이 컸다고 한다. 돈 버는 농사를 얘기하고 우리 지역으로 오라고 홍보하는 귀농 교육이었다.

농사로 큰돈을 버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일 텐데, 사람을 홀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귀농학교로 가던 길을 돌려 화천으로 귀농한 친구를 찾아갔다. 하룻밤 묵으며 귀농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인드라망귀농학교를 추천해 주었다. 좀 다를 거라며.

망설이지 않고 인드라망귀농학교를 다녔다. 삶의 전환을 생각하고, 돈을 벌기 위한 농사가 아닌 자연과 연결되는 농사 철학을 깊게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다닌 뒤로는 인드라망귀농학교에서 농사 교육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영등포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농사 교육도 하였다. 나아가 인드라망 회원 소식지 일까지 거들며 취재도 하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있었으니 사람들을 만나 글을 쓰고 농사 이야기를 연재하는 재미가 더욱 커졌다고 한다.

도시농업 활동과 귀농학교에서의 배움으로 귀농의 꿈은 점점 굳어져 갔다. 게다가 시흥 농장에서 7년여간 직접 농사도 지어 보았다. 시흥 농장 지역은 개발 얘기로 점점 땅 투기장이 되어 갔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떠날 바에야 빨리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2020년 가을 농사를 끝으로 시흥을 떠났다. 귀농할 곳을 찾아 괴산도 가 보고 제주도 가 보고, 아는 사람도 찾아다녔다. 농사지을 땅은 많은데 살 곳이 없거나 마땅치 않았다.

조심스레 인드라망 실상사 농장을 떠올렸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농장이다. 다만 공동체라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뭔가 규율을 따라야 하고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공동체 숙소가 있으니까 살 곳은 확실한테 '공동체'가 주는 선입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인드라망에 연락을 해 보았다. 무조건 와라, 일단 와 보라. 이런 얘기가 나왔다.

바로 가지는 못하고, 귀농지를 알아볼 겸 일손을 돕기로 약속한 괴산과 제주에 먼저 가야 했다. 그런데 인드라망공동체 농장에서 언제 오냐고 연락이 왔다. 이미 오기로 한 걸로 받아들였나 보다. 그렇게 해서 올해 초부터 스님들 숙소였던 화림원에 짐을 풀면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풀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작물과 공존하며 흙을 살리는 역할도 한다
 풀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작물과 공존하며 흙을 살리는 역할도 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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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생활에 대한 선입견은 달라졌을까?

"공동체 농장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죠. 다만 공동체라는 게 부담이었죠. 규율을 따라야 한다든가, 학교나 군대처럼 나를 규제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상 와서 겪어 보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왔지 싶었죠. 또 공동체 내부에서 무조건 박수만 치는 게 아니라 긴장될 정도로 토론하고 회의하는 모습을 보며 이 공동체가 건강하구나 느꼈죠. 다른 의견이나 지적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걸 위해 얘기해 주고 본인이 못 봤던 걸 지적해 주고. 저도 얘기를 들으며 제 생각을 바꾸기도 하죠."

오창균씨는 올해 초 10년 넘도록 인연을 맺어 오던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농장으로 왔다. 20년쯤 전부터 꿈꾸던 귀농이 실현된 셈이다. 올해 그가 곳곳에 쓴 글을 보면 물 만난 물살이(물고기)처럼 파닥파닥하다는 느낌이 또렷했다. 하루하루가 마냥 재미나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삶의 과정을 뒤돌아보면 다 연결이 되는 거예요. 인드라망이라는 말처럼, 그물코처럼. 내가 이걸 했기에 이렇게 하고 또 이렇게... 결국엔 여기로 왔네 하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더라고요. 야, 여기를 오려고 이런 과정을 거쳤나 싶죠."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농사를

오창균씨는 인드라망공동체의 자급을 위한 실상사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다. 논 1만 평, 밭 5000평 규모를 셋이서 짓는다. 수요일이면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모여 농사를 거들기도 한다. 숙소인 화림원 한쪽에는 생태화장실이 있고 바로 뒤에는 30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화림원 식구들이 함께 농사짓는 밭이다. 갖가지 작물을 심어 화림원 공동체 식구들이 주로 먹는다.

다들 오창균씨가 함께하면서 더욱 풍요로운 밭이 되고 풍성한 먹을거리를 누릴 수 있게 됐다며 자랑을 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또 여성, 남성이 다양하게 섞인 화림원 식구들은 각자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도 공동 텃밭을 맡아 농사 경험을 쌓기도 한단다.

"날씨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농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농법이든 일하는 시간이든. 일단은 그래서 자유로워요. 힘들긴 하죠. 그런데 그 힘듦이 스트레스 받는 힘듦이 아니거든요. 그 속에서 어마어마한 희열을 느껴요. 그래서 농사를 해요."
 
피망. 사먹기만 하던 피망을 직접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숙소 화림원 텃밭에는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어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피망. 사먹기만 하던 피망을 직접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숙소 화림원 텃밭에는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어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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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즐기는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더구나 그는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곤 한다. 그가 쓰는 에스엔에스(SNS)나 <오마이뉴스> 글을 비롯해 농사지으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해 주는 얘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나만의 농사가 아니라 남을 가르치는 농사였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농사 강의를 하다 보니 가능한 한 모든 문제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험적인 농사를 한 셈이다. 잘되게 하는 농사가 아니라 안 되게 하는 농사로 말이다.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시도해 보죠.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 됐을 때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알아내려고 그동안 책을 뒤지고 농사 커뮤니티를 살피고, 농진청 자료도 찾아봤어요. 제가 알고 있는 농사 지식의 90퍼센트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 있었고 누군가 했던 거를 모았을 뿐이에요. 근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예요."
 
실상사 농장. 농기구나 농자재를 보관하고 거둬들인 농작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실상사 농장. 농기구나 농자재를 보관하고 거둬들인 농작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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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농사를 짓더라도 실험적인 농사도 참 필요하겠다 했더니, 엄청 필요하다고 답을 한다. 지금도 혼자만의 실험 농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년이 되면 오창균씨는 실상사 농장에서 2년차 농부가 된다. 그만큼 고민도 있을 테고 계획도 있지 않을까?
   
낙엽을 깔아 멀칭을 해 둔 생강밭. 비닐을 쓰지 않고 자연에서 또는 밭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멀칭을 하여 땅을 살리는 농사를 추구한다.
 낙엽을 깔아 멀칭을 해 둔 생강밭. 비닐을 쓰지 않고 자연에서 또는 밭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멀칭을 하여 땅을 살리는 농사를 추구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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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맞는 농장이 되도록 흐름을 이어 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조심스레 기후위기에 맞는 농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면서 순환하는 농사를 고민했다.

비료 등 바깥에서 들여오지 않고, 논밭에서 나는 작물 부산물과 생태화장실 등을 잘 활용하고 될수록 흙을 갈아엎지 않는 농사를 조금씩 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수확을 잘할 수 있을 거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먹을거리 위기를 대비하면서도 순환하는 농사 계획이 어서 꽃피우길 빈다. 오창균씨와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언젠가 꼭 그에게서 1년만이라도 농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가 쓴 글을 나누며 마친다.
 
<오마이뉴스>에 쓴 <나에게 농사는 무엇인가>에서
 <오마이뉴스>에 쓴 <나에게 농사는 무엇인가>에서
ⓒ 나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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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은책(www.sbook.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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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러운 일을 한다. 책을 만들고 초중등 친구들과 토론을 한다. 내 손으로 하는 텃밭, 목공, 바느질, 뜨개, 수제맥주, 자전거정비 등을 좋아한다. 리페어 '공방책방'을 만들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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