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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링스팀과 사이님이 탐조를 위해 송도 유수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유수지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님 어스링스팀과 사이님이 탐조를 위해 송도 유수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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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 3차원의 존재 '새'

지난 9월 25일 아침 9시 인천 동막역으로 어스링스가 모였다. 이곳에 방문하는 야생동물인 '새'를 놀라게 하지 않고, 손상하지 않으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듣는 활동인 탐조를 위해서였다.

우리가 방문한 송도 유수지는 멸종위기 1급으로 4000명 남짓에 불과한 저어새를 비롯한 다양한 개체들이 번식을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우리는 직접행동 DxE(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에서 활동하는 사이를 만났다. '사이'의 이름은 3차원의 존재인 새에서 따왔다고 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머무는 새를 바라보는 그는 우리에게 탐조기록장과 쌍안경을 나눠주었다.

사이가 탐조기록장을 나눠준 이유는 오늘 우리가 볼 새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였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을 나와 관계 맺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이름과 생김새를 알고 있는 새는 고작 비둘기와 까치 그리고 참새정도였다. 그들이 나무 위에 있어도, 하늘을 무리 지어 날아가도 나는 '새가 있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들은 개념으로써 존재했다. 내가 거리에 당신을 지나가는 누군가로서, 단지 인간 중 한명으로써 생각하듯 말이다.

그런 내게 탐조기록장은 새들과 관계 맺게 했다. '새'라는 존재와 '나'의 거리가 좁혀지고 새는 더 이상 내게 단순한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어딘가를 향해 날고 무언갈 먹고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다. 당신과 내가 그러하듯이.

사이님이 나누어준 쌍안경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볼 수 있게 했고, 가까이 있는 것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게 했다. 특별한 눈을 얻은 우리는 신이 나서 옆에 있는 아파트부터 도보 사이에 끼인 이끼까지 자세히 보았다. 새는 사람보다 20배 가까이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도 시력을 교정하는 안경을 쓰며 세상을 바라보고, 오늘은 쌍안경의 힘까지 빌렸지만 절대 새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만큼 뚜렷하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알기 위한 탐조기록장에 있는 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첫 페이지에는 물갈퀴가 있는 수조류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텃새가 기록되어 있고, 둘째 페이지에는 서서 걷는 섭금류가 기록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가지는 특징과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별명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리라는, 갈매기라는, 백로라는, 도요라는 큰 이름 속에 세세한 분류가 담긴 이름이 있었다. 사이님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겨울에 노란팬티를 입는 아주 작은 쇠오리가 궁금해졌다.
 
유수지 입구 갈대 사이로 새들이 모여있다.
▲ 갈대 사이로 보이는 새 유수지 입구 갈대 사이로 새들이 모여있다.
ⓒ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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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고 보이는 것들

유수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얼마 지나지 않아 박새를 만났다. 검정 넥타이를 메고 있는 박새. 아주 작고 빠른 박새. 쌍안경을 들고 처음 만난 새라 더욱 반가웠던 우리는 박새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박새의 모습을 찾았다.

벌써 겨울깃으로 바뀐 중대 백로를 만나고, 식사를 즐기는 큰 기러기 가족을 만나고, 도감 속 그림보다 화려한 왜가리를 만나고, 어떤 도요인지 유추하기 어려웠던 청다리 도요를 만나고, 부리에 검은 반점이 있는 괭이 갈매기를 만나고, 만날 수 있을까 싶었던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를 만나고, 날개를 말리는 가마우지를 만나며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걷다가도 풍경이 달라지면, 또 다른 새가 보이면 걸음을 멈추고 쌍안경을 들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를 살폈다. 도감을 보기 전까지는 단순히 새였는데 겨우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저 무리가 가족인지, 지금 저 새가 잠에 든건지, 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까지 궁금했다.

우리 일상에서 곧잘 만날 수 있는 까치 역시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그를 자세히 보면 볼 수록 감탄이 나왔다. 파란 광택깃이 빛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곁을 스쳐갔지만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운 새인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사이가 됐다. 오늘이 지나 동네에서 까치를 만나면 까치의 푸른 광택깃을 떠올리며 까치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다.
 
송도를 잇는 높고 커다란 다리가 놓여있다.
▲ 도시로 들어가는 다리 송도를 잇는 높고 커다란 다리가 놓여있다.
ⓒ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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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와 저어새 앞에서 경계 없는 식사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갔다. 유수지 뒤로 줄지은 공단과 도로 옆 다리가 보였다. 다리 넘어는 아파트가 줄지어 있었다.

송도는 신도시니까, 젊은 층들이 점점 유입되는 추세니까. 더불어 인천항과 배후단지에 조달하는 물동량 증가로 인한 교통체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이 곳을 개발한다고 한다. 더 많은 공단이 세워지고,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아름다운 조형물을 쌓고,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높은 건축물을 세운다.

내가 지나온 유수지에는 타이어같은 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었다. 높고 커다란 다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분명 같은 공간이었는데 환경이 달랐다. 오직 인간만을 위해 지어진 다리. 높지 않아도 되는, 커다랗지 않아도 되는 다리였다. 그 다리를 건너면 도시가 시작된다.

개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개발될 도시인 인천 속 유수지에는 내몰린 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다양한 새들이 찾아오지만 그 곳의 환경이 특별히 살기 좋아서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저 살 수 있어서 찾아온 것이다. 앞으로 물자를 전달할 때 발생하는 교통체증이 감소하도록 다리를 건축하고, 도로를 건설하고, 인간이 보았을 때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높고 커다란 조형물을 세우며, 인간이 살기 편한 환경으로 조성할 경우 그들은 살기 위해 또 다른 공간을 찾아갈 것이다.

그들은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지내기 위해,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 해남에서 필리핀까지 사흘만에 이동하기까지 했다. 살기 위해 그 곳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살고 있었다. 더 나은 곳을 찾아 이동하고, 휴식을 취하고, 번식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앉은 곳 앞에는 저어새와 민물가마우지, 망뚱어, 작은 게들이 있었다. 담이나 철장을 앞에 두지 않고, 그들이 먹고자 하는 것을 먹고, 숨고 싶으면 숨고, 날고 싶으면 나는 곳이었다. 인간은 교육과 그들의 안전을 이유로 그들에게 정해진 음식을 주고, 살고 싶은 곳에 살지 못하게 하고, 시선과 소음으로 삶을 습격한다. 원하는 돌 위에 올라 휴식을 취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든 기러기를 바라보며 나는 자꾸만 인간이라는 사실이 슬퍼졌다. 그러나 이런 슬픔까지도 인간인 나의 이기심같아 엉엉 울고 싶어졌다.
  
가마우지는 잠수를 한 뒤 날개를 펼쳐 몸을 말린다고 해요.
▲ 민물 가마우지의 모습 가마우지는 잠수를 한 뒤 날개를 펼쳐 몸을 말린다고 해요.
ⓒ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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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몰린 곳에 출발점이 있다

준비해온 점심을 먹은 뒤 말을 줄이고, 귀를 열고, 더 많은 것들을 보기로 하며 걸었다. 각자 온전히 이 거리를 느끼기로 한 것이다. 나는 속도를 아주 늦추어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내 위로 날아가는 새가 누구인지를 살피기도 하고, 속으로 막시무스라는 별명을 붙여준 가마우지의 펼친 날개를 보기도 하고, 곁에 핀 풀꽃을 매만졌다.

건너편에는 보이는 붉은 기운이 시멘트로 포장한 산책로라고 착각했었는데 쌍안경을 통해 보니 그저 자라고 있는 빨간 풀꽃길이었다. 나의 시선은 대부분의 것들을 온전히 보지 못한다. 채 보지 못한 사실에, 알지 못하는 사실에 나의 생각을 더하고, 편향된 시각을 더해 오해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럴 때 쌍안경을 끼고 진실을 확인하듯 내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는 큰 소리를 내고 덜컹거리는 화물차가 연이어 달린다.
▲ 도로 위 커다란 화물차 이곳에는 큰 소리를 내고 덜컹거리는 화물차가 연이어 달린다.
ⓒ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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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를 마치며 마지막 코스인 아시안 마트로 향했다. 왜 아시안 마트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막연히 그 뒤를 쫓았다. 마트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낚시 금지라는 현수막을 등진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지나갈 때마다 내가 밟는 땅이 덜컹거릴 만큼 커다란 화물차들이 연이어 지나갔다. 낚시하는 이들 아래에는 새똥과 미끼로 사용한 곤충들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화물차 소리가 시끄러웠다. 그 차 위에 앉아 운전을 하는 이들은 매일 매일 그런 소리를 듣는걸까 생각했다. 도로를 쌩쌩 가르고 크게 덜컹이고 내가 동네에서 보던 차들보다 두배는 시선이 높았던 그 차 위에 누군가는 무언가를 실고 이동하고 있었다.

커다란 차에 실어야하는 커다란 그 무언가는 또 누가 나르고 또 누가 재단하고 또 누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 만들어낼까 싶어 나는 자꾸만 울고 싶었다.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은데 내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먹는 모든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착취를 통해 나에게 왔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착취당하는 그 곳으로 내몰리게 했다.

내몰린 자들은 왜 내몰린 것일까 왜 내몰려야만 했을까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거주하고 싶어 거주하는 것일까 투쟁하고자 해서 투쟁하는 것일까 자꾸만 덜컹이는 내 몸과 엉망이되는 머릿속이 싫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 걸음은 내 머릿속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도 내 마음이 괴롭다는 이유로 내가 걸음을 멈추면 목소리를 낼 사람이, 기록을 통해 기보할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착취한다는 사실, 누군가를 내몰리게 한다는 사실,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내 입에 무언가가 들어간다는 현실을 마주하며 인간인게 괴롭다고, 슬프다고 포기하면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인들이 그 사실에 무뎌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 사실을 비가시화시켰다.

내가 비건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페스코가 됐다. 육식에 대해 의문을 갖는 친구가 생겼다. 내가 변하니 내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의문이 생기고 변화가 생겼다. 내가 슬펐던 만큼 내 친구들 마음도 슬펐고 내가 분노했던 만큼 내 친구도 분노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 배를 채우고, 불필요한 착취를 소비하지 않고, 누군가의 내몰림을 알림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가 됨으로써 그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 누군가가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이지 않게 해야 했고, 불필요한 착취를 소비하지 않게 해야 했고, 더 이상의 내몰림을 묵인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래서 울지 않고 걸었다. 아시안 마트로.

커다랗고 느린 신호의 횡단보도 앞 아시안 마트의 존재 이유 역시 그랬다. 이 곳은 공단이 늘어져 있었고, 누군가 일을 하기 위해 이 나라를 찾아온 것이었다. 비가시화된 존재는 가시화된 존재와 다를 것 없이 계속해서 투쟁하고 있다. 가시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인식해야 한다.

송도는 계속해서 개발될 것이다. 내가 오늘 밟았던 갯벌도, 길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오늘 만났던 새들도 언젠가 쉼터를 옮길테고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기록은 기보의 역할을 하고, 기억할 수 있게끔한다. 탐조를 떠나 에세이를 기고함으로써 나는 송도 유수지의 상황을 알리고 철장 없이 자연의 새와 생물을 볼 수 있는 이 곳의 존재를 알린다. 시멘트길인 줄 알았지만 풀꽃이 즐비한 곳. 내몰린 곳에 출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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